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성상파괴자를 아이코너클래스트(iconoclast)라 한다. 이런 성상파괴자의 시각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안데르센 동화 ‘황제의 새 옷’에 나오는 어린애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시각으로 세상에서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인물들 중 한명인 톨스토이의 삶을 한번 살펴보자.
1862년 그는 서른 네 살 때 18세 소녀 소냐에게 청혼한다. 수백 명의 농노가 딸린 엄청나게 큰 농토의 상속자이지만, 톨스토이는 노름으로 그 유산 대부분을 탕진한다. 노름하기에 바빠 치과에도 가지 않아 치아도 거의 다 빠져버린 상태였다.
결혼식을 앞두고 그가 창녀들과 농노들 심지어는 장모 될 사람의 친구들과 성관계 한 일들을 기록한 그의 일기장을 신부가 꼭 읽어보라고 고집한다. 부부 사이에는 어떤 비밀도 있어서는 안된다며 두 사람은 앞으로 서로의 일기장을 봐야 한다면서 말이다.
따라서 가정불화로 언쟁이 계속되는 결혼생활이었지만 톨스토이는 문인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고 소냐는 애를 열 셋이나 낳으면서도 남편의 모든 원고를 전부 다 손으로 필사해 낸다. 1877년경부터 톨스토이는 예수의 가르침을 엄격히 따른다고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이후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를 만나면서 소냐를 저버리고 이 젊은 사기꾼 제자의 노예가 되어 가출한다. 1910년 82세로 레오 톨스토이는 한 시골역의 초라한 농가에서 폐렴으로 사망한다.
소냐는 온 인류를 위한 톨스토이의 사랑이 그의 처와 자식들에게는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소냐의 말이 어디 톨스토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석가모니도 처자식 버리고 가출하지 않았나. 예수나 소크라테스도 비슷하다. 온갖 사상이나, 종교, 그리고 가문의 영광이나 문학과 예술을 핑계로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알콜이나 마약 중독자가 되는가 하면 자살하는 테러리스트까지 있지 않은가.
소우주인 나 자신, 내 가족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면서 어찌 인류와 우주 만물을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눈에 안 보이는 신을 섬기기 전에 눈에 보이는 사람부터 사랑해야 한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일에도 충성할 수 있다. ‘추일사가지(推一事可知)’라고, 하나를 보면 전부를 다 알 수 있다. 그래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이고 ‘수기치인( 修己治人)’이라 하는 것이다.
또한 간디는 성인이었나 치인이었나.
우리가 성인으로 떠받는 간디의 비서 마하데브 데사이(Mahadev Desai)가 남겼다는 시 한 구절 음미해보자.
하늘에 있는 성인들과 같이 산다는 건/ 더할 수 없는 영광이요 지복천국이나 /한 성인과 지상에 함께 사는 일이란/ 전혀 또 다른 이야기이어라
인류사에 남긴 그의 위대한 족적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처신에는 그에게 약점도 많았던 것 같다. 인도의 불가촉 천민에 대한 그의 고답적인 고정관념과 피상적인 편견은 물론 그의 조카 손녀 마누(Manu)에게 가한 성추행(?)은 오늘날의 '미투(MeToo)' 관점과 기준에서 볼 땐 천하 만행으로 고발당하고도 남을 일이 아니었나.
내가 전에 런던대에서 잠시 법학을 공부할 때 인도에서 온 한 법학도로부터 간디에겐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자살했고 다른 애는 알콜 중독자였다는 말을 듣고 그가 정말 얼마나 훌륭한 인물이었었을까 회의가 생겼었다.
또 내가 젊었을 때 어느 잡지에 실린 도산 안창호 선생의 글을 읽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란 말을 되새겼었다. 그의 아내에게 쓴 옥중 편지에서 자신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한 남편, 한 아빠로서 인격 실격자요 인생 낙오자란 실토를 하는 자괴지심에서 쓴 글이었다.
옛날 옛적부터 농사 중에 '자식 농사' 이상 없다 하지 않았나. 미국 독립 때부터 최근까지 수백 가문을 추적 연구 조사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난해도 사랑과 헌신의 지극정성으로 키운 자손들이 대성하고 큰 재산만 물려받은 자손들은 잘못되더란 통계였다.
사람 누구에게나 장단점은 있는 법이고 또 약점이 있어 인간미도 있겠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인도 될 수 있고 동시에 속인 또는 죄인도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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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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