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가 방인숙의 동유럽 여행기 ⑩밤베르크(Bamberg)
장미정원
강의 유람선
숙소 옆 기차역
마인강과 도나우 운하 있는 작고 고즈넉한 고성가도의 중심지...작은 베니스
옛날엔 어부들이 고기잡아 테라스서 말려 강과 바로 이어지는 주택구조 특이
12세기 지어진 밤베르크 성당 1000년 역사 소장품과 보물들 간직
베른장미정원은 미로찾기 숲처럼 관목들 모자이크 모양으로 구획
성 미카엘 성당 밤베르크 무덤에 참배하면 병 낫는다는 속설 있어
독일의 밤베르크로 이동시간에 중간까지만 본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끝까지 봤다. 과연 묵직한 아카데미상감으로 사람을 압도시키는 영화다. 인간 세상엔 결코 발생할 수 없는, 절대 발생하면 안 되는 참극이니까. 인간의 존엄과 생존자체가 말살된 극한상황, 그런 최악의 처참함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참으로 나는 얼마나 순탄하고 평안한 삶을 살았나 싶어 무한한 감사가 솟구친다.
버스에서 내리자, 눈앞에 확 들어오는 소박한 시골마을이 안겨주는 평화로움! 와락 더 귀하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밤베르크는 독일 동남부에 있는 고성가도의 중심도시다. 마인강과 도나우 운하의 일부를 끼고 있는 작고 고즈넉한 도시다.
구시가지의 1차 관문인 아담한 레그니츠(Regnitz)강의 커텐다리(Ketten Brucke)로 갔다. 보행자와 자전거를 위한 현대식 교각의 도보 교다. 다리를 건너며 보니 강물이 작은 계단폭포처럼 흐르고, 숨이 멎게끔 아름다운 건너 마을의 조화는 작품사진감이다. 마을은 도나우운하와 구시가지를 관통하는 레그니츠강 사이에 오밀조밀 형성돼있다. 강변에 늘어선 집들이 강둑에 바투 붙어있고, 밑의 기둥들이 떠받친 형국이다. 멀리서 보면 강에 떠있는 걸로 보인다. 마치 베네치아의 수상가옥처럼. 허긴 독일을 여행 중이던 어느 저널리스트가 ‘작은 베니스’라고 소개한 이후, 그 표현이 공식명칭으로 굳어졌단다. 내가 봐도 충분히 타당성 있는 비유다. 그런 집들이 다 옛날엔 어부들의 집이었다. 고기를 잡아 테라스에서 말릴 수 있게 집을 설계하느라, 테라스가 곧장 강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된 거라나. 집들 하나하나가 어찌나 예쁘게 꽃단장했는지 진정 별세계사람들의 별장 지대다.
중세시기엔 레그니츠강을 기준, 서민들이 거주하는 시민지구와 성당과 궁전이 있는 주교구로 나뉘었단다. 그런 실상이라 시청사를 건립당시, 강 위쪽 주교영역과 강 아래쪽 시민 영역이 자기네 지역만을 주장, 타협을 못 봤단다. 의견불일치 끝에 나온 묘책이 두 지구를 연결하는 쌍둥이 다리의 중간 지점에 설립하는 거였다. 해서 다리가운데 3층짜리 구청사는 밑으로 강물이 흐르는 지점에 떠있게 됐다. 건물 한 면엔 신전 기둥을, 2,3층엔 여신과 남신의 벽화를 그려놓았다. 풍자 있게 벽화속사람을 다리 일부분만 그림이 아닌 조각처럼 입체적으로 튀어나오게 했다. 해서 마치 사람이 처마 턱에 걸터앉은 걸로 보이게 마련이다.
1004년 하인리히 2세의 명으로 1012년 완공된 밤베르크 성당으로 갔다. 유럽의 성들은 전쟁에 대비해 모두 언덕이나 산위에 지었다는데, 여기 성도 그렇다. 나중엔 화재로 일부가 전소되기도 했지만, 13세기에 후기 로마네스크양식으로 개축된 게 현재의 모습이다. 지리적인 여건 탓에 1차 2차 대전 때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단다. 성당첨탑이 4개인데 보는 각도에 따라 겹치거나 해서 2개나 3개로 보였다. 성당은 길이가 94m, 넓이 28m에다 높이가 26m인데 첨탑까지 셈하면 81m나 된다. 하여간 성당을 등지면 아래로 밤베르크시가지가 시야에 쫙 펼쳐질 만큼 높다. 성당 안엔 ‘밤베르크의 기사’란 조각이 유명하고 성당을 지은 하인리히 2세와 왕후의 묘석이 있단다. 옆의 주교구박물관엔 대성당의 1000년 역사동안 수집된 소장품과 보물들이 많단다. 한국처럼 도굴꾼들이 없나? 간수하기 힘들겠다.
성당 옆에 구궁전과 신궁전이 있다. 세월이 흘러 구궁전이 파괴되자, 가까이에 넓은 규모의 신 궁전을 세웠다. 이번 여행길에서 알았지만, 구궁전과 신궁전이 같이 있는 건 참 드믄 경우다. 현재는 밤베르크의 역사박물관과 국립도서관, 국립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하튼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프랑스 바로크양식이라, 순간적으로 프랑스궁전에 온 느낌이 든다. 방이 100여개에 수많은 조각품과 천장에 프레스코화도 돼있으니까.
