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고통. 육체적 아픔, 마음의 고통. 이런 게 없다면. 아마도 살아야할 의미 같은 거가 좀 엷어지지 않을까. 그렇다고 없는 고통을, 없는 아픔을 일부러 지어낼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생을 살아가는 동안만은 고통과 아픔 같은 부정적 에너지는 덜 받고 지나가는 편이 좋다. 기쁨과 즐거움의 긍정적 에너지가 더 좋다.
세상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산다. 옷 가를 스치는 인연까지 합하면 수십만 명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과 만나며 살아갈 것 같다. 아니,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살 수도 있다. 이 많은 사람 중에서 가능한 한, 안 만나고 살아가면 더 좋은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일까.
의사다. 평생 동안 의사를 단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 복중에서도 가장 큰 복을 받은 자다. 왜냐하면 완전 건강하여 의사를 찾아갈 이유가 전혀 없기에 그렇다. 정기검진 한 번 안 받고도 건강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선사시대(先史時代), 구석기 시대 때나 있을 법한 일.
3년 전에 암 수술을 받은 친구가 있다. 수술 후 경과를 보아야 하기에 6개월에 한 번씩 내시경을 해야 한다. 그런데 내시경이 예민한지, 수술부위가 예민한지. 내시경 한 번 잘못 받고 나면 이 친구 또 한 번 사경을 헤맨다. 이런 경우, 주치의 말은 내시경이 수술부위 벽을 긁어 염증을 일으켜 일어나는 케이스 일수도 있단다.
암 수술 후에도 이 친구 이런 일이 발생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정작 수술을 받은 부위는 괜찮은 것 같은데 그 옆이 아프다. 수술을 했던 전문의를 찾아가 호소하면 그곳은 수술부위가 아니어, 나 몰라 라며 항생제만 지어준다. 항생제 먹어도 낫지 않으니 친구는 뻔질나게 의사를 찾아간다. 항생제 도수만 높아진다.
아쉬운 건 환자지, 의사가 아니다. 목마른 사람이 샘 판다고. 아파 고통 중에 있는 환자가 의사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법. 그나마 친절이나 봐 주어야지. 인사를 해도 귀찮은지, 건성건성 제대로 하지도 않고. 얼굴엔 냉혈만이 흐르는 듯한 의사. 환자를 돈으로 대하는지. 아님 실험도구로 대하는지. 환자의 아픔하고는 상관없다. 이런 의사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환자를 가족처럼 친절하게 대하는 의사도 많다. 시시콜콜 환자에게 너무나 자세히 상황을 말해준다. 의학상식이 없는 환자를 달래듯 한다. 내시경을 받아야 할 환자의 입장. 너무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전혀 겁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진료 상황을 일일이 전화로 직접 환자에게 알려준다.
안 만나고 살아가면 더 좋은 사람이 또 있다. 변호사다. 변호사는 돈 주고 택해야 한다. 돈 안 받고 변호해 주는 변호사. 세상 한 사람도 없을 거다. 혹, 인권변호사라면 몰라도. 국선이나 관선 변호인도 국가나 기관의 돈을 받고 변호해 준다. 자신을 변호해 줄 변호사를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사람. 정말로 복 많은 사람이다.
육체적 고통이 아닌, 마음에 아픔이 있는 사람이 만나는 사람. 변호사다. 자신, 혹은 자식의 일로도 변호사를 만난다. 그리고 사기, 교통사고 등등. 세상엔 법으로 해결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법에 걸려 마음에 상처를, 혹은 물질에 손해를 본 사람들. 이를 회복하려고 법에 호소하려한다. 만나야 할 사람이 누군가. 변호사다.
친구 하나는 어떤 사고를 낸 후 변호사를 만났다. 아주 안 좋은 상황에서 무죄로 판결을 받았다. 이 때 이 친구와 가족들. 재판, 1년 동안 얼마나 마음의 고통을 받았는지 모른다. 이런 경우엔 좋은 변호사를 만난 거다. 물론 그만큼 돈은 더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래도 결과가 다행이었다. 온 가족이 아픔을 달랬으니.
의사도 변호사도 친구로 가진 사람. 친구로 만나는 건 매일 만나면 어떤가. 그러나 병을 진료 받아야 하는 의사. 사고 후 뒷수습 하려고 만나는 변호사. 안 만나면 안 만날수록 복 있는 사람이다. 육신의 고통, 마음의 아픔. 누구에겐들 없겠나. 고통과 아픔 이전에, 사고 이전에 건강, 건전하게만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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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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