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장모님의 회혼식이 있어서 한국에 다녀왔다. 결혼 25주년이면 은혼식, 50주년이면 금혼식, 60주년 기념은 회혼식인데 흔한 일이 아니다. 회혼식은 부부가 오랜 세월 같이 잘 살았다는 것 외에도 집안이 평안할 때 하는 것이므로 참석하신 분들도 평생에 고작 1-2번 참석해본다고 하셨다.
두 분의 뜻에 따라 잔치는 조촐하게 치렀다. 감사의 예배, 참석하신 분들과 서로 기억나는 희로애락의 이야기 나누기, 장인 장모님에 관한 퀴즈와 삼행시로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솔직히 두 분도 순탄한 세월만 보내신 것은 아니었다. 평안도의 개화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한 장모님과 유교의 전통적 남성위주 집안에서 자란 장인이 만나셨으니 두 분의 인생여정도 남북통일만큼이나 순탄치 않았다. 그럼에도 60년을 살아내셨다는 의미의 축하잔치였다.
회혼식을 영어로는 다이아몬드 기념일이라고 부르는데, ‘해리 김의 보석상 이야기’(2016년 출판)를 통해서 다이아몬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이 반짝이는 보석은 경도가 강해 어떤 물질과 마찰하게 되면 다이아몬드에는 흠집이 안생기고 다른 물질에 흠집이 생긴다. 만일 콘크리트에 문질러 흠집이 생기면 가짜이다.
반면 강도는 보통 수준이기 때문에 외부의 충격에 깨질 수가 있다. 망치로 다이아몬드를 문지르면 망치의 표면이 긁히지만 내리치면 다이아몬드가 깨진다. 다이아몬드는 투명도가 높을수록, 불순물이 없는 무색일수록 비싸다고 하는데 사랑도 투명하고, 화려하지 않지만 미움이 없는 무색일수록 오래 지속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부부의 사랑 관계도 부대끼면서 지속될 수 있지만, 쳐서 깨뜨리면 안 됨을 깨닫는다. 다이아몬드의 사이즈를 결정하는 중량은 값에도 영향을 미쳐 1캐럿(0.2 그램)과 2캐럿의 값은 두 배가 아닌 큰 폭으로 비싸진다. 깊고 큰 사랑을 키워나간다는 것은 몇 배나 힘들다는 것일 게다.
다이아몬드 1캐럿을 얻기 위해서는 평균 250톤의 자갈과 바위를 캐야할 만큼 채취가 어렵다. 이러한 희소성 때문에 예전에는 왕이나 일부 귀족들이 독점한 보석이었으나 15세기경 프랑스의 왕 샤르 레아가 그의 정부 아그네솔에게 핑크 다이아몬드를 선물하면서부터 여성들도 다이아몬드를 지닐 수 있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결혼반지로 쓰이게 된 것은 1477년 오스트리아의 맥시밀리언 대공이 프랑스 버건디 왕국의 공주에게 청혼할 때 사랑의 약속으로 주면서부터라고 한다.
20세기에 남아프리카에서 엄청난 양의 다이아몬드가 발견되면서 세계 최대의 유통회사인 ‘드 비어스’가 1947년부터 일반대중을 상대로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광고를 시작했다. 이 광고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다이아몬드가 오늘날 보석의 대명사가 되었다.
현실적으로 다이아몬드가 낭만과 사랑에만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피의 다이아몬드’로 표현되는 아픈 역사가 있다. 아프리카에서 내전 중인 지역에서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판매되는 다이아몬드를 지칭한다.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은, 인구 600만 명에 한국보다 작은 나라인데, 1990년대 20만 명이 죽었고, 25만명의 여성이 유린됐고, 2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반군은 민간인들을 마구 학살하고 주민들이 투표하지 못하도록 손목을 절단하였다. 정부와 반군 등 모든 정치세력이 다이아몬드 생산지를 점령하려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였다. 큰 보석상들은 이틈을 노려 생산지에서 다이아몬드를 싸게 사서 미국 등지에 비싸게 팔았다. 서아프리카 평화유지군 등 국제사회는 빈털터리 정부군을 지원했는데, 보석상들은 반군에게 자금을 대주며 전쟁을 연장하는 꼴이었다.
2000년 남아공에서 킴벌리 대책회의가 열리고 2003년부터 전쟁범죄와 관계없다고 인증된 다이아몬드만 거래할 수 있게 하였다. 시에라리온 내전은 끝났고 반군 지도자와 독재자들은 사라졌지만 ‘피의 다이아몬드’로 가장 큰 이득을 챙긴 보석상들은 멀쩡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장인어른께서 잔치 인사를 드리면서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감사한 것뿐입니다. 제 아내의 모든 희생과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지난날 잘못한 것 용서하시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잘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은 힘을 다 할 겁니다.”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였다. 그렇다! 사랑은 달콤한 환상이 아니다.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로 얻은 사랑은 깨어질 수 있지만 약속으로 지킨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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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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