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운타운의 지퍼홀에서 지난 2일 특별한 음악회가 열렸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90세 축하 콘서트. 공연예술학교 콜번 스쿨이 주최한 비공개 행사로, LA 문화예술계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프랭크 게리가 건축, 예술, 사회에 기여한 측량할 수 없는 공로를 음악으로 축하하고 기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학기 콜번 패컬티에 합류한 에사 페카 살로넨의 지휘로 콜번 콘저바토리 학생들이 선사한 따뜻하고 아름다운 음악회였다. 피에르 불레즈의 금관 7중주(‘Initiale’)로 시작해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바흐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 그리고 살로넨이 프랭크 게리를 위해 작곡한 ‘안개’의 세계 초연이 있었다. 연주곡 모두가 게리와 중요한 접점을 가진 음악인데 이를 다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90세에 전성기를 누리는 건축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는 지금이 인생의 황금기라 해도 좋을 만큼 건강한 모습으로 최고의 명성을 누리면서 놀랄 만큼 왕성한 에너지로 수많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LA 다운타운만 해도 이제 그랜드 애비뉴는 ‘프랭크 게리 애비뉴’로 이름을 바꿔 쓰는게 좋겠다 싶을 정도로 그의 타운으로 변모하고 있다.
앤젤리노들의 자랑이며 다운타운 랜드마크인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이 그의 작품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바로 길 건너편에 ‘그랜드 애비뉴 프로젝트’가 지난 주 착공식을 가졌다. 10억달러 규모의 이 주상복합 콤플렉스는 39층 콘도와 20층 호텔 건물이 들어서는 한편 보행자 전용 공간과 상점 식당 영화관이 있는 다목적 엔터테인먼트 디스트릭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 바로 옆, 올리브와 힐 스트릿 사이의 2가 길에 건축되는 콜번 스쿨 캠퍼스 확장 프로젝트 또한 프랭크 게리가 맡았다. 1,100석의 콘서트홀, 700석의 스튜디오 극장, 100석 규모의 실험공연장과 함께 다양한 교실과 댄스 스튜디오, 기숙사가 포함될 이 프로젝트는 2,000여 학생들에게 완벽한 교육시설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그랜드 애비뉴에 모여있는 브로드 뮤지엄과 모카 현대미술관, 뮤직센터의 디즈니 홀,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 아만슨 극장 및 마크 테이퍼 포럼과 함께 종합문화예술 단지를 형성해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잉글우드에 들어설 욜라 센터(YOLA Center) 또한 프랭크 게리에게 맡겨졌다. 욜라는 구스타보 두다멜 LA필하모닉 음악감독이 베네주엘라의 ‘엘 시스테마’ 프로그램을 본따 LA의 저소득층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2007년 창설한 음악기관으로 지금까지 1,200명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선물하고 교육해왔다.
이외에도 2018년 완공한 엘 세군도의 초대형 오피스빌딩 ‘어센드’와 곧 선셋 블러버드 풍경을 크게 바꿔놓을 ‘선셋 스트립’ 개발 프로젝트 역시 그의 건축사무소가 수주했다. 나이 들수록 무한 증대되는 창의력과 미래를 향한 거침없는 혁신이 놀라울 뿐이다.
30대초에 커리어를 시작한 프랭크 게리는 50세 되던 1978년 샌타모니카에 지은 벙갈로 스타일의 집으로 건축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89년 건축계 최고상인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의 명성을 얻은 것은 70세 무렵 지은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뮤지엄(1997)과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2003) 이후였다. 특히 구겐하임 뮤지엄은 완공되자마자 ‘20세기 최고의 건축’이라는 찬사가 쏟아지면서 다 죽어가던 스페인 최북단의 도시를 일격에 회생시킴으로써 ‘빌바오 효과’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엄청난 사건이었다.
몇년전 스페인 리오하에 갔을 때 1시간여 거리의 빌바오를 방문한 적이 있다. 물고기와 범선 모양을 한 거대한 타이타늄 건축물은 직접 보지 않고는 그 절묘한 디자인과 스케일을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건물 자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뮤지엄의 수많은 전시물은 모두 들러리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 여행에서 며칠 동안 묵었던 리오하의 마르케스 데 리스칼 호텔 역시 집시여인의 치맛자락이 펄럭이는 프랭크 게리의 작품이었으니 지금 돌아보면 대단히 특별하고 호사스런 경험이었다.
그의 건축을 보고 있으면 유려한 곡선을 따라 눈과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이는 것을 경험한다. 어릴 때부터 음악과 미술을 사랑한 그가 세계 곳곳에서 공연장과 미술관 건축에 특별한 열정을 쏟는 것은 당연하다. 예술기관의 건축물을 그보다 더 멋지게 지을 수 있는 건축가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디즈니 홀의 콘서트에 갔을 때 객석에 앉아있는 그를 보게 될 때가 이따금 있다. 겸손하면서 유머감각이 뛰어나다는 은발의 작은 거인, 자신이 설계하고 건축한 공간에서 음악을 듣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무한한 존경과 애정을 담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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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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