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의 금요일은 매치의 날(The Match Day)이었다. 매치는 경기, 시합, 맞수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테니스, 권투, 축구 시합에 매치라는 말을 넣는다. 다른 뜻으로는 어울리는 사람, 배우자 혹은 “무엇을 맞추다”라는 뜻이 있다.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부르는 매치의 날(The Match Day)은 미국 전역의 의대 졸업생들이 전문의 수련과정(레지던트)에 들어가기 위해 지원한 병원 합격발표가 있는 날이다.
매치라는 말이 나오게 된 이유는 미국 전체 종합병원과 3만 여명 되는 의대졸업생들이 서로 면담 후에 원하는 병원과 지원자들을 정해서 제출하면 컴퓨터가 서로 연결을 시켜주기 때문이다. 성적이 좋으면 본인이 원하는 제 1 지망 병원에 들어가게 되지만 매치가 잘 안되면 제 2, 제 3 지망으로 밀려나게 되기 때문에 잘못하면 자기가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병원에서 몇 년간 레지던트를 해야 되는 경우도 일어날 수 있다.
나도 내심 그날의 소식을 기다렸는데 의과대학 졸업반인 딸이 여러 병원과 면접 후 현재 다니는 학교 병원에 내과 레지던트를 제1 지망으로 지원해 놓았기 때문이다. 내과 지원경쟁은 그다지 치열한 편은 아니나 원하는 병원의 자리는 만만치 않았다. 기다리던 발표 후에 딸은 자기가 다니던 본교 내과에 레지던트로 남게 되었다고 기뻐하였다.
의학적으로 “매치”라는 말이 매우 중요하게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장기 이식의 경우이다. 신장, 간이 완전히 기능을 상실할 경우 건강한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게 되는데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간에 조직형이 맞아야 성공률이 높아진다. 조직형이 맞을 때 “매치가 된다”라는 말을 쓴다.
요즘은 장기 이식이 발달하여 신장, 간장, 췌장/신장 복합이식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장기 이식의 역사는 기원전에도 기록이 있지만 임상적 의미로는 신빙성이 약하고 19세기에 들어 피부이식, 1920년부터 혈액이식인 수혈이 성공적으로 시행되면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1954년 미국에서 일란성 쌍생아간에 신장이식이 성공적으로 시행되면서 현대 이식은 급속한 발전을 하게 되었고, 현재 세계적으로 한 해 동안 신장이식은 3만 건에 달하고 있다.
이식 역사의 초창기에는 면역학적인 거부반응으로 종종 이식 장기를 잃었고 거부반응을 막기 위해 면역억제 약을 과도하게 썼을 때는 감염으로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데 말부터는 사이클로스포린이라는 획기적인 거부반응 치료제가 개발되어 1년 이식 장기의 생존률이 90% 이상을 웃돌기 시작하였다.
장기이식에서는 2 개의 항원계가 이식조직의 적합성에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된다. 하나는 A B O 혈액형이다. A형은 A형에게, B형은 B형에게 줄 수 있고, O형은 모든 혈액형에게 이식이 가능하다. 이 법칙을 무시하게 되면 장기는 거부반응에 의해 파괴가 된다.
혈액형 외에 또 다른 중요한 조직적합성 여부는 HLA 항원이 결정하게 된다. 사람의 백혈구에서 발견된 항원이라는 의미의 HLA는 인체 세포 속에 있는 6번째 염색체에 위치하며 조직이나 장기이식 시 이식된 장기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유전자들이다. 이 항원들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또는 비슷한 장기가 이식될 경우 이식된 장기가 잘 생존하게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거부하는 역할을 한다. 이 유전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기 때문에 부모 자식 간에는 50%가 유사하고 형제자매간 일치 확률은 25%에 이른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세포 안에 있는 염색체가 고유한 ‘나 자신’을 형성하고 다른 개체와 구분을 하는 유전적 정보를 가지고 있다.
매치의 또 다른 의미인 배우자라는 말을 생각하면 더 신기한 생각이 든다. 지구상 70억 인구 중에 하필 둘이 매치되어 배우자로 사는 것을 생각하면 신기하지 않은가?
부부끼리 장기를 주는 경우는 드물지만 매치가 잘 되어 어울리는 짝으로 살기도 하고, 권투 경기처럼 연일 신나게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거나 보통 인연이 아니다. 이 인연은 둘 다 인간 유전자 염색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다른 유전자 염색체를 가진 종(種, species)들은 서로 후손을 낳을 수 없기에 매치가 되지 않는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참 귀한 만남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유전자는 의지로 바꿀 수 없지만 인간관계 속에서 어떤 매치로 살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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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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