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밀한 온도 관리로 강도 높아, 천천히 녹으며 음식 맛-향 유지
▶ 각진 얼음보다 둥글수록 단단, 집에서 얼린 얼음은 강도 낮아
얼음은 강도와 투명도에 따라 사용법이 달라진다. 시판 얼음은 집에서 직접 얼리는 얼음보다 더 단단하고, 냉장고 냄새가 배지 않아 사용하기 좋다.
※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식재료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은 아무도 몰랐던, 식재료를 제대로 대하는 법을 통해 음식의 기본을 이야기합니다.
그래, 얼음이다. 어느 타는 아침, 표면에 물기가 맺혀 줄줄 흘러내리는 컵으로 아이스커피를 마시는데 깨달음이 왔다. 이번에는 얼음에 대해서 쓰자. 다른 식재료를 물망에 올려 놓고 ‘밑작업’을 하던 참에 문득, 집에서도 차가운 커피를 마신 건 올해가 처음이라고 자각했다. 프리랜서의 일과는 커피를 내리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카페인을 주입해야 일이 된다. 작년까지는 줄곧 뜨거운 커피만 내려 마셨다. 올해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정신을 못 차리던 사이, 밤에 동네 고양이에게 줄 닭가슴살을 사러 편의점에 갔다가 돌얼음을 재발견했다. 왜 여태껏 잊고 있었을까? 커피를 비롯해 많은 음식과 음료에 차가움을 한 켜씩 덧씌우면서 터럭만큼은 살만한 여름으로 변했다. 그 공을 기리고자 여름의 끝자락에 식재료로써 얼음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얼음이라고 다 똑같지 않다
일단 가장 중요한 사실부터. 모든 얼음이 똑같지 않다. 대여 가능한 정수기나 냉장고의 제빙기, 그것도 없다면 냉장고에 딸려 나오는 얼음틀 등, 집에서도 얼음을 얼리기는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이다지도 지독한 여름에 견딜 수 있는 능력은 갖추지 못한다. 일단 단단하지 않아 빨리 녹는다. 따라서 커피든 냉국이든, 어디에 쓰더라도 냉기는 많이 보태지 못하는 한편 맛은 금세 흐리멍덩해진다. 얼리고 보관하는 과정에서 냉동실 특유의 냄새가 밸 가능성도 크다. 한때 수도에 직결해서 쓰는 냉동고의 제빙기를 즐겨 썼는데 두 단점, 즉 강도와 냄새가 맞물리면서 생각보다 빨리 무관심해졌다.
그래서 얼음은 사서 쓰는 게 좋다. 물을 사먹는 세상이니 얼음도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다. 집밥과 바깥밥이 화력 등 조리 환경에 따라 사실은 달라야 하듯 집 얼음과 바깥 얼음도 크게 다르다. 여건, 특히 온도의 치밀한 관리로 인해 가정의 냉장고와 비교가 어려운 수준의 얼음을 편의점에서 쉽게 사서 쓸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얼음의 조건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 즉 강도(혹은 밀도)와 투명도를 꼽는다. 강도는 실용적인 조건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 얼음이 단단해야 너무 빨리 녹아 온도를 낮추고 싶은 음식 (특히 음료)의 맛까지 흐리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얼음을 잔에 담은 뒤 물을 부으면 와사삭, 깨지는 경우가 많은데 단단하지 않아 급격한 온도 변화에 견디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다.
투명도는 다소 미적인 조건이다. 차가움은 투명함과 잘 맞물리니 얼음이 투명하고 깨끗할 수록 냉기를 빌리는 음식이나 음료도 한결 더 맛있어 보인다. 가정에서 얼리는 얼음은 대체로 중심부가 탁하다. 높은 온도에서 빨리 얼리다 보니 순수한 물이 바깥부터 먼저 얼고, 미네랄이나 침전물 등이 가운데로 몰려 벌어지는 현상이다. 결국 단단하면서도 투명한 얼음의 비결은 높은 온도와 긴 시간이다. 어는점(0℃)보다 낮으면서도 최대한 가까운 온도에서 48시간 또는 그 이상 오래 얼려야 얻을 수 있다는 말인데, -20℃ 안팎인데다가 다른 음식 및 식재료와 공유하는 공간인 가정의 냉동고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여건이다.
음식 식힐 때 얼음 사용도 타이밍
식재료를 물에 담가 빠르게 온도를 낮출 때는 가지고 있는 아무 얼음이나 써도 상관이 없다. 다만 단서는 있다. ‘세상만사는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듯 얼음을 물에 더하는 시점을 잘 잡아야 최고의 시원함을 얻을 수 있다. 찰나 전까지만 해도 펄펄 끓는 물에서 익던 면을 채반에 건져 식힌다면, 얼음의 기운을 이미 충분히 빌어 차가워진 물에 담가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면이 다 익은 시점에서 얼음을 준비할 게 아니라, 미리 얼음을 물에 충분히 녹여 놓아야 한다. 어느 정도로 차가운 게 좋을까? 온도계 없이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뜨거운 물에서 건진 식재료를 더하더라도 차가움을 잃지 않아야 한다. 손이 시릴 정도라면 더 좋다.
