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엔지니어로 있다 지금은 한국계 전자상거래 기업인 쿠팡의 실리콘밸리 리서치센터에서 시니어 엔지니어로 일하는 중국계 빅터 첸. 40대 초반의 진서방이 자쿠지에 앉아있다 지나가는 나를 불렀다. 필시 그 전날의 대화 때문일 것이었다.
전날 사우나 안에서 나는 인도계 신경정신과 개업의인 50대 중반의 바랏트와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북한정권의 움직임에 대해서 열띤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빅터가 들어왔다.
대화 내용은 김정은 위원장이 불과 40여 일만에 중국으로 다시 가서 시진핑 주석을 만나야 할 긴급하고도 공개할 수 없는 이유가 뭘까 였다. 아마도 30대 초반의 나이로 외교현장에서의 경험이 별로 없는 김 위원장이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대통령, 그것도 매우 예측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데 따른 스트레스를 어떻게 잘 감당할 지 등에 관해 시 주석으로 부터 조언과 응원을 받고 싶었을 것이라는 가벼운 추측으로 부터 대화는 시작됐다.
북한이 핵무기를 어딘가에 꽁꽁 은닉해 서방의 핵사찰을 피해내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회담을 통해 경제 제제에서 벗어나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경제지원을 이끌어 내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한 뒤, 유사시 언제든지 핵 재무장을 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비밀 논의를 나누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까지 우리의 대화는 이어졌다.
엘리트 정신과의사인 바랏트는 한 술 더 떠서 어쩌면 중국이 북한 핵무기를 대리 보관하고, 후일 북한이 궁지에 몰릴 때 북한에서 스위치를 누르면 중국에서 핵무기가 발사될 수 있는 시스템을 허용했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말하며 너털웃음을 지을 무렵 빅터가 입장한 것이다.
중국과 인도는 세계 1,2위의 인구 대국이자 최근까지 이어진 국경분쟁으로 상호 감정이 그리 좋을 수만은 없는 사이이다. 당연히 사람들끼리도 미묘한 대결 감정이 흐르고 있을 터. 빅터의 갑작스런 입장으로 중국을 의심하는 대화를 중단하면 분위기가 오히려 어색해질까봐 우리는 좀 더 말을 잇다가 나는 먼저 나왔다.
이후 빅터는 말없이 듣고만 있다가 바랏트에게 쓴 소리를 한 모양이었다. 상대방의 출신국가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대화는 서로 피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만약 요즘 자주 보도가 되고 있는 인도의 연쇄강간 살인사건에 대해 공개적인 자리에서 거론하면 듣는 너는 기분이 어떻겠냐고 반문하며 바랏트를 나무랐다고 심란한 표정을 짓는다.
듣던 나는 “정말 일리가 있는 말이야. 어제는 이미 시작된 대화를 네가 들어왔을 때 중단하기가 어색해 벌어진 실수였으니 너그러이 이해해주면 참 고맙겠다”고 진심으로 빅터에게 사과했다. 합리적인 엔지니어인 빅터도 내 손을 잡아주며 맺힌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우리가 살다보면 의도했건 안했건 껄끄러운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 당혹스런 순간을 현명하고 아름답게 수습해내는 처방은 ‘어쩌라 구?’ 하며 뻗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라는 단순하지만 값진 교훈을 확인한 아침이었다.
한반도가 전 세계인의 비상한 관심을 끌다보니 요즘 짐에서 나의 존재감은 연일 상종가다. 심지어 샤워를 하고 있을 때 커튼 너머로 또 다른 중국인 친구인 레이가 큰 소리로 내게 알려줄 정도다. “6월12일, 싱가포르래!”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볼 때, 북한과 미국은 이미 거의 모든 주요항목에 대해 합의를 마치고 싱가포르에서는 두 정상이 싱가포르 슬링을 곁들인 칠리 크랩 요리를 함께 나누며 역사적인 합의서 조인 및 핵무기 없는 한반도 시대의 개막을 전격 공동선언하는 절차만 남은 것으로 보여 진다.
북한이 핵무기를 수단껏 감춰놓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과 국제 핵사찰단의 전면적이고도 완전한 사찰을 조건 없이 수용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북한의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조치(CVID)에 대한 보상으로 이뤄지게 될 한·미·일 3국의 대규모 경제지원과 투자, 그리고 북한의 인프라 구축지원에 따른 북한사회의 필연적인 개방이 향후 한반도 안보 지형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진정 온 세계인의 관심사다.
지구촌은 다음 달로 예정된 북미 정상 간의 한국전 종전선언, 한반도 비핵화 및 남북대화 시대의 개막을 기대하면서 온 이목을 싱가포르에 집중하고 있다. 민족의 숙원인 통일이 독일의 경우처럼 느닷없이 벌어지는 기적은 과연 일어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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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 중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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