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크리스마스 무렵 교회에서 이색 게임이 벌어진다. 교인들이 가구별로 20달러 한도 내에서 선물을 구입해 강단에 쌓아놓고 제비뽑기로 각자 하나씩 골라 챙긴다. 내용을 알 수 없는 ‘복불복’의 단체 선물교환 행사다. 기왕이면 남들보다 독특한 선물을 구입하려고 교인들이 인터넷을 뒤지고 선물가게에 발품을 팔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그게 그거다.
나 역시 인터넷을 탐색하다가 기상천외의 성탄선물을 하나 발견했다. 하지만 너무나 해괴망측해 교인들 선물용으로는 노굿이었다. 스페인 동북부 카탈로니아 지방에서 유행하는 ‘카가너(caganer)’이다. ‘똥 누는 사람’이라는 뜻의 카가너는 바지(치마)를 내린 채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자세로 만들어진 도자기 인형이다. 뒤쪽에서 보면 엉덩이가 허옇게 드러나 있다.
크기(높이)가 5인치도 채 안 되는 이 인형은 예수탄생 장식에 등장하는 요셉, 마리아, 동방박사, 동물들 및 아기예수 구유의 모형들 귀퉁이에 놓여 얼핏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본래 빨간색 모자를 쓴 농부 모습이었던 카가너는 카탈로니아 일원에서 18세기 때부터 만들어져 왔다. 당시 농사의 필수 비료였던 인분의 생산과정을 형상화하고 축복하기 위해서였다.
농사꾼 카가너의 얼굴들이 근래 유명인사 모습으로 바뀌었다. 2년전 미국 대통령선거 때는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카가너가 개당 20~30달러에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역대 최고대박을 터뜨린 외국인 카가너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것이었다. 카탈로니아의 최대도시 바르셀로나에는 카가너를 제작, 수출하는 중소기업이 20여개를 헤아린다.
하지만 이런 성탄선물은 갑부나 유명인들에겐 쩨쩨하다. 보석광이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6번째 남편 리처드 버튼으로부터 420만달러짜리 루비 반지를 1968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다. 프로복싱 헤비급 세계챔피언이었던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도 부인이었던 로빈 기븐스에게 24캐럿 황금욕조를 성탄선물로 안겨줬다. 가격이 자그마치 230만달러였다.
인기가수 크리스 브라운은 돌 지난 딸을 위해 3년전 150만달러짜리 명품 강아지를 구입해 크리스마스트리 곁에 놔뒀다. 티베트가 원산지인 이 견공은 털이 빨간색이다. 러시아 억만장자 드미트리 리볼로플레프는 뉴욕의 한 대학에 유학 온 22세 딸 에카테리나를 위해 맨해튼의 초호화 샌포드 웨일 콘도를 물경 8,800만달러에 구입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줬다.
하지만 이들의 값비싼 성탄선물은 유치한 돈 자랑이다. 연말에 세인의 칭송을 받는 사람들은 가족이 아닌 만인의 복지증진을 위해 평소 귀한 재산을 기부하는 갑부 자선사업가들이다. 빌 게이츠는 지금까지 350억달러, 워렌 뷔펫은 308억달러, 리카싱(홍공갑부)은 107억달러, 앤드류 카네기는 95억달러, 아짐 프렘지(인도갑부)는 85억달러를 각각 기부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8년 재임기간에 100만달러 넘게 기부했다. 3,800만달러를 기부한 가수 엘튼 존은 2016년 영국의 ‘기부 왕’으로 꼽혔다. 경기장 무릎 꿇기 저항운동의 효시인 풋볼선수 콜린 캐퍼니크도 100만달러를 기부했다. ‘해리 포터’ 저자 J. K. 로울링과 조지 클루니, 앤젤리나 졸리, 비욘세, 조지 마이클 등 연예인들도 널리 알려진 자선사업가이다.
한인사회에 엄청나게 비싼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이 있다거나 큰손 기부자들이 있다는 얘기를 못 들었다. 마찬가지로 미국 갑부 자선사업가들로부터 기부금을 직접 받았다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한인사회엔 선물과 기부 문화가 폭넓게 정착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나 자신도 가족 친지에게 이렇다 할 성탄선물을 건넨 기억이 별로 없다.
한국일보의 연례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미국경기가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지만 한인사회 경제는 여전히 침체상황이다. 카가너는 물론 우리 교회 교인들이 주고받는 20달러 미만 싸구려 성탄선물도 기대 못하는 이웃들이 많다. 올해도 이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기 위해 큰손 자선가들보다 십시일반 기부자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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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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