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 훈련장이던 매향리 평화역사관, ‘학살의 아픔’ 제암리 순국기념관
▶ 융건릉엔 사도세자·정조의 애절함…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와 이야기
경기도 화성은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수도권 시민들은 무심코 지나치기 다반사다. 그나마 화성을 일부러 찾는 이들이라 해도 어쩌다 생각나면 들러서 제부도의 바지락 칼국수와 회를 먹고 돌아오는 가벼운 여행지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한 꺼풀만 들춰보면 화성은 여러 겹의 이야기와 역사의 더께가 쌓여 있는 곳이다. 옮기는 발자국마다 깃든 이야기는 발길을 부여잡아 나그네의 여정을 조급하게 만들 정도다.
화성시 둘러보기는 매향리 평화역사관에서 시작하면 제격이다. 지난 2005년 미국 공군의 폭격 훈련장이 폐쇄되기 전까지 반세기 동안 포성과 화염이 멈추지 않던 곳이다. 미군들은 매향리 사격장을 쿠니 사격장이라고 불렀는데 ‘쿠니’는 매향리의 옛 지명인 고온리의 그들식 발음이다. 현재 매향리 평화역사관의 작품들은 김서경·김운서 작가가 설치한 것이다. ‘평화의 소녀상’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본질을 전 세계에 알리는 등 사회문제를 미술작품에 투영시키는 작업을 이어온 두 작가는 1954년 이후 미 공군 사격장으로 이용됐던 매향리에서 수거한 녹슨 포탄과 탄피를 소재로 생명과 사랑,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3·1운동의 물결이 가라앉은 직후인 1919년 4월 발생한 제암리 학살의 아픔을 오롯이 품은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도 가볼 만하다. 제암리 학살사건은 현장을 목격한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해외로 알려졌다. 여론이 악화하자 일제는 주범 아리타 도시오 중위를 군법회의에 회부했지만 학살 행위는 인정하면서도 형법에 규정된 범죄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제암리 학살의 생존자인 노경태씨는 “아리타 중위가 나가자 날카로운 구령 소리가 들려왔고 입구에 있던 병사들이 교회 안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뛰어오르고 쓰러지고 아수라장이 됐다”고 증언했다.
화성의 옛이야기가 이어지는 곳은 융건릉이다. 융건릉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과 그의 아들 정조의 건릉이 한곳에 있기 때문이다. 정조는 뒤주에서 굶어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부채의식이 있었다. 대를 이을 세손인 자신이 있어 할아버지 영조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생각을 평생 갖고 살았던 것이다. 그렇게 싹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는 즉위 일성에서 드러난다. 그 한마디에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세웠던 노론은 긴장했지만 영민한 정조는 탕평책을 견지했다. 정조는 즉위 10년, 세자가 다섯 살 나이에 홍역에 걸려 죽자 이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묫자리가 안 좋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현재의 자리로 이장(移葬), 사후복권에 착수했다. 아직은 사도세자를 죽인 노론의 세상이었지만 세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그들도 왕의 의지에 맞설 수 없었다. 현재의 융릉 자리는 효종 승하 때 고산 윤선도가 천거했지만 사방십리의 백성들이 쫓겨날까 반대해 빈자리로 남아 있었던 곳을 정조가 택한 것이다. 200년이 지난 오늘, 기구하고 애절한 삶을 살았던 부모와 아들은 양지바른 언덕에 나란히 누워 살아생전 쌓였던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이름 없는 천주교인들이 순교한 남양성모성지도 화성의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1991년 10월7일 수원교구가 설정한 마리아 축일에 봉헌됐고 한국 천주교 사상 처음으로 성모마리아 순례성지로 선포됐다. 현재 공사 중인 남양성모성지 성당 건물은 오는 3월 완공 예정인데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작품이다. 보타는 미국·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스위스 등 세계 곳곳에 건축물을 남긴 거장으로 국내에 있는 작품으로는 강남 교보타워와 삼성 리움미술관 등이 있다. 풍광이 워낙 아름다워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도 한 번쯤 들러서 사색과 묵상에 잠겨 볼 만하다.
화성시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해질 녘 도착한 곳은 전곡항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과연 듣던 대로 환상적이었다. 전곡항은 국내 최초 레저어항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다기능 테마 항구로 시화방조제가 조성되면서 시화호 내의 이주민들을 위해 조성된 곳이다. 요트와 보트가 접안할 수 있는 마리나 시설에 파도가 약하고 수심이 3m 이상 유지돼 해양레포츠에 적합하다. 매년 5월이면 화성뱃놀이축제가 열려 수도권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뱃놀이축제는 요트·보트·유람선승선 등 바다에서 배로 즐길 수 있는 모든 레포츠를 체험해 볼 수 있어 인기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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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화성)=우현석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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