게다가 비빔면은 면을 삶는 시간이 3분으로 짧은 편이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면을 제대로 식힐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 그래서 조리 전체의 과정을 머릿속에 담은 뒤 차근차근 움직이는 게 좋다. 일단 면 삶을 물을 끓인다 (전기주전자가 대체로 더 빠르고 효율적이다). 그 동안 면이 완전히 잠기고도 넘치지 않을 만큼의 물을 담을 수 있는 넓은 사발에 물을 담고 얼음을 적당량 더한다. 물이 끓으면 면을 삶는다. 그 동안 얼음이 웬만큼 녹아 물이 충분히 차가워질 것이다. 3분이 지나면 면을 채반에 받쳐 물기를 완전히 뺀 뒤 차가워진 물에 담근다. 물의 온도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올라갔다면 얼음을 좀 더한다.
면의 양에 따라 1,2분 물에 담가두는데, 그 사이에 오이를 채치거나 미리 삶아둔 계란을 반 가르고 사발을 꺼내는 등 마무리 준비를 한다. 차가워진 면을 건져 물기를 말끔히 걷어낸 다음 사발의 물을, 비빔면을 담을 주발에 붓는다. 그리고 아직 냉기가 가시지 않은 사발에 면을 비빈 뒤 주발의 물을 버리고 담아 오이나 계란 등을 올려 먹는다. 면의 온도를 낮추고 남은 물로 비비고 담아 먹는 그릇의 온도까지 낮추는 것이다. 덕분에 한결 시원한 비빔면을 먹을 수 있는데, 커피 추출이나 칵테일 조제 시 흔히 쓰는 과정의 응용이다. 음료부터 잔까지 모든 요소의 온도를 비슷하게 맞춰 최종 결과물의 온도를 먹는 동안 최대한 일관적으로 유지한다는 접근 방식이다.
흔하디 흔한 비빔면 하나라도 시원하게 먹으려니 손이 조금 더 많이 간다. 전체의 과정을 머릿속에 미리 넣으려니 생각도 많아진다.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를 가리키는 전문 용어도 있다. 업계에서는 ‘미장’이라 줄여서 일컫는 프랑스어 ‘미장 플라스(Mise en place)’이다.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둔다’는 의미로 수십 수백 가지의 식재료와 조리법이 얽히는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거치는 소위 ‘밑준비’를 의미한다. 재료는 물론 도구나 움직임까지 계산한 총체적 준비과정이다. 천리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으니 비빔면처럼 간단한 조리부터 적용해서 브로콜리 등 삶고 데치는 채소의 싱싱함을 유지하는데도 두루 쓸 수 있다.
맛을 결정하는 음식의 온도
손에 집히는 얼음을 식재료의 온도를 일시적으로 낮추는 데 쓴다면, 단단해서 잘 녹지 않는 얼음은 직접 먹는 경우, 음료에 쓰면 좋다. 레시피마다 다르겠지만 하이볼 같은 기본 칵테일은 대체로 원료나 조제법이 단순한 편이다. 그래서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겠거니 생각하고 시도해보면 ‘그 맛’이 안 난다. 모두 얼음을 써서 온도를 세심하게 조절한 덕분이다. 이런 비법 아닌 비법을 전수 받으려면 시판 얼음을 쓰는 길 밖에 없다. 칵테일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은 커피나 여름의 단골 메뉴 오이냉국에 좀 더 유용하다. 천천히 녹는 얼음으로 맛은 지키면서 시원함을 좇을 수 있다.
얼음의 손길이 음식과 맛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살펴 보았는데, 같은 원리를 뜨거운 음식에도 적용해 생각할 수 있다. 차가움과 뜨거움의 세계 가운데에 선을 하나 긋고 반을 접으면 데칼코마니처럼 대칭인 온도의 세계를 찍어낼 수 있다. 액체를 담을 잔이나 사발을 차갑게 식힌다. 면이나 채소도 차갑게 식힌다. 특정 온도로 내야 맛있는 음식을 하나의 시스템이라 여긴다면, 이를 이루는 각 요소가 모두 차가운 게 좋다고 했다. 뜨거운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한식의 핵심인 국물 음식 말이다. 뚝배기만 외로이 펄펄 끓는 것보다 전체가 하나의 따뜻함을 목표로 나아가는 편이 훨씬 더 먹기에도 편하다. 입도 대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탕 한 가지와 상온의 나머지 요소로 이루어지는 것보다, 받아 바로 먹을 수 있으면서도 한 그릇을 비울 때까지 적절히 유지되는 온도대를 찾아 각 요소의 온도를 적절히 맞춰주는 편이 훨씬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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