▶ 수필가 방인숙의 동유럽 여행기 ⑫ 프랑크푸르트 (Frankfurt)
마인강변
광장의 독일 전통 집
사죄 동상
15세기 퀼른 비단상인 숙소였던 ‘오스트차일레' 동화 속 장난감 집 같아
귀족들의 저택 세 채를 개조한 구청사안 ‘황제의 방' 실물크기 초상화 52개나
구청사 발코니서 차범근 선수가 독일 시민들의 환영인사 받기도
‘카이저 돔' 대성당 웅장하고 장엄미 넘쳐…꼭대기 올라가면 시가지가 한 눈에
과거 나치 만행 전세계인에 사죄하는 ‘사죄동상' 독일인들이 자발적으로 세워
프랑크푸르트의 정식 이름은 ‘Frankfurt Am Main’이었다. 이 도시에서의 Main강이야말로, 서울의 한강처럼 상징적인 영혼이 깃들어서겠다. 또 한편 도심이 마인강변에 있고 뉴욕의 맨해튼을 모방했다고 ‘마인하탄‘이란 별칭도 있다. 그만큼 독일 도시들 중 유일하게 빌딩숲이 존재하고, 교통, 항공, 금융으로 비약 발전된 도시니까. 독일뿐 아니라 유럽의 경제를 책임지는 곳이기도 하니까. 오죽하면 독일의 정식 수도는 베를린이지만, 경제의 수도는 프랑크푸르트라고들 할까.
우린 과거 로마군인들이 주둔했다고 해서 뢰마(로마인이란 의미)광장인 곳으로 갔다. 이 광장을 둘러싼 볼거리론 오스트차일레(Ostzeile), 구시청사, 카이저 돔 대성당 등이다. 광장 한 쪽에 일렬로 서있는 알록달록한 독일식 전통목재건물인 오스트차일레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오스트차일레는 장난감 집 같이 매우 동화적인 외관이지만, 15세기 때 퀼른의 비단상인들 숙소였던, 깊은 역사가 포개진 건물이다. 연립주택마냥 세 채가 나란히 붙었는데 꼭대기서부터 삼각형의 지붕선이 계단식으로 내려와, 옛날 학교 공작시간에 만들던 집 모형이다. 가운데 건물에만 베란다가 있다. 가옥 앞면엔 온통 창문의 연결이고, 위아래 벽엔 삼각형이든 X자든 나무로 도형적인 문양을 지그재그로 넣어 더 예쁘다.
구시청사 건물은 1405년에 귀족들의 저택 세 채를 청사로 개조한 거다. 대표로 그중 한 채의 주인 이름인 뢰마(Roemer)를 따서 뢰마 광장이 됐다는 말에 무게가 더 실린다. 본래는 로마제국 당시 황제의 대관식과 축하연을 열던 장소였다. 대관식을 했던 이층의 넓은 홀 ‘황제의 방’엔, 실물크기의 초상화가 무려 52개나 있다는데, 들어가 보진 못했다. 또 프랑크푸르트 최초로 열린 박람회의 개최장소이기도 했다니 꽤나 유명했겠다.
특기할 사항은 특별한 행사나 기념할 일이 생기면, 이층 발코니에서 군중들에게 연설하거나 공지했던 점이다. 히틀러도 전쟁개시선포를 저 발코니에서 했단다. 계양된 유럽연방기와 독일국기가 펄럭이는 저 베란다가 좀 껄끄럽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해야할 뿌듯한 실화도 있다. 차범근 축구선수가 ‘차 붐 시절’당시 두 번이나 저 발코니에서 독일 시민들로부터 환영인사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스포츠와 문화가 세계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될 때면, 정말 애쓴 그들에게 박수가 절로 쳐진다.
광장 중앙에 허리높이의 화단에 있는 ‘정의의 분수’는 뜻이 무겁고 깊다. 가운데 서 있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의 동상 때문이다. 한 손엔 정의의 집행에 있어 엄격함을 나타내는 칼을 빼들고, 다른 손엔 법과 인권의 평등을 의미하는 저울을 들고 있어서다. 분수대를 에워싼 사람들이 즐겁게 먹고 마시며 사진을 찍거나 마음껏 떠들며 웃고 한다. 그런 각양각색의 군상이야말로 인권과 자유의 소중함을 증명하고 있는 셈 아닐까. 노천카페에서도 한갓지게 맥주마시며 유럽풍경의 진수를 누리는 사람들, 역시 자유와 평등을 구가하는 중이겠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큰 황제의 성당이란 뜻의 카이저 돔(Kaiser Dom)대성당은 대단히 웅장하고 장엄미가 있다. 10명의 황제가 그곳에서 대관식을 거행했고 왕실성당으로 쭉 사용돼왔단다. 입장료를 내고 꼭대기에 올라가면 온 시가지가 다 보인단다. 가이드가 왕실성당에 들어가던가, 왕실예배당인 니콜라이 교회를 구경하던 가, 아니면 광장 밖에 강을 보란다. 하여튼 임의로 골라서 보곤 30분 후 집결하면 된다기에, 우리 팀은 전부 강을 선택했다. 이번 여정에서 성당과 교회는 물리도록 관광한 셈이니까.
