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가 방인숙의 동유럽 여행기 ②로텐부르크(Rothenburg)
성벽 입구의 꼬깔 탑
독일 전통스타일 집
숙소 앞의 옛숙소 앞의 옛 로마군인 동상 로마군인 동상
구석진 소읍인데도 중세 모습·전쟁 역사 그대로
식당에 전시 중 사용 우물 보존 ¨역사 앞에 겸허한 독일느껴
크리스마스용품 수공업·장난감 백화점 세계적으로 유명
마르크트 광장 전망대 220계단 올라가면 주변 성곽 다 보여
5시에 기상, 혼자 마을탐색에 나섰다. 단체여행 중엔 누릴 수 없는 나 자신만의 여유를 누리고 싶어서다. 보여주기 위한 관광지가 아닌 보통사람들 마을을 보고 싶으니까. 그런데 출구의 문이 한 번 닫히면 자동으로 잠겨 안에서만 열 수 있다. 망설이다가 새벽의 신선한 산책을 포기하기 싫어 일단 나갔다. 문을 당겨보니 예상대로 철벽이다. ‘무슨 수가 있겠지’하곤 안개 낀 여명 속을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숙소 앞 큰 느티나무 아래, 옛날 로마군인복장의 동상이 이순신 장군동상마냥 큰 칼 차고 보초중이다. 박물관 아니면 관공서일 빨갛고 멋진 석조건물이 고담하다. 1,2층은 거무스름하고 총탄자국도 있는데 위층들은 재건해 석조가 하얗다. 파괴됐다고 다 부수지 않고 최대한으로 옛것을 살려가며 복구했다. 비둘기 때문인지 건물전면에 그물망까지 씌워놓았다.
건물 앞 공터, 허리 높이 네모기단에 유리덮개가 있어 들여다보니, 폭격 맞아 부서진 지하계단이다. 지하철의 잔해는 아닌 것 같고 방공호였던 듯싶다. 똑같은 게 또 있어 가보니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 속에 미이라들이 엉켜있고 유리 상자엔 유물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 여하튼 전쟁당시의처참한 상황이 동작정지상태다. 전쟁각성의 의미로 보존 시켰나? 허긴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려면 과거의 분별력이 있어야하니까. 이리 구석진 소읍인데도, 분수와 조각상 작은 석조성당 등 중세의 모습과 전쟁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다. 완전 시공을 초월한 세계라 인상적이다.
숙소의 문은 우려대로 잠긴 채다. 나처럼 누군가가 나오기 전엔 요령부득이다. 벌만한 독일제 왕모기 떼들이 바람처럼 휙휙 몰려다니며 겁준다. 다른 출구 역시 잠겼다. 난감해서 주변을 살피니 벽에 단추들이 몇 개 부착돼있다. 자세히 보니 단추하나 옆에 아주 작게 ‘벨’이란 한글이 빛나고 있다. 한국관광단 단골숙소였고 저렇게 ‘열려라 참깨’가 있는데 괜한 걱정을 했다. 벨을 누르니 독어가 아닌 영어기에 문을 열어달라니 즉각 열린다. 과연 유스호스텔의 발상지고 팬션 대중화를 이끈 독일답다.
식당 바닥에 동그란 유리뚜껑이 덮여서 물어보니 전시 중 사용됐던 우물이란다. 한국 같으면 벌써 메워버렸을 텐데 여태껏 보존했다. 역사 앞에 겸허하고 진중한 독일다운 처사다.
버스에 올라 중요한 무역도로이자 성지순례 길로도 유명한 11세기에 닦은 로만틱가도를 달렸다. 갑자기 천둥번개에 폭우가 쏟아져 암울했는데 여우비였는지 잠시 후 비가 잦아들었다. 검푸른 숲이 물안개 띠를 두르니 수묵화의 정취다. 구름사이로 드러난 하늘은 언제 난리쳤나 싶게 푸르다 못해 시리다. 이곳의 전형적인 날씨란다. 더 청정해진 싱그러운 청 보리밭의 연속은 하이델베르크 가는 길과 비슷한데, 흑 송 숲들이 나타나는 게 다르다. 눈여겨보니 나무들이 도열한 주위엔 어김없이 예쁜 집들이 숨어있어 참 목가적이다.
로텐부르크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소도시지만 로맨틱가도의 하이라이트다. 중세 향기가 제일 짙어 중세의 보석이라 일컫는다. 유럽도시들은 거의가 강을 끼고 발달됐는데 이 도시엔 타우어(Tauber)강이다. 인구는 12만 명인데 주산업은 섬유, 인쇄, 철강, 전자부품, 자동차제조업 등 다양해 이태리의 피렌체로 여긴단다. 독일인들이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로 늘 1위나 2위다. 2차전 때 40%가 불탔지만 매력 있게 복원해 관광도시로 거듭났다.
구릉지에 전쟁을 대비키 위해 쌓은 성벽과 성곽의 중앙문인 뢰더문(Roder Tor)으로 갔다. 양쪽에 마법사의 모자고깔인 쌍둥이 탑과 개선문스타일의 아치형입구를 통과하니, 중세시대의 성벽과 구시가지가 확 나타난다. 산기슭에 쭉 이어진 호리병형의 성곽이 마을을 감싸고, 폭이 적어 해자 같은 타우어강이 흐르고 있다. 5,7Km나 되는 성벽위엔 목재로 지붕을 올리고 난간을 세워 통로를 만들었다. 200m간격으로 시계가 부착된 종루감시의 아치형 입구가 5군데나 있다. 옛날 어느 낯선 나라에 들어선 느낌이다. 금방이라도 중세의 기사와 영주들이 말 타고 나타날 영화의 한 장면이다. 우리나라도 서울을 에워싼 성곽과 성문만큼은 모두 다 보존됐어야 했다. 아쉬움에 속상하다.
