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동의 산악·중부의 고원·서쪽의 평원 3개 생태지대 분리
▶ 수많은 강·호수있는 남서지방 가장 비옥
에카테린버그 시 전경.
니콜라스 2세는 러시아정교 성인반열 올리고 추앙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에카테린버그 (Ekaterinburg)로
미국호텔의 프랜차이즈라 대우가 다를가 생각했지만 직원의 불친절은 몸에 배어있다. 더욱이 호텔의 첵크아웃정책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호텔 체크아웃 시간이 12시 기차는 저녁 7시다. 그래서 4시30분까지 연장하기로 하고 호텔의 하루 반값을 지불했다. 그런데 4시30분이 되니 방으로 전화가 와 4시 반까지 나가야 한다고 독촉했다. 영수증에 늦게 체크아웃 한다고 적혀 있으나 4시 반이라는 기록은 없으니 한 시간 더 있다가 나가겠다고 했더니 또 하루 반값을 더 내라고 한다. 화가 치밀어 소리를 버럭 질렸으나 소용없는 일. 짐을 챙기고 복도에 내려와서 출발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가 택시를 불렀다. 호텔에서 부른 젊은 택시기사는 내 기차시간표를 본 후 혼잡한 차들을 피해서 신속히 움직인다.
역에 도착하니 25분의 시간의 여유가 있었으며 운전수는 내짐을 끌고 역사 안으로 들어가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열차가 지연되어 그는 파킹문제로 먼저 떠났지만 시베리아에서 드물게 보는 착한 운전수다. 열차 안내판에 출발과 도착하는 11편의 기차 시간표가 나와 있었으며 각 지방으로 가는 열차의 승객들이 대부분이고 모스코바 쪽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은 것 같지 않았다. 드디어 모스코바행 열차의 표시가 안내판에 나타나 1번 프레트폼으로 나갔다.
내가 타는 1번열치 객차 7번 5-6호실 프레트폼에 서있는데 열차 안에서 또 호텔에서 역 안에서 수차 만났던 메인에서 온 두부부가 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반갑게 맞이했다. 나는 떠나고 그들은 도착했다. 내려오는 프레트폼에서 이들의 Morrison이란 이름을 크게 써들고 있는 안내원이 그들을 맞고 짐을 운반하는 포터까지 대동했다. 나는 그 부부를 보면서 큰 소리로 'I finally got your name!'하고 말해서 모두 웃었다. 사실 몇 번 만났지만 남편과 사진은 한번 찍었으나 인사소개는 서로 없었다. 이들과 자주 만나게 된 이유가 있다. 이들이 여행을 주선한 곳은 All Russia란 러시아 여행사다. 이들이 시베리아 관광은 거의 독점하고 있다. 나도 계획을 이들을 통해서 하려고 했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여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나의 일정은 대부분 그들이 택하는 것과 같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엄청난 경비의 절감도 되었지만 내가 보고 싶은 곳을 볼 수 있는 자유가 있었기에 언어 때문에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스스로 부닥쳐보는 모험적인 것도 많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열차는 서서히 움직이고 곧 넓은 Ob강 철교를 넘고 있었다.
8월 15일 화요일
아침에 잠이 깨어보니 내시계로 5:40분이다. 아직 어두움이 깔려있어 아이 폰으로 현지 시간을 보니 4:40분이다. 노보시비르스크을 떠난 지 10시간이 지나 오는 동안 시간대가 한 시간 늦어졌다. 노보시벌스크와 다음에 내릴 에카테린버그 간 약 1천마일 사이 두 시간의 시간대가 달라진다.
아침 5시가 가까워 오는 시각 시베리아에는 끝이 보이지 않은 벌판에 안개가 자욱하다. 신비롭게 보였지만 10분이 지나서 안개가 걷히고 빛나게 솟아오르는 햇빛이 벌판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경은 오래가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기후와 기온의 변화가 심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시간의 바깥온도는 섭씨 10도로 복도에 있는 전자 판이 가르쳐 주고 있다.
노보시벌스크를 떠난 지 13시간 주행하여 현지시간은 오후 7시 13분이 지나고 있다. 아직 6시간 30분을 더 가야 다음 목적지 Ekaterinburg에 도착한다. 시베리아의 누런 벌판을 곡식이 무르익은 벌판으로 수없이 오판한 황금벌판이 다시 나타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곡식이 아니라 야생초다. 선로주위에는 작약나무와 소나무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때때로 나무들이 죽어서 있는 곳들이 여기저기 있다. 작약나무가 모두 잎을 벗고 하얗게 벌거벗고 있는 것도 보기 싫지는 않았다.
