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공연예술단체들은 매년 1~2월에 다음 시즌의 프로그램을 발표한다. 이제 곧 LA필하모닉, 할리웃보울, LA매스터코랄, 뮤직센터 글로리아 코프만 댄스, LA체임버 오케스트라 등 주요 공연단체들이 잇달아 2019/20 시즌 내용을 공개할 것이다.(한 시즌은 9월에 시작해 다음해 5~6월에 끝나기 때문에 연도가 늘 두해에 걸쳐서 표기된다)
지난 27일 LA오페라가 조금 색다른 시즌 발표회를 열었다. 보통 새 시즌 보도자료는 매년 이메일로 보내오는데, 올해는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직접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짤막한 공연과 액티비티가 있는 행사를 마련했다며 초청한 것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참석했다가 깜짝 놀랐다. 일요일 낮 시간에 수백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몰려온 것이다.
알고 보니 이 행사는 ‘오페라 리그 LA’(Opera League of Los Angeles) 회원들을 위해 개최하는 연례 시즌 프리뷰로서, 미디어를 초청한 것은 올해 처음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해마다 여기서 먼저 발표한 직후 언론에 보도자료를 보냈던 것이다.
행사 한시간 전부터 1층에서는 백 스테이지 투어와 사진촬영, 2층 로비에서는 재즈 음악회가 한창이었고, 3층 로비에서는 로컬 식당들이 제공하는 간단한 음식이 제공되었다.
공식 행사가 시작되자 크리스토퍼 코얼쉬 LA오페라 회장이 나와 2019/20 시즌 개막작은 새로운 프로덕션의 ‘라 보엠’이라고 발표했다. 그러자 ‘도밍고 영 아티스트’ 멤버인 소프라노 가수가 무대로 올라와 ‘무제타의 월츠’를 노래했다. 그렇게 다음 시즌 공연작들이 하나씩 발표될 때마다 젊은 가수들이 나와 그 오페라의 대표적인 아리아를 불러주었고, 우리는 아름다운 아리아를 7곡이나 코앞에서 라이브로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오페라 리그 LA’는 어떤 이유로 이처럼 특별대우를 받는 것일까? 이 단체는 LA 오페라를 후원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임으로, 1981년 창설된 이래 지속적인 활약으로 현재 회원이 600여명에 이르는 중요한 후원단체다. LA오페라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후원자 프로그램(Friends of LA Opera)과 달리 오페라 애호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결성한 외부조직이며, LA오페라에 각종 도움의 손길을 제공하는 한편 회원들끼리 다양한 세미나와 행사를 열며 스스로 교육하고 봉사하며 친교도 나누는 모임이다.
연 회비가 50달러에서 550달러로 크게 부담되지 않고(학생은 25달러), 더 많이 기여하고 봉사할수록 특전(연례 시즌프리뷰 초대, 백 스테이지 접근, 공연티켓 할인, 드레스리허설 티켓, 아티스트 인터뷰 참관 등)이 많아진다. 봉사의 내용을 보면 LA오페라 샵에서 일하기, 공항에서 아티스트 픽업하기, 출연진과 스태프를 위한 음식 봉사, 조명 셋업할 때 무대 위에 서있기 등 색다른 임무가 많은 것도 눈길을 끈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보는 오페라 무대의 옆과 뒤에서 이런 봉사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주위에 오페라 애호가들이 적지 않고, 봉사하는 이도 간혹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존경스러운 분이 있다. 베렌도 중학교와 어빙 매그닛 스쿨에서 수학교사로 22년 봉직하고 최근 은퇴한 감윤 선생님이 그분이다. 감 선생님은 LA오페라의 교육 프로그램(Classroom Integration)에 참여하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오페라 공연을 보여주느라 자신의 시간과 돈과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온 교육자요 오페라 매니아다.
감 선생님에 따르면 학생들을 오페라 공연(드레스리허설)에 한번 데리고 가려면 수개월에 걸친 준비와 복잡한 절차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선 교사 자신이 돈을 내고 시간을 들여 LA오페라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 공부와 숙제가 장난 아니게 많다고 한다. 또 오페라에 가는 것도 일종의 필드 트립이기 때문에 3개월 전에 학교에 신청해야하고, LA통합교육구의 허가를 얻어 스쿨버스도 예약해야 한다. 모든 학부모들로부터 공연에 데려가도 좋다는 사인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연은 언제나 밤에 열리기 때문에 간단한 저녁을 (선생님 돈으로) 사 먹여야 한다. 공연이 끝나면 50명의 아이들을 모두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주는 일까지 마쳐야하니 밤 12시 전에는 귀가할 생각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일년에 세 번씩, 학생들 오페라 데리고 다니기를 8년이나 했다는 감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경탄으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혼자 감상하고 즐기는 데 그쳤던 오페라가 갑자기 커다란 커뮤니티 공연, 입체적인 사회봉사 이벤트로 다가왔다. 오페라만 그렇겠는가. 모든 공연무대 뒤에는 자신의 즐김을 넘어서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자원하여 돕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참 감사하고, 많은 박수를 보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