니콜라이 교회 옆의 강으로 가는 길도 기념비적이다. 왜냐하면 괴테 생가가 바로 지근인 10분 거리로, 괴테가 어릴 적에 뛰어놀고 산책했던 동선이라니까. 이 평범한 소로(小路)도 괴테가 걸었다 생각하니 격조 높게 다가온다. 모차르트가 고향인 짤츠부르크를 음악의 도시로 단장시켰듯, 독일의 자긍심인 괴테는 이곳을 문향과 사색이 담긴 도시로 만든 셈이니까. 매년 10월이면 세계최대규모의 도서국제 박람회가 개최되는 문학의 도시가 됐으니까.
한 5분정도 걸었을까. 강변도로 옆에 한강보다는 폭이 좁은 마인강이 유유히 흐르는데 주변의 풍정이 꽤나 서정적이다. 저편 보행자전용인 철교다리라는 뜻의 아이제르너 다리가 아주 아련하게 운치가 있다. 강 건너편의 오렌지지붕의 집들과 유적 급의 건물들이, 공원의 초록지대랑 무척이나 조화롭다. 박물관 거리답다. 젊은 연인들이 강둑 잔디밭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랑스런 정경들이야말로, 독일의 낭만이 아니려나.
독일의 5대 도시가 베를린, 뮌헨, 함부르크, 퀼른, 프랑크푸르트다. 그 중에 프랑크푸르트는 서독의 중심도시였던 관계로 본래가 부자도시였다. 그런 도시에 삼성, 현대, LG의 당당한 유럽지사건물들이 살갑고 자긍심을 안겨준다. 최대 번화가는 Zeil거리다.
정확히 어디쯤인지는 모르나 빌딩 숲이 있는 대로변의 인도 어느 빌딩 앞에서다. 고개를 약간 수그린 남자동상이 있는데 얼굴표정이 어쩐지 울상이다. 청동 해설 판이 있지만 나로선 해독불가다.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사죄동상’이란다. 과거 나치의 만행을 전 세계인들에게 사죄한다는 동상이란다. 그것도 독일인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거라나.
아닌 건 아닌데, 영 모르쇠인 일본과 비교된다. 사죄커녕 우리가 설치한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생떼를 쓰니, 정말 양심도 없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옳지 않은 과거의 진실에 대해, 제대로 된 철저한 규명과 인정 없이는, 올바르게 전진할 수 없는 게 자명한 세상사의 이치이거늘, 아직도 그걸 모른다. 일본의 뻔뻔함에 새삼 얄미움이 치솟는다.
저녁은 한식인 순두부와 불고기다. 솔직히 내 입엔 맛이 별로지만, 객지에서 만나는 한식은 항상 반갑고 푸근하고 감사하고 그렇다.
숙소로 와서 팀 전부가 한 방에 모여 낮에 사뒀던 딸기로 파티를 열었다. 밤늦게까지 담소하며 딸기처럼 달콤한 웃음소리들을, 장난감비누방울처럼 보글보글 피워 올렸다.
다음날 새벽, 떠나는 날임에도 나 홀로 산책을 감행했다. 새벽에 깨어나는 독일의 향기를 맡으며, 마지막으로 그들의 진솔한 일상을 엿보고 싶어서다. 이렇게 새벽마다 드문 한가로움을 만끽하며 쌓은 소중한 여행추억은, 오롯이 나만의 몫이니 더 값지다.
10시 30분 출발인 비행기 안에 갇혀 무려 두 시간을 기다렸다. 집으로 가는 길은 늘 멀고도 곤하다. 그럼에도 여행과 변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살아있는 증거니까 좋다. 사소하다고 여길 수 있던 소원을 이룬 행복여행이었다. 주마등같이 떠오르는 여행지를 가만 회상해보니, 발길 닿는 곳마다 숨은 매력과 몰랐던 세계사공부 또한 무궁무진이었다.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고풍스런 역사의 아름다움에 숨이 막히곤 했다. 가슴 안에만 품기엔 다 아까운 정경들이었다. 여행은 정말 인생의 가장 훌륭한 교사라는 말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드디어 뉴욕 하늘이다. 아! 허드슨강과 뉴욕시를 내려다 본 순간, 새로운 사실이 가슴을 쳤다.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집들과 나무들. 정렬하게 구획된 도로의 선들. 바둑판처럼 빼어난 정돈된 아름다움이다. 저 지붕들이 다 벽돌색이라면, 기필코 동유럽의 매력보다 결코 덜하지 않겠다. 아니 그곳은 이방인으로서 본 표면적인 아름다움이고, 뉴욕은 사랑과 정이 스며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장구한 역사가 잠겨있는 점에선 어쩔 수없이 떨어진다 해도. 결론은 진짜 예쁜 파랑새는 수십 년간 정붙인 뉴욕에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영국작가 길버트 체스터턴 자서전의 한 문장이다. ‘진정한 여행이란 다른 나라 땅에 발을 딛는 것이 아니라 자기나라를 외국으로 여기며 돌아올 줄 아는 것이다’ 내가 그 격이었다.
또 ‘풀꽃’의 시인 나태주씨의 ‘비단강’이란 시 구절도 떠오른다.
‘비단강이 비단강임을/많은 강을 돌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그대가 내게 소중한 사람임을/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야/비로소 알았습니다.
시인한테 금강(錦江)인 비단강이, 내겐 서울의 한강이면서 또 허드슨강이기도 했다.
옆자리 S에게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I Love 뉴욕! 이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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