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린 파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최근 미디어 전반에 걸쳐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신조어가 자주 등장한다. 온전한 분별력을 지닌 성인들은 이것을 정상이 아닌 것을 정상인양 묘사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이는 건전하고 활기찬 사회의 표준인 일상적 사고와 인간행동이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기 위해 변속기 조작을 통해 나쁜 쪽으로 진화해 왔음을 의미한다.
캘리포니아 산불로부터 빈번한 총기난사 사건에 이르기까지 온갖 자연재해와 인재를 겪으면서 우리는 점차 자연과 인간의 극단적인 표현에 길들여지고, 세상사의 괴팍함에 조금씩 익숙해진다.
이런 시기는 즉각적인 자기애적 욕구에 집착할 뿐 타인의 감정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sociopath)에게 대단히 유용하다. 예컨대 마을 전체가 불타 수십 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실종됐다 하더라도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에겐 그 끔찍함이 훨씬 덜할 것이다.
혹은 해외에서 태어난 미국 거주자가 제 3국에서 고문을 당한 후 살해돼 시신이 토막이 났다는 뉴스를 접했다 해도 소시오패스라면 침대 위에서 단 한번도 뒤치락거리지 않은 채 10시간의 달콤한 숙면을 취할 수 있다.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기질을 지닌 남성이나 여성은 자신의 처지가 상대보다 나으면 세상의 그 어떤 일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물론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내가 여기서 굳이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거론한 것은 양성 모두 유독성 자기도취증에 민감하다는 성 중립적인 이론을 의무적으로 따른 것이다. 그 같은 이론은 아마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지금 트럼프 단 한명만을 콕 짚어 말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중이다.
애초부터 트럼프를 염두에 둔 것은 사실이지만 앞서 언급한 재앙들을 모조리 대통령 책임으로 돌리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그의 수상쩍은(혹은 터무니없고, 기괴하며 정신 나간 듯한) 반응이 점차 일반화되면서 뉴 노멀의 부분을 이루는 데 기여하는 위험성을 시사하려는 것뿐이다. 현실이 무시되거나 논리적 사고와 이성적 반론이 침묵을 강요받을 때 “뉴 노멀”은 시사(current events)의 또 다른 카테고리가 되어버린다. 이처럼 (끔찍하고, 비극적이며 기이한) 일들이 발생하자 대통령은 (멍청하고, 미치광이 같으며 가당찮은) 말을 했다.
총기난사 소식을 전하는 TV 해설자는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뉴 노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잠시 전하는 말씀 듣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라고 태평하게 말한다.
산불이 캘리포니아 일대를 불바다로 만드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첫 반응은 삼림 관리자들에 대한 비난이었다. 그리곤 땅에 쌓인 낙엽을 갈퀴질만 해주었어도 산불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렇다. 갈퀴질이다. 우리는 더 많은 갈퀴질을 필요로 한다.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만이 중요하다!
사우디 언론인이자 워싱턴포스트 정기 기고자이던 자말 카슈끄지가 터기에서 살해당했을 때 트럼프는 그가 미국인이 아니고, 미국에서 발생한 사건도 아니라는 황당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CIA에 따르면 카슈끄지는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사주로 피살됐다.)
하긴 트럼프에게 수십억 달러 상당의 무기를 사우디에 판매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겠는가?
같은 날 한 무장괴한이 피츠버그의 유대인 회당에서 총기를 난사해 11명이 숨지고 수 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망자는 주로 나이든 예배 참석자들이었다.
당시 인디애나와 일리노이에서 지원유세를 벌이던 트럼프는 기자들과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예배당에 무장 경비원을 배치하고, 총격범들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예배당 안에 무장 경비원 한 명만 있었어도 총격범을 즉시 제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만약 회당 안에 무장한 다수의 경비원들이 있었다면 범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숨지는 것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며 “하지만 그렇게 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 트럼프는 이번 총기사건이 반유대주의와 연관되어 있다고 시인하면서도 자신을 지지하는 신나치와 다른 백인우월주의자 단체들과의 거리두기를 꺼려했다. 비난의 대상은 총격범에서 총기를 소지했었어야 할 다른 누군가에게로 넘어갔다. 아마도 모든 건물의 문 앞에 서있는 무장 경비원이 앞으로 우리가 직면해야 할 현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랬더라면, 그럴 수만 있었더라면, 그랬어야 하는데 등의 가정화법은 장례식장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 약간의 공감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정도는 안다. 하지만 트럼프에게는 그런 능력이 손톱만큼도 없다.
트럼프 이전의 현대 대통령들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고, 그들을 위로할 적절한 말을 찾아냈다. 그들의 슬픔을 자신의 감정으로 그대로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통령은 눈물 없는 건조한 슬픔의 쇼를 펼친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전용기에 올라타 다음 집회장소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의 탐욕스런 자아의 벌어진 틈새를 채워줄 숭배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간단히 말해 이 남자는 정상이 아니다 -- 우리는 밀려드는 혼란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오랫동안 받아들였던 표준에 그럴싸한 접두사를 덧붙여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 내려는 유혹에 맞서야 한다.
분류화(categorizing)는 강박장애의 한 표현으로 우리의 불안증에 단지 환상에 불과한 밀폐제를 발라줄 뿐이다.
그러나 뒤틀린 언어로 약을 삼는 것은 조지 오웰식의 전체주의적 위험을 제기한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무엇이 정상이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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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 파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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