거리 중앙에 마르크스탑이라 부르는 성문을 지나갔다. 집들 창가마다 달린 직시각형 화분엔 빨강 제라늄이 한창이다. 벽 옆이나 문 옆엔 포도나무나 줄장미 등 넝쿨식물들을 심어 아주 동화적이다. 알프스지역은 주로 목조건물이고 유럽은 석조건물이 대세인데, 독일건물은 목조와 석조의 융화가 특징이다. 지붕도 정삼각형에다 앞면을 알록달록 색을 입힌 나무를 기하학적 도형으로 장식해 장난감집처럼 보인다. 천년 가까운 고도(古道)인데도 옛집들을 내부구조만 현대식으로 개조 주거한단다. 집집마다 준공연도가 적혀있다니 사실임에 틀림없다. 건축물변경금지법 때문이다. 그 정책이 한국처럼 윗사람이 바뀔 때마다 조변석개(朝變夕改)로 달라지지 않는 것만큼은 확실한가보다.
상점의 쇼윈도엔 지난 지 반년도 넘은 크리스마스용품 전시가 그대로다. 마케팅 결여인가? 알고 보니 여기가 크리스마스용품 수공업과 장난감 백화점을 세계적으로 쳐줘, 일 년 내내 주문생산과 전시가 원칙이란다. 큰 호두까기인형들의 호위 하에 각종 전시품들로 요정의 왕국이다. 저절로 동심의 세계에 젖게 된다.
화점에 전시된 그림들 역시 어릴 적의 기억을 되불러온다. 그토록 감탄하며 동경해 모아두던 달력사진들하고 카드그림들과 똑 같다. 전부가 이곳 주변의 경관을 그린 풍경화다. 정말 마음에 와 닿았지만, 가진 것도 버려야 할 나이라 그냥 통과다. 감개무량하게 꿈에 그리던 풍정들의 실물을 눈과 가슴에다 꼭꼭 쟁이면 될 것이니까.
망치로 부셔먹는 공모양의 독일전통과자 ‘슈니발렌’의 출생지가 여기였다. 과자집의 진열장을 보면서야 알았지만 먹어보지 않아선지 덤덤하다. 상점들이 건축물도 예쁘지만 수직 간판들이 예술이다. 중세시대부터 문맹자들을 배려해 상징적인 간판을 달게 된 게 유래다. 주점인지 은색철골로 장식한 원 안에 황금색 술잔이 대롱대롱 달렸고, 게스트하우스엔 종이 매달렸다. 빵집엔 꽃이 있는 주물 안에 빵이 소복하게 담긴 바구니가 달려있는 식이고. 문맹자도 무슨 상점인지 충분히 납득이 갈만큼 포인트가 살아있다. 혹은 누구나 기억하기 쉽게 가문의 역사를 자긍심 있게 고수하는 장인정신으로, 가문의 문장인 말, 사슴, 등을 걸어놓기도 한다. 물론 밑엔 예술적 필체로 쓰여 있기도 하지만.
길바닥엔 전부 작은 돌들이 타일처럼 깔렸다. 하이힐을 잘 안 신는 나라라서 그렇다지만, 내가 정작 걸어보니 하이힐로는 걷기가 난감해 안 신게 된 거 같다. 납작한 단화인데도 돌의 감촉이 그대로 머리까지 울리는 통에 고전했으니까. 이번 여행지의 도시와 골목이 다 돌길인 걸 예측 못한 아스팔트족의 시행착오였다.
마르크트 광장 가는 길에 1608년에 세웠다는 성 게오르그 분수대가 멋지고 무게 있어 보인다. 유럽도시들은 대부분 광장을 중심으로 시청사를 짓는데 여기도 그렇다. 시청사건물이 퍽 멋진데 60m종루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마을을 둘러싼 성곽이 죄다 보인단다. 허나 220계단이나 올라가야한다니 그림의 떡이다.
청사 옆 관광안내소에 분홍색의원연회관의 시계탑에 얽힌 스토리가 재밌다. 30년 전쟁 당시 구교도측이 이곳을 점령했을 적, 한 시의원이 장군에게 3리터짜리 큰 컵에 와인을 부어 권했단다. 그러자 장군이 이 컵을 단 번에 마시는 사람이 있다면 이 도시를 불태우지 않겠다고 선언했단다. 그 때 전임시장이 그 와인 컵을 단숨에 비워내서 도시를 보존시켰단다. 그리고 도시사랑 지극하신 그 시장님께선 사흘 동안 내리 잠만 주무셨다나. 그런 연유로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정시만 되면, 마이스터 드렁크란 별명의 애국적 스토리 인형 쇼가 있단다. 종이 울리고 양쪽창문이 열리면 인형들이 나와 시장님이 와인 잔을 비우는 모습을 연출한단다. 시간이 안 맞아, 감동적인 역사가 깃든 Master draught란 인형극을 눈앞에 두고 떠나 못내 유감이다.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뮌헨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방인숙/ 수필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