신 궁전 안에 프랑스 풍인 베른 장미정원( Rosen Garten)으로 갔다. 입구의 담장을 덮은 넝쿨장미가 장미정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무려 220여종의 장미에다, 미로 찾기 숲처럼 관목들을 모자이크모양으로 구획해 화단을 조성했다. 정원 가 큰 보리수나무들은 장미들의 보초병들이다. 화단들마다 자리 잡은 동상들이 다 평범치 않다. 작은 연못가 할아버지 동상은 커다란 물고기의 꼬리지느러미를 쥐고 있는데, 고기가 코와 귀가 있는 사람얼굴이다. 인어고기인가? 그런가하면 피리를 부는 귀여운 동자상도 있다. 우아한 여신상들은 곧 하늘로 올라갈 듯 날렵하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묘사한 건가? 장미가 주인공인지 조각들이 주인공인지 잠시 헷갈린다. 볼거리가 풍성해 좋긴 하지만.
정원 끝엔 밤베르크에서 가장 로맨틱하다는, 하얀 천막의 야외테이블도 구비돼있는 레스토랑이 있다. 낭만의 정수(精粹)다. 이곳 청춘남녀들의 데이트와 프러포우즈 애용 장소 아닐까? 벤치도 많아 사색하기도 좋고. 친절하게도 사진 찍기 좋게끔, 전망하기 좋게끔, 일자로 담을 쌓지 않았다. 요소요소 미니베란다마냥 볼록 형 담을 쌓아 망원경을 설치했다.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망원경으로 전망을 보거나, 멀리 아스라이 펼쳐진 시가지와 주황색지붕의 집들을 배경으로 사진들 찍기 바빴다. 앞에 막힌 것 없이 정말 사진발이 그만이니까.
벤치에 앉아 오색장미들을 보자니 어쩔 수없이 장미가시에 찔려 죽은 릴케가 떠오른다. 릴케의 묘비에 새겨졌다는 시가 장미꽃송이들 위아래로 아른거린다. “장미여, 순수한 모순이여/겹겹이 싸인 눈꺼풀 속에서/아무도 모르는 잠이 되는 기분이여...
언덕을 내려와 카를리나 거리로 갔다. 밤베르크 구시가지의 골목 중에서 제일 중심가다. 중세의 독일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에도, 철저하게 관리해 색색의 모든 가옥들이 신축한 듯 깔끔하다. 독일 특유의 창문과 베란다의 꽃 장식에 간판들까지 수준급예술의 진수(珍秀)다. 눈이 잘 안가는 건물구석에도 조각이나 소품장식이 예뻐 품격을 돋운다. 그렇게 하나하나 개성이 살아있다 보니, 유럽건축사의 ‘살아있는 화집’이란 평가를 얻었겠다. 이러니까 구시가지의 핵심지역이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됐지 싶다.
그런 구시가지의 중심인 막시밀리안 광장에 도착했다. 가운데에 자리 잡은 유명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 분수가 번화가와 이어져있다. 밤베르크에서 제일 큰 광장이라 주말엔 야채와 과일시장이 열린단다. 그곳에서 미카엘산 중턱의 성 미카엘 수도원의 파랑색 첨탑이 아련하게 눈에 들어온다. 현재는 일부를 양로원으로 할애하고 있단다. 보람 있는 쓰임새다. 내부에 있다는, 교회설립자인 오토 폰 밤베르크의 무덤에 참배하면 병이 낫는다는 말이 있다지만, 우린 그냥 시간상 외면할 밖에 없다.
야곱 순례단이 사용하던 성 야곱교회(St Jakob Kirche)는 11세기에서 12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한단다. 상기할 점은 산티아고 순례 길을 떠날 때 이용했다는 것. 꿈에라도 언젠가 한 번은 꼭 걷고 싶은 순례길이기에 가이드의 말이 콕 들어와 박힌다.
이 참에 짚고 넘어가야할 이야기가 있다. 밤베르크는 200년 전부터 인공운하를 만들었단다. 유럽내륙의 가장 큰 강인 도나우강과 라인 강의 지류인 마인강을, 북해로 가는 라인강과 연결하고자 운하를 설치했던 것. 그 기존의 운하에다 1960년대에 현대기술을 접목 재정비하고 라인강, 마인강, 도나우운하 구간을 RMD운하라 한다. 밤베르크가 바로 RMD운하의 중심지인 셈이다. 그 RMD운하가 바다와 내륙의 연결이라는 당위성이 있음에도, 만만찮은 부작용으로 오늘날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단다. 과연 운하의 물이 굉장히 탁하고 거품도 제법 흘러가는데다 물색깔이 상당히 검은 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 반도국가다. 그래서 모든 강들은 제 스스로 잘 알고 바다로 잘만 간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선 한 때, 민의엔 귀 닫은 채 모든 강과 연결되는 운하를 추진했을 때의 롤 모델이 바로 이 운하였다고 하던가. 결국 4대강 정비로 틀었지만, 그 대역사가 부작용만 넘치는 실패작이 됐으니 난제다. 오판의 결과로 완전 복원불가능의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니 쓰디쓴 시행착오다. 국토에 관한 문제 만큼은, 그 누구도 겸허하게 심사숙고해야 한다. 법정스님이 이르시길, “제비꽃도 제비꽃으로 살 때 행복하다”고 했다. 소박하고 하찮게 여기는 작은 제비꽃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유구한 강들은 일러 무얼 하리요! 강들과 산들은 정녕코 그냥 내버려 둘 일이다. 그 어느 누구도 마음대로 독단적으로 판단, 훼손해선 안 된다.
오늘 밤은 애초 처음 묵었던 호텔로 되돌아 왔다. 숙소가 구면이라 반은 내 집에 온 듯 편안하다. 역시 여행은 눈과 마음, 영혼에, 첫눈처럼 살며시 기쁨이 찾아와 쌓이게 한다. 여행이 선사하는 고요한 행복이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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