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발-타협-보상-파기 미북 핵갈등 30년
▶ 전문가들‘비핵화’회의론 속 중국 주시
사상 첫 미북정상회담이 LA시간 오는 11일 오후 6시 싱가포르의 센토사섬에 위치한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사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세기의 담판이 주목되고 있다.
2018년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그야말로 격랑의 ‘롤러코스터’ 형국이다. 2017년 최고조로 치닫던 북핵 위기가 올초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급격한 반전을 거쳐 극적인 4.27 남북정상회담까지 열린 가운데, 북핵 문제 완전 해결의 키가 될 미북정상회담이 합의와 취소, 재합의 등을 반복하면서 한반도 정세와 동북아 외교 구도를 뒤흔들고 있다. 이제 LA시간 6월11일 오후 6시 시작될 계획이 확정된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이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여부에 전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세기의 빅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핵문제로 30년 넘게 대치해 온 미국과 북한이 과연 유의미하고 장기적으로 실행 가능한 진정한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회의적 시작이 우세한 가운데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의 두 가지 핵심 키워드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재 구축이 과연 가능할 지가 초미의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이 문제는 남북 및 미북 관계 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어서 향후 북한 핵폐기 진전과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중국 변수가 더욱 주목되고 있다.
■북핵 갈등 30년의 역사
이번 미북정상회담이 30년 묵은 북핵 문제가 완전 해결에 도달하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아직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1980년대 말 북한 핵시설 사진이 공개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북핵 문제는 이후 30년간 북한의 도발과 긴장 고조, 타협과 보상, 파기라는 악순환을 반복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1993년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고강도 사찰을 압박하고, 이에 북한은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하면서 불거진 ‘1차 북핵위기’는 이듬해 6월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의 방북과 미북대화의 계기를 마련했고, 양측은 1994년 10월21일 북한의 핵시설 동결과 미국 등의 경수로·중유 제공을 골자로 한 ‘제네바 미북 기본합의문’(제네바 합의)을 체결했다.
그러나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를 빌미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듬해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며 다시 미북 간 갈등이 고조됐고, 북한이 비밀리에 고농축우라늄(HEU) 개발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2차 북핵위기’가 발생했고, 북한이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미북 양자대화의 판이 차려졌고,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 내용을 담은 ‘2.13합의’(2007년)가 이뤄졌다. 이에 따라 북한은 핵개발의 상징인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고 해외 언론이 이를 생중계했다. 미국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면서 북핵 해결과 미북관계가 진전하는 듯했다. 그러나 2008년 북핵 검증방법을 둘러싸고 한미와 북한이 충돌하면서 9.19 공동성명 역시 사문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세기의 빅딜 나올까
이번 싱가포르 ‘세기의 담판’에서 과연 ‘초대형 빅딜’이 도출될 지 관심이 쏠린다.
미북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비핵화에 초점을 맞췄지만, 북한이 요구하는 비핵화의 반대급부로서 체제 안전 우려 해소도 함께 다룰 수밖에 없어 보인다. 미북정상회담은 결국 북한의 비핵화 약속과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보장을 맞바꾸는 방식의 딜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미북정상회담 성공의 열쇠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얼마나 확실하고 미국이 이를 신뢰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핵을 보유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행동조치를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취하느냐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를 조기에 해외로 반출해 현재 핵위협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다 핵탄두를 미국까지 날려 보낼 수 있는 운반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폐기도 핵심이다. 따라서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와 ICBM을 조기에 반출해 해체함으로써 미국의 안보우려를 제거하는 것이 비핵화 합의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비핵화 조치에 관심을 가진다면 북한은 자신들의 안보우려를 동시에 해소해야만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의 더 크고 빠른 초기비핵화 행동조치를 요구하는 만큼 북한은 더 확실하고 유의미한 안전보장조치의 조기 약속을 원할 것이 자명하다. 이와 관련 일단 종전선언 카드가 급부상하는 모양새다.
■미중 관계도 큰 변수
문제는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로드맵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인데, 북한의 비핵화는 한꺼번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지적이고 결국 속도는 내되 잘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북 모두 비핵화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중국 변수다. 세계 두 초강대국 지위를 겨루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불사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 정세와 북핵 문제를 두고도 한바탕 충돌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통일이 이뤄지거나 급격한 평화 진전이 이뤄져 미국의 영향력이 자신들의 국경까지 치닫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데이빗 로스코프 <카네기재단 교수>
■ 전문가 시각
“닉슨이기에 중국과 데탕트가 가능했었다는 말이 있듯이, 트럼프만이 북한과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사상 초유의 미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중국의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고 한다. 국제문제 전문가인 데이빗 로스코프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방문교수가 최근 LA타임스 기고문에서 전한 말이다.
로스코프 교수는 그러나 단기적인 북핵 위기 해결 전망이 미국과 한국, 북한, 중국 등 한반도를 둘러싼 당사국들의 장기적 이해관계가 서로 다름에 따라 결국 실패로 귀결될 우려가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올해는 미국의 중간선거가 예정돼 있는데다 궁극적으로 2020년 재선이 걸려 있어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적 성과물이 필요하고, 북한도 정권 수립 70주년을 맞는 만큼 북한 주민들에게 변화된 상황을 보여줘야만 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모두 미북정상회담을 통해 뭔가 합의를 보여줘야 할 정치적 수요가 있다는 것이 단기적인 합의가 도출될 수 있다는 근거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북한 비핵화 합의가 이뤄진다해도 이것이 장기적으로 북핵 완전 폐기 성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는 게 로스코프 교수의 진단이다. 최근 중앙정보국(CIA)가 분석한 대로, 북한이 미국과의 합의를 통해 비핵화 목표를 명시할 수는 있지만, 북한 김정은이 리비아의 카다피와 같은 운명이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북한의 모든 핵 역량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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