시베리아는 대략 3개의 생태지대로 분리된다. 극동지방은 산악이 많으며 중부에는 산과 평원이 겸한 고원지대이며 서쪽으로 오면서 평원이 계속된다. 지금 가고 있는 곳이 평원지역 작은 마을과 소도시가 자주 나타난다. 조금 전 현지시간 9시에 20분간 정착한 Tyumen 시도 평원에 자리 잡고 있다. 노보시벌스크에서 에카테린버그 사이에 Omsk란 큰 도시가 있다. 인구가 1백 20만 명으로 우랄산맥 동쪽 시베리아에는 2번째 큰 도시며 러시아 전체의 7번째 인구가 많은 곳이다.
이곳에 하루를 체류할 계획을 처음 세웠지만 일정에 적합지 않아 일정에 포함시키지 않은 이곳에 새벽 2시경 16분 이곳에 정착했다. 이곳을 가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표도르 도스토에브스키가 사형집행을 면하고 1850-1854년 4년 동안 유배되어 중노동을 한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도시는 시베리아 의 중요한 유배지의 하나였다. 학생시절 한때 그의 작품에 관심이 있어 카라마조프 형제와 죄와벌을 읽은 일이 있다.
창밖을 내다보면서 컴퓨터와 씨름하다 보니 벌써 현지시간 낮12시 15분이 되어 약 1시간이면 다음 행선지 에카테린버그에 도착이다. 날이 보기 드믈게 쾌청하고 온도도 섭시 21도를 알려 새벽 11도에 비하면 큰 차이가 난다. 열차는 우랄지역으로 진입하여 처음으로 넓은 옥수수 감자 밀 등의 넓은 농장을 본다. 시베리아는 기후로 인하여 농업에 적합하지 않는 땅이다.
우랄산맥으로 인하여 대서양에서 오는 따뜻한 바람을 막고 있으며 또 시베리아의 산들로 인하여 극동에서 오는 따뜻한 공기를 막고 있어 농업에 적합한 기후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산들이 막고 있지 않는 곳은 북부지만 북부는 북극에 가까워 심한 추위로 농업에 적합하지 않다.
이러한 기후와 함께 대부분의 땅이 산성 토질이라 농업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남서지방과 남부 일부 지역에 광대한 비옥한 땅이 있어 농사에 적합하다. 특히 이러한 기후와 토질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강과 호수가 있어 농사에 도움이 되고 있다. 시베리아 남서부와 남부에는 보리, 밀, 감자 그리고 각종 야채와 벼농사까지 있는 넓은 농장지대다.
에카테린버그 (Ekaterinburg, 영어 Yekaterinburg)
에카테린버그는 우랄산맥 동쪽 이셋(Iset)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인구 1,500,000 의 러시아의 4번째 큰 도시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선인 유라시아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러시아에서 가장 개발된 3대도시의 하나이며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다. 우랄산맥의 광대한 광물로 인하여 한때 러시아제국의 광산수도였다. 세인트 피터스버그가 유럽을 향한 문이라면 에카테린버그는 아시아를 향한 문 (window to Asia) 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공화국 초대 대통령이 이 지역 출신인 옐친 (Boris Yeltsin)이다.
노보시비르스크를 떠난지 29시간 만에 열차는 서서히 목적지 에카테린버그 현지시간 오후2시에 도착했다. 이 도시에서 오랫동안 선교를 하고 있는 다윗 이 (David Lee) 선교사가 현대차로 마중 나와 처음만나지만 반갑게 맞이했다. 이 선교사는 집에서 저녁을 마련했다고 하면서 식사전에 우선 관광을 시작 이곳의 유명한 피의 교회로 인도했다.
피의고회라고 불리는 이 러시아정교 교회의 공식명칭은 The Church on Blood in Honor of All Saints 이다. 시내 중심지에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아름다운 러시아 정교교회다. 러시아의 최후의 황재인 니콜라스 2세와 부인과 5명의 자녀와 가족들이 볼셰비키 혁명군에 체포되어 이 도시로 옮겨 감금되어 있다가 1918년 살해되었던 집 터 위에 세운교회다.
