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동안 대학원에 재학 중인 둘째 애가 여름에 인턴십을 하고 있는 시애틀을 방문했다. 잘 지내는지 궁금했고 시간도 좀 같이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정말 오래간만에 아들과 한 침대를 사용했다.
내가 시애틀을 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래 전 캐나다 밴쿠버에 가족여행을 갔을 때 들러볼 수도 있었는데,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려니 하고 그냥 지나쳤었다. 그 곳의 한인 동포사회 규모도 제법 크고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세계적 기업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어서 분명 매력적인 도시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다. 특히 둘째 애가 인턴십을 그 곳에서 하는 것으로 보아 대학원을 마친 후 그 곳에 정착할 가능성도 있겠다 싶어 나도 방문해 정보를 수집할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두 애들 모두 내가 살고 있는 워싱턴 DC 지역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동부로 돌아와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 중 누구라도 시애틀에서 살겠다고 할 경우 내가 방문도 한 번 해보지 않고 무조건 반대할 수는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시애틀을 직접 가보니 역시 여러가지로 매력이 있는 곳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애들 모두 그 곳에 살겠다고 하면 오히려 내가 그 곳으로 따라가서 이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시애틀에서 웬만한 곳은 걸어 다닐 수 있었다. 걸으면서 구경하는 것을 즐기는 나에게는 적격이었다. 대중교통 수단도 잘 갖춰져 있어 보였다. 버스비도 저렴하고 버스 노선도 상당히 많았다. 도시는 깨끗했고 쓰레기 분리수거도 내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 보다 훨씬 더 강조되고 있는 듯했다.
시애틀은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자랑한다. 호수도 많고 가까운 곳에 유명한 국립공원들이 있기도 하다. 메트로 지역 전체의 인구는 4백만으로, 6백만 이상이 되는 워싱턴 DC 메트로 지역보다 훨씬 덜 번잡해 보였다. 주민들 중 아시안 계가 14% 정도로 페어팩스 카운티의 20%에 비해 낮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안이 상당히 많다고 느껴졌다. 지역 내의 많은 테크놀로지 기업에 아시안계 청년들이 몰리고 있다. 또한 주민들의 교육수준도 꽤 높다. 전체 주민 가운데 60%가 학사 학위 이상 그리고 석사 학위 이상도 25% 가량으로 페어팩스와 비슷하다.
그런데 에어컨 없는 집들이 제법 된다. 이유는 한 여름에도 기온이 높은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닷바람도 제법 불고 습도가 높지 않아 그늘 아래에서는 고온에도 시원하단다. 그래도 더위에 약한 나에게는 에어컨 있는 집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었다. 둘째 애 숙소는 90% 정도 지하 방이었는데 에어컨이 없어 그런지 공기가 텁텁하게 느껴졌다.
항상 에어컨이 가동된 곳에서 잠을 자다가 공기가 텁텁한 곳에서 자려니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또한 3시간의 시차도 있었고 밤에 화장실을 가느라 여러 번 일어나야 하는데 한 침대에서 같이 자는 둘째 애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내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잠에서 깼을텐데 한 번도 내색하지 않는 둘째가 고마웠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방 벽 위쪽으로 작은 창문들이 있는 게 아닌가. 물어보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단다. 열어 놓아도 괜찮겠냐고 물으니 그러란다. 그래서 5개의 창문을 모두 열으니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낮에 아무도 없을 때도 통풍이 되게 열어 두라고 했다.
밤에는 기온이 제법 내려가기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가웠다. 그러나 텁텁한 것보다는 추운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창문을 열어 둔 채로 잤다. 나에 비해 추위를 타는 둘째 애는 더 춥게 느꼈으리라 생각이 들었지만 그대로 놔두었다. 일주일을 이렇게 한 방, 한 침대에서 같이 지내다가 돌아올 때가 되었다. 짐을 챙겨서 둘째에게 라이드를 받으려고 나오면서 통풍이 되도록 창문을 열어놓자고 했다. 그러자 둘째가 그제서야 솔직하게 대답한다. 자기는 결코 텁텁하단 생각이 안 든다는 것이다. 창문을 안 열고도 충분히 살 수 있단다. 그동안에 추웠을텐데 나 때문에 말을 안 한 것이었다. 이제 정말 다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