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상을 노리는 좋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계절이다. 올해는 유독 예술계의 실존 인물을 그린 작품이 많이 개봉되어 어느 해보다 극장을 자주 찾게 됐다.
오페라의 지평을 바꾼 불세출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by Callas’), 불행한 삶을 살다간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At Eternity‘s Gate’), 록그룹 ‘퀸’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Bohemian Rhapsody’),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Miss Dali’), 그리고 실제 이야기는 아니지만 리메이크 될 때마다 눈물바다를 이루는 ‘스타 탄생’(‘A Star Is Born’)… 모두 천재적 재능을 가진 예술인의 삶과 예술과 죽음을 다룬 영화들이다.
이중 ‘미스 달리’를 빼고는 다 보았는데, 그래서인지 통상 들뜨고 분주해지는 연말 기분이 벌써부터 착 가라앉은 느낌이다. 하나같이 주인공의 때 이른 죽음과 비극으로 끝나는 영화들이어서 한편을 보고 나올 때마다 후유증이 며칠씩 지속되는 탓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마음이 아팠던 작품이 ‘마리아 바이 칼라스’다. 칼라스에 관한 영화와 다큐멘터리는 과거에도 나온 적이 있지만 이 다큐는 뒤늦게 그녀의 광팬이 된 탐 볼프 감독이 최근 몇년간 전세계에서 수집한 영상과 자료를 편집해 만든 새로운 작품이다. 이제껏 발굴되지 않은 자료가 많고, 칼라스가 쓴 글과 편지를 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가 대독하고 있으며, 칼라스 외에 다른 사람 인터뷰는 일체 넣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서만 ‘마리아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칼라스라는 세기의 디바’가 들려주고 있다.
마리아 칼라스는 오페라의 역사를 BC(Before Callas)와 AC(After Callas)로 바꿔놓은 수퍼스타 프리마돈나였다.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드라마틱한 음색, 무대에서의 완벽한 연기,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최고의 소프라노였고, 도도한 성격과 변덕스런 기질로 악명 높으면서도 전세계 대중의 사랑을 받은 월드 스타였다.
그러나 개인의 삶에서 마리아는 한 남자의 사랑만을 갈망했던 여자일 뿐이었다. 오나시스와 열애에 빠져 이혼까지 했지만 그가 자신을 버리고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했을 때 마리아는 이미 한번 죽은거나 다름없었다. 오나시스는 유명한 여성을 ‘수집’하기 좋아하는 바람둥이였지만 마리아에게 그는 단 하나뿐인 ‘인생의 사랑’이었으니… 그 숙명적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 ‘전설의 소리’를 버린 디바, 사랑을 좇다가 음악이 망가졌고, 사랑이 죽었을 때 그녀의 삶도 급속도로 사위었던 비극의 여인. 두 사람 다 그리스인이었으니 현대판 ‘그리스의 비극’이라 해야 할까.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 후기를 재구성한 ‘영원의 문에서’는 윌렘 다포의 연기가 뛰어난 작품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와 자연에의 경외심을 ‘아웃사이더’ 고흐의 고통스런 시각을 통해 잘 묘사한 이 영화에서 특이한 내용은 권총자살로 알려진 그의 죽음을 타살로 그렸다는 점이다. 미치광이 화가를 싫어한 동네 불량배들이 고흐와의 몸싸움 끝에 저지른 우발적 살인으로 본 것이다. 실제로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설과 많은 논란이 있으나 아직까지는 자살이 정설로 되어있다. 상상과 판단은 각자의 몫, 누가 진실을 알 수 있을까.
‘보헤미안 랩소디’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지금 한국과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는 화제의 영화다. 프레디 머큐리의 삶과 음악을 조명한 이 영화는 무엇보다 ‘퀸’의 주옥같은 노래 20곡을 자세히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감동과 열정에 빠지게 되는 영화다. 특히 후반부 25분을 통째로 할애한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 장면은 영화의 미흡한 부분들을 덮어주는 압권이라 하겠다. 한국에서는 관객이 600만을 넘어섰고, 보면서 함께 노래할 수 있는 ‘떼창관’이 있어서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 속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칼라스는 53세에 심장마비로, 고흐는 37세에 권총 부상으로, 머큐리는 45세에 에이즈로 죽었다. 셋 다 천재적 예술성을 가진 레전드였고, 대체 불가능한 아티스트였으며, 단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 이른 죽음은 전설을 불멸의 존재로 승화시킨다. 특히나 그 인생의 굴곡과 파장이 심하고, 드라마로 점철되어 비극으로 종결될 때, 전설은 신화가 된다.
12월을 보내며 생의 한 가운데 홀연히 떠난 예술인들, 20세기의 신화를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보는 것도 한해의 삶을 돌아보는 어떤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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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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