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닷새 동안 LA 컨벤션센터에서 ‘LA 아트쇼’가 열렸다. 올해 24회를 맞는 이 국제미술제를 지난 10년 한해도 거르지 않고 관람했고, 그동안 많은 변화를 지켜보았다.
LA 아트쇼는 1994년 패사디나 시빅 오디토리엄에서 시작된 로컬 미술제였다. 그때 참가했던 갤러리는 14개, 관람객은 250명에 불과했다. 그렇게 미약했던 동네 미술제가 매년 조금씩 커지면서 국제행사가 됐고, 장소도 몇번 옮겨 다니다가 2009년 컨벤션센터에 정착했다. 지금은 관람객 수가 7만명을 헤아리는 미 서부지역 최대의 국제 미술제로 자리잡았다.
그동안 미술제의 성격도 진화했다. 클래식 아트에 집중됐던 전시장들이 점차 콘템포러리 아트로 바뀌었고, 한때는 실험적, 전위적인 작품들도 나왔지만 최근 그런 시도가 많이 줄었다. 지난 몇 년간 중국 갤러리가 떼로 몰려오더니 올해는 두 곳밖에 안 나온 것도 기이한 변화다.
또 다른 변화는 주요 뮤지엄들과의 협업이다. 수년전부터 라크마(LACMA), 모카(MOCA), 더 브로드, 게티 등과 연계한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는데,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만 화단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가 한국 미술의 약진이다. LA 아트쇼의 규모가 가장 컸을 때가 134 갤러리가 참가했던 2014년인데, 그해 특집국가가 한국이었다. ‘코리아 커넥션’이란 제목으로 유명작가 최정화와 이용백이 특별작가로 초대됐고, 주류화단과 미디어의 화려한 조명을 받았으며, 한국 화랑이 14개나 참가했다. 그때 이후 한국서 오는 갤러리와 작품 수준이 많이 좋아졌다. 전 해까지만 해도 한국 화랑들은 한 구석에 구멍가게들처럼 부스가 몰려있었고, 민망한 수준의 그림들을 액자가게처럼 다닥다닥 걸어놓아 지나칠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오곤 했었다.
2014년의 성공에 이어 LA 아트쇼는 2015~2017년에 3년 연속 ‘단색화’ 프로젝트를 열어 한국의 현대미술을 집중 조명했다. 2018년에도 단색화가 김태호와 ‘자연의 조각가’ 이재효를 특별 초청했으며, 올해는 한중일 ‘수묵화’를 주제로 한국화가 추니 박 특별전을 열었으니,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과 특별대우가 참으로 놀라울 정도다.
여기에는 한국 화랑들이 매년 LA 아트쇼의 주 고객이라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올해 나온 18개국 120갤러리 가운데 15개가 한국화랑(미주한인 갤러리 포함)이었으니 해외 갤러리로는 최다 참가국이다.
아트페어는 현장에서 작품을 사고파는 미술시장이다. 도깨비시장 서듯이 4~5일 반짝 열리는데도 며칠 사이에 수만 명이 방문해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고 구입하는 장마당이다. 화랑들은 각자 팔고 싶은 걸 들고 나오기 때문에 부담이 적고, 보는 사람도 심각하지 않아서 쉽게 돌아보며, 화상들은 정보교환과 네트웍을 구성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한다.
LA 아트쇼의 참가비용은 부스 사이즈에 따라 1만5,000달러에서 5만달러로 알려져 있다. 포장과 운송, 설치까지 하려면 훨씬 더 많이 들지만 단 며칠의 전시를 위해 큰 비용을 감수하고 화랑들이 참가하는 이유는 그래도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한국 화랑들의 경우 거래실적에 관계없이 작가들이 돈을 내서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해외 미술제 경력을 쌓고 싶은 작가들이 참가비를 내면 화랑은 돈 한푼 안 들이고 나올 수 있고, 그런 작가가 여럿이면 작품을 하나도 못 팔아도 오히려 남는 장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트페어 규정상 어긋나지만 더 많은 갤러리를 유치하려는 주최 측이 눈감아주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LA 아트쇼가 국제화단에서 수준 낮은 미술제로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 화랑이나 참가신청을 하면 다 받아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갤러리 없는 화상들이 작품만 들고 나오는 일도 드물지 않다.
국제화단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바젤, 프리즈, 아모리 쇼, 피악 등은 주최 측이 엄격하게 심사하여 실력과 역사가 있는 곳만 초대하는 아트페어로 명성이 높다. 이중 프리즈(Frieze)가 바로 다음달인 2월15~17일 파라마운트 영화사 스튜디오에서 제1회 프리즈 LA를 개최한다. 런던, 베를린, 뉴욕 프리즈에 이어 올해 개막하는 프리즈 LA는 처음부터 ‘콘템포러리 아트페어’임을 천명하고, 70개 세계 유수 갤러리들의 초대전을 준비 중이다.
LA가 현대미술의 메카라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당연한 도전이다. 진작 LA 아트쇼가 했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도권을 해외 아트페어에 넘겨준 LA 아트쇼가 이에 자극받아 한층 수준 높은 미술제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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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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