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오페라의 2019/20 시즌 개막작은 푸치니의 ‘라 보엠’이다. 이 작품은 ‘라 트라비아타’ ‘카르멘’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3대 오페라의 하나로, LA 오페라 역시 해마다 이 셋 중 하나는 반드시 무대에 올리고 있다.
다 아는 오페라를 보고 또 보는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내용과 음악을 다 꿰고 있는 사람들이 같은 작품을 또 보러 극장으로 향하는 이유는 새로운 출연진, 새로운 프로덕션, 새로운 연출이 빚어내는 ‘고전의 새로움’ 때문이다. 오는 9월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공연될 ‘라 보엠’ 역시 독일의 천재연출가 배리 코스키가 시대 배경을 100년쯤 앞당기고 현대적 감각으로 새 옷을 입힌 파리 보헤미안들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요즘 원작 그대로 공연하는 무대예술은 많지 않다. 시대와 사회배경을 바꾸고 등장인물의 신분과 처한 상황을 다르게 만들어 세트와 의상까지 다 바꿔버린 작품으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원작에서 남는 것은 줄거리 뼈대와 음악뿐, 그런데 가사 한줄 바꾸지 않은 노래들이 새로운 상황에 어색하지 않게 들어맞는 것을 보면 인간사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연극 분야에서도 고대 비극이나 셰익스피어 희곡을 현대사회로 가져와 재해석한 공연을 흔히 볼 수 있다. 영화는 리메이크 할 때마다 세대가 진화하고, 뮤지컬도 리바이블 될 때면 현대 테크놀러지를 십분 활용하여 21세기 관객의 비위를 맞춘다.
무용계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 뮤직센터 아만슨 극장에서 공연 중인 ‘신데렐라’는 공습 사이렌과 폭격으로부터 시작된다. 무대가 나치 대공습이 벌어진 1941년 영국 런던이기 때문이다. 왕자님과 춤추다가 12시 종소리에 구두 한짝을 벗어놓고 뛰쳐나온 소녀의 인생역정 이야기가 아니라, 암울하고 긴박한 전시에 벌어지는 평범한 소녀와 영국군 파일럿의 러브스토리로 바뀌었다. 신데렐라의 변신을 도와주는 요정 역시 대모할머니가 아닌 흰옷 입은 멋진 남자천사인데, 그는 이 작품에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지휘하는 중요한 초월적 존재로 묘사된다.
새로운 ‘신데렐라’를 만든 사람은 영국의 안무가 매튜 본(Matthew Bourne)이다. 그는 1995년 ‘백조의 호수’ 한편으로 공연계에 파란을 일으켰고, 이후 내놓는 작품마다 그의 이름 하나로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무용계에서 티켓 파워가 가장 큰 인물이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주인공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섬세하고 가녀린 여자 백조들은 간데없고, 흰색 깃털바지를 입고 근육질의 윗몸을 드러낸 채 맨발로 춤추는 남성 백조들의 파워풀한 군무는 충격 그 자체였다. 무대는 현대 영국의 왕실, 기가 센 여왕 밑에서 기죽어 살던 유약한 왕자가 강인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백조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새로움을 갈망하던 관객들을 단번에 매혹시켰고 지금까지도 그의 최고의 혁신적 작품으로 꼽힌다.
이후 매튜 본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호두까기 인형’ 등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음악 작품을 모두 재해석했고, ‘신데렐라’ ‘분홍신’ ‘가위손’ 등 고전의 틀 속에 갇혀있던 발레를 21세기 현대인의 몸짓으로, 옛날옛적 동화의 나라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현실세계로 탈바꿈시키며 기발한 연출과 역동적인 안무로 예술성과 대중성 모두 갈채를 받았다. 영국 최고 권위의 공연예술상인 올리비에상을 5차례 수상했고, 1999년 토니상 뮤지컬부문 최고 안무가상과 최고 연출가상을 동시 수상했으며, 2016년 영국 정부로부터 OBE 훈장과 기사작위를 수여받았다.
3월10일까지 공연되는 ‘신데렐라’는 2시간에 이르는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이 주인공이라 해도 좋을 특별한 작품이다. 프로코피에프 특유의 기이하고 환상적인 블랙 유머, 코믹하면서도 때때로 굉장히 로맨틱해지는 음악을 타고 코믹과 로맨틱 사이를 역동적으로 넘나드는 안무가 기막히다. 음악에 끌려 작품을 선택한다는 매튜 본은 ‘신데렐라’ 역시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았고, 이 작품이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대 초에 쓰였다는 점에서 시대 배경을 그 당시로 설정했다고 한다. 코믹하고 로맨틱한 음표들 사이에서 전시의 공포와 어둠, 그 가운데 싹트는 절박한 사랑의 감정이 숨어있다고 느껴져 그 분위기를 작품에 담았다는 것이다.
연극적 요소가 강한 매튜 본의 작품은 ‘댄스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분류되기도 한다. 춤과 음악과 드라마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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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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