교회내부를 보면 황재와 그의 가족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천주교의 성상과 달리 성화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가 전쟁에 참여한 사진들도 여러 곳에 붙여 있다. 러시아정교회는 니콜라스 황재와 그의 가족을 처음에는 순교자로 추대하였으나 그 후 그들을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고 가족사진을 성화로 격상시켰다.
정부는 기타종교는 제한하면서 정교에 대한 지원은 적극적이다. 종교를 이용하여 국민을 결합시키려는 한 방편이라고 이 선교사는 평했다. 교회 바로 옆에 박물관으로 옮겼다. 이 박물관도 니콜라스 황재의 박물관이라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관에 들어가는데 신발에 비닐 덥신을 신도록 하여 그곳을 더럽히지 않도록 했다. 공산정권에 의하여 살해된 황재가 공산정권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 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로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와 종교가 손을 잡고 있는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선교사의 집으로 가는 도중 그가 가꾸는 밭에 들렸다. 집 뒤뜰만한 곳이지만 이곳에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 산딸기나무, 앵두나무도 몇 거루 있었지만 상추, 호박, 깻잎 등이 자라고 있다. 야채가 부족한 러시아에서 이 농장은 이선교사의 표현대로 선교사 부부의 놀이터이자 즐거움과 동시에 맛있는 상을 차리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곳에는 중앙아시아인 들이 집을 짓고 사는 빈민촌이 되었지만 땅을 살 때는 1천불도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곳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여 가격이 10배 이상 뛰었다고 했다. 물론 농사는 여름한철 밖에 하지 못한다. 도착한 집은 조용한 주택지역에 새 아파트로 비교적 넓었다. 이미 식탁에 저녁이 준비되어 돼지고기 볶음, 야채 된장국, 김치 2가지, 깻잎과 상추, 저린 깻잎 등 정말 오랜만에 한국음식 중 한식음식을 즐겼다.
8월 16일
새벽 5시에 카카오톡 전화소리가 울려 잠이 깨었다. 어제 저녁 일찍 침실에 들었으니 충분한 잠을 잤다. 아침 10시경에 이선교사부부가 택시를 타고 호텔로 왔다. 운전수는 구 소비엣 연방국의 하나인 키리키스탄 출신이라고 했다. 자기차를 운행하기 때문에 회사차를 운영하는 것 보다 수입이 훨씬 좋다고 했다.
러시아의 크리미아 합병 이후 서방에서 경제재재를 한 후 루블의 가격이 반으로 떨어져 러시아가 큰 타격을 받고 있었다. 특히 기름 값이 떨어져 그것이 큰 원인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불만을 토로하지 않으며 미국에 대한 원성이 높다고 이선교사는 말했다. 운전수는 러시아 시민권도 소유하고 있다. 소비에트 당시 태어난 사람들은 나라가 달라도 국가 간의 협정으로 시민권을 받을 수 있도록 협정이 되어 있다고 한다. 월수입은 900정도인데 경제위기 때문에 그 정도이며 그 전에는 거의 그 배에 가까웠다고 했다.
먼저 간곳이 우랄산맥 속에 유럽과 아세아를 가르는 지점이다. 시내에서 50분정도 지나서 도착한 산언덕에는 기념비 모양의 높은 비가 높이 솟아 있고 아세아와 유럽을 가르는 표시판이 있어 한발은 유럽에 다른 발은 아세아 쪽에 각각 걸쳐 보았다. 그리고 이 선교사 부부와 운전수를 기다리게 하고 산속으로 올라갔다. 우랄산에 왔다는 기분을 내기위해서였다. 날씨는 청명하고 공기가 시원한 날 이였으며 산속의 공기는 더욱 좋았다. 거대한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있고 가끔 소나무처럼 큰 작약나무도 군데군데 서있다.
산속에 각종의 야생초들이 아름답게 피어있다. 20분 정도의 산속의 시간을 끝내고 다시 시내로 나와 점심을 위해 식당에 들렸다. 우즈베키스탄 식당으로 내부가 잘 단장되어 있는 독특한 식당이다. 몽고인이나 중앙아세아 사람들은 양고기를 즐긴다고 하는데 시베리아 여행 중 울란우데에서 먹어 보았는데 맛이 좋았다. 이 도시에 고려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한식식당이 있다고 선교사는 전해주었다. 한식집 보다는 저녁에는 러시아 식당으로 가서 러시아 의 유명한 볼쉬트 수프를 먹어보자고 주문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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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진/변호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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