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네임이 같은 이 두 음악인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꼭 10년전 싹트기 시작했다. 2009년10월, LA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28세의 구스타보 두다멜이 그의 첫 콘서트에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번을 연주했다. 곱슬머리의 젊고 신선한 지휘자와 묘하게 거칠고 독특한 교향곡이 빚어내는 조화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을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채웠다. 그날 이후 두 구스타보에게 사로잡혔다.
2년여 후인 2012년 초, 두다멜은 말러의 9개 교향곡을 전곡 연주하는 프로젝트를 완주했다. 그때 나이 31세. 세계의 수많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말러 사이클에 도전했지만 그렇게 젊은 지휘자가 3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전곡을 연주한 일은 처음이었다. 그는 그 긴 교향곡들을 거의 전곡 암보하여 지휘한 기록도 남겼다.
이후 두다멜은 틈만 나면 9개 교향곡을 하나씩 다시 연주하며 보완하고 재해석했다. 그중 가장 많이 연주한 심포니가 1번이고, 음반으로 나온 것은 1번, 5번, 7번, 8번, 9번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빛나는 두다멜의 명성은 어쩌면 말러가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러와의 인연은 10세 시절로 올라간다. 크리스마스 때 한 친구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라며 CD를 선물했는데 열어보니 말러의 5번 심포니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레코드점의 실수였던 듯하다. 열살 소년에겐 너무 길고 이해하기도 어려웠으나 반복해 들으면서 사랑에 빠졌고, 때마침 집에서 발견한 말러 1번의 트럼본 파트 악보를 보고 독학으로 트럼본을 연주했을 정도로 말러 광이 되었다.(두다멜은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가 트럼본 주자였다)
지휘 역시 우연히 선생님의 빈 자리에 대신 섰다가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게 됐는데, 16세 때 멘토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유명한 ‘엘 시스테마’ 창립자)를 만나 정식으로 처음 배운 것이 말러 1번이었다. “말러를 지휘하려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 파트를 노래로 외우도록 시킨 아브레우의 교수법은 두다멜이 말러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두다멜은 2004년 제1회 구스타브 말러 지휘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심사위원이던 에사 페카 살로넨이 천재성을 알아보고 LA로 초청, 할리웃보울 무대에 데뷔시켰다. 그 결과 수년후 LA필의 음악감독이 되었으니 그가 취임콘서트에서 말러 1번을 연주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벌써 음악감독 10년차, 며칠 후면 38세가 되는 두다멜이 오는 2월말부터 5월말 사이에 LA 필과 함께 말러 교향곡 9번, 1번, 8번을 각 3~4회 연주한다. 7년 전의 말러 사이클 이후 한 시즌에 말러를 이렇게 많이 연주한 적은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3월 중순 LA 필과 함께 한국과 일본으로 투어를 떠나 서울 예술의 전당과 도쿄 선토리 홀에서 말러 1번을 2회씩 연주하고, 6월말에는 뮌헨 필과 함께 스페인과 독일을 순회하며 2번(‘부활’)을 연주할 예정이다. 이제 그에게 브루노 발터, 번스타인, 아바도, 게르기예프, 래틀, 샤이, MTT 등과 어깨를 겨누는 ‘말러리안’이라고 공식 타이틀을 붙여줘도 좋을 것이다.
디즈니홀에서 2월28일부터 연주하는 9번은 말러가 죽음을 앞둔 49세 때 쓴 곡으로, 짙은 체념과 초월, 내적 성찰의 분위기 때문에 그가 세상과 작별을 고한 마지막 교향곡으로 받아들여진다.(10번은 미완성) 고별의 슬픔과 천상의 빛의 환영 사이에서 떠나는 기이한 여행, 완전한 침묵으로 끝나는 4악장에서 죽음의 정화를 경험할 수 있다.
3월초에 연주할 1번은 28세 말러의 젊은 열정과 폭풍이 담긴, 엄숙함과 조야함과 흥겨움이 묘하게 결합된 독창적인 작품이다. ‘거인’이란 부제가 붙은 이 곡을 말러는 “한 영웅의 인생과 슬픔, 투쟁과 좌절, 죽음 한가운데 존재하는 운명적 삶을 그린 것”이라고 묘사했다.
5월말 연주하는 ‘천인’교향곡 8번은 디즈니홀에서 연주되기는 처음이라 기대가 크다. 2012년 말러 사이클 때는 합창단까지 진짜 1,000명이 넘는 규모였기 때문에 장소를 슈라인 오디토리엄으로 옮겨 연주했었다.
모든 음악이 그렇지만 특히 말러 교향곡은 실황으로 들어야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수많은 타악기가 등장하는 거대 오케스트라 편성에 엄청난 굉음이 터지는가 하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소리가 깔리기도 하고, 먼 효과음을 위해 무대 뒤에서 연주되는 등 음반으로는 그 폭넓고 섬세한 다이내믹이 살아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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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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