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어느 산자락에 우공(愚公)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의 나이 90이 되자, 마을을 막고 있는 앞산을 헐어버리겠다며, 굽은 허리로 한 삽 한 삽, 산을 파서 삼태기에 담아 지고는 흙을 나르고 있었다 그 일은 몇 날 몇 달이고 계속되어 마침내 마을 사람들은 그 가망없는 노인을 보고 드디어 그가 미쳤다고 비웃었다.
허나 늙음에도 어떤 깨우침이 있었던지, 평생을 그 산자락에서 나고 자란 그가 늙어가면서, 그동안 겪은 불편을 자손에게 남기지 않으려, 이제 죽기 전에 아예 산 전체를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 어림없는 수작을 보고는 그의 친구가 그만둘 것을 권유하자, 우공이 눈물 흥건한 눈으로 그 진심을 털어 놓았다 “이 보게 친구, 그동안 산둘레가 700리에 달하는 이 큰 산 때문에 우리가 겪은 고초가 얼마이던가, 이렇게 산을 파서 나르다 보면 언젠가는 끝나는 날도 있겠지…. 비록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과 손자가 있고, 그들이 자자손손 대를 이어 산을 파다보면 분명코 산이 깎여 평평하게 될 날도 있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네”
이는 열자 탕문편에 나오는 고사로서 모택동도 바로 이 ‘우공이산’의 일화를 즐겨 인용했다. 서양식으로 바꿔 말하면,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여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철학쯤으로 여겨도 좋을 것이다. 자칫 어리석은 노인의 이야기로 비춰질 수 있지만, 실은 역설적으로 당장은 실패이고 부질없는 짓으로 보일수 있어도 계속 이어져야 하는 일이, 세상에는 있다는 뜻이 된다.
이야기가 너무 요원하니, 우리가 느낄수 있는 친근한 일화에서부터 풀어보자. 교포들의 술상머리에도 자주 오르는 ‘처음처럼’이란 술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 술 이름은 유신치하 20여년을 감옥에서 보낸 신영복 교수의 싯구에서 발췌된 글체와 싯구이다.
“하늘을 처음으로 나는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솟는 봄동처럼,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아침처럼, 새 봄처럼, 그리고 처음처럼…” 이란 싯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그 신영복 교수가 이번에는 대통령직을 마치고 귀향하는 노무현에게 ‘우공이산’이란 서체를 써주었다. 그 글을 표구하여 평소 걸어놓고 보기를 좋아하던 그가, 마침내 부엉이 바위에 오르기 전에 그 표구를 떼어냈다고 한다. 아마도 그도 인간적인 좌절과 서운함은 어쩔 수 없었는지, 우공이산의 허황과 부질 없음으로 괴로왔던 모양이다.
노무현은 문재인을 소개하는 어느 자리에서,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자신을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으로 기억될 것이라 소개한 적이 있다. 어쨌든 그는 우리를 떠나 갔고, 아니 우리가 그를 떠나 보냈는지 모르지만… 정권은 어찌어찌 바뀌어 하루가 다른 국제정세는 이미 전혀 다른 역사의 운명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터무니 없는 낙관일지 모르겠으나 모든게 원만하게 잘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옛 어른들이 봄철 씨앗을 땅속에 넣으며, 미리 수확할 곡식을 탐하지 않듯 그리고 그 수혜의 대상에 관해서도 구체적이지 않듯, 우공이 그러했으며 문재인의 친구 역시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참으로 없는 듯하다. 요즘 말대로 one shot, one kill이니 단칼에 우주를 승부하는 일 따위는 더 더욱 없는 것 같다. 무엇이든 동기와 시절 인연이 있고 그것이 숙성되어도, 몇번의 실패와 좌절이 있고 난 후에야 겨우 이루어질까 말까 하는 것이 세상일인 듯하다. 늘 결과로 보면 필연이고 그렇게 된 백 가지의 이유가 있고, 그렇게 되지 못한 천 가지의 까닭을 주워 섬길 수 있으련만, 그건 어디까지나 말 잘하는 이의 품값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먹는 김치는 물론이요. 된장 풀은 냉이국, 쑥을 박아넣은 개떡 하나 모두 마찬가지로 앞선 조상 전부에 걸친 경험 축적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로 흘러든 우리가 나물을 캐고 조가비를 줍고, 복어와 다른 물고기를 구분하여 아이를 먹이고 살찌우며 또는 먹는 버섯과 못먹는 버섯을 구별하며 전수하였듯, 비단 몇 세대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 정녕 아니며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대부분이, 사실은 몇 천년 아니 수 만년의 산물일 것이다. 하물며 짐승들도 하는 먹거리가 그럴진대, 더 고등한 사고와 복잡한 정치행위 등을 하는 우리에 이르러서야 말하여 무엇하랴…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로서, 우린 과연 어떤 행위로 기억될 것이며, 당장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그 어떤 일에 골몰하여, 삽질하며 미련을 피울것인지, 생각을 굴려보는 것도 꽤나 곰삭은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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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혜 부동산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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