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딸은 한살 8개월이었다. 아이가 만 두살이 되면서 데이케어에 보냈는데, 애처로워서 볼 수가 없었다. 아침마다 내게서 안 떨어지려고 눈물범벅이 되며 달라붙더니 2~3일 후부터는 몸에 열이 났다. 밤이면 “학교에 안 가겠다”고 흐느끼며 잠꼬대를 했다.
걱정이 되어 소아과에 데려가니 의사는 분리불안 증세라고 했다. 어린아이들이 처음 부모와 떨어지면 극도로 불안해지지만 며칠 지나면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의사의 말대로 일주일쯤 지나자 아이는 신이 나서 학교로 향했다.
지난 한주 세계적 관심을 모은 사진을 보면서 오래 전 딸의 불안이 떠올랐다. 지난 12일 밤 텍사스 국경지대에서 국경수비대원이 밀입국 여성의 몸수색을 하는 동안 엄마 품에서 떨어진 아이가 자지러질듯 우는 사진이다. 꽃분홍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두 살배기 소녀는 겁에 질려 울고 있었다. 아이의 불안이 가슴을 저미게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밀입국 불관용 정책이 한바탕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국경지대 밀입국 단속은 늘 해오던 일이고, 불법입국 부모와 자녀가 격리되는 것 또한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부모 즉 성인들이 밀입국 혐의로 기소 구금되는 동안, 미성년자들은 보건후생부의 보호를 받는다.
지난 14일 기준 보건후생부 보호시설에 수용된 밀입국 아동은 총 1만1,432명. 국경을 혼자 넘은 10대들 그리고 부모와 함께 있다가 격리된 아이들을 합친 숫자이다. 지난 5월 초 9,000명이던 이들이 한달여 사이 갑자기 2,000여명이나 불어난 배경에는 제로 톨로런스(Zero Tolerance) 정책이 있다.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스티븐 밀러 백악관 선임 정책고문 등이 주도한 ‘관용 절대 불가’ 정책이다. 엄마 품에 안긴 젖먹이까지 ‘절대’ 안 봐주고 떼어내는 정책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렇게까지 초강경 정책을 들고 나온 이유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는 감히 밀입국 엄두를 못 내도록 외국인들에게 겁을 주기 위한 경고, 둘째는 합법이민 축소, 국경장벽 설치 등의 이민개혁안과 관련해 연방의회 민주당을 압박하기 위한 협상용 카드.
“너희 민주당이 국경단속에 약하고 비효율적이어서”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했다. “아이들 울부짖는 소리, 수용시설에 갇힌 모습 보고 듣기 괴롭다면 법안을 지지해라, 국경 쌓으면 해결될 일이다”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사진의 불똥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었다. 두 살배기 소녀가 겁에 질려 우는 모습은 ‘이민정책’이 아니라 ‘인류애’를 부각시켰다. “저 어린아이를 엄마에게서 떼어 놓다니, 너무 잔인하다”는 분노가 공화/민주, 이민/반이민 입장의 벽을 넘어 폭발했다. 이 나라를 난민수용소로 만들지 않겠다며 기세등등하던 트럼프는 결국 지난 20일 밀입국 가족격리 중단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렇다고 ‘국경의 비극’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근본적 문제는 남아있고, 밀입국자들은 계속 밀려들 것이며 가족들은 격리될 것이다. 미국의 남쪽국경을 넘는 외국인들은 단순 밀입국자와 난민 신청자로 나뉜다. 중미국가들의 치안이 전쟁에 버금가게 악화하면서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출신들이 죽기 살기로 밀입국을 하고 난민신청을 하고 있다. 갱단, 마약 카르텔 등 범죄조직이 경찰, 정치인들과 연계돼 살인, 납치, 강간 등 범죄가 다반사로 일어나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탈출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 이주민/난민을 미국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7월2일자 타임의 커버가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겁에 질려 울며 올려다보는 두 살배기 소녀의 사진 그리고 몸집이 몇 배쯤 큰 트럼프 대통령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진이 마주 보도록 합성되고, ‘웰컴 투 아메리카’라는 제목이 붙었다. 겁에 질린 이주민을 미국은 냉정하게 내려다 볼 뿐이다.
미국은 더 이상 자유의 여신상 밑에 새겨진 대로 “지치고 가난한 … 폭풍우에 시달린, 고향 없는 자들”을 모두 품을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전통적 백인 중산층이 저소득층으로 내몰리면서 남을 받아들을 정신적 경제적 여유를 잃어버렸다. 정치적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유색인종, 이민자, 무슬림을 공격함으로써 지지를 얻은 배경이다. 미국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근본적 가치를 저버릴 수는 없다. 민주주의와 인류애이다. 인류애의 기초는 관용이다. 종교적 인종적 관용으로 미국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번영을 이루었다. 출신 배경과 무관하게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는 개방성이 미국의 발전을 이끌었다.
미국은 관용의 가치를 중시하는 나라이다. 불법이민은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되어야 하겠지만 어린아이들을 무자비하게 분리불안증으로 내모는 것은 야만이다. ‘불관용’이 답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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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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