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쉬 마을의 들판
아미쉬 식당
집이나 상점에 별표시.창문 커튼 등 초록색이면 아미쉬
형제애 돈독하고 남 해치지 않는 무저항.자연평화주의
모든 식재료 직접 재배 보기 투박해도 유기농 티가 확
자연시인 윌리엄 워즈워스
가 언급했다. “알프스에서 본 풍경들이 평생 동안 자신에게 행복을 주었다고.” 또 어디선가 ‘여행은 삶의 균형이라는 조약돌을 줍는 길’이란 글도 읽었다. 나도 매주 산행하는 팀원 5명과 모처럼 조약돌을 주우러 가을 여행에 나섰다. 여행은 사람을 성숙시키고 성찰에 이르기도 한다니 여러모로 값질 테니까.
우선 펜실베니아 주의 필라델피아에서 서쪽으로 65마일 떨어진 랭커스터로 갔다. 퀘이커 스테이트(Quaker State)라는 별명답게, 그곳엔 1800년대 초부터 퀘이커의 한 분파인 아미쉬들이 사는 '펜실바니아 더치 카운티'가 있다.
아미쉬들은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세례여부를 결정하는 스위스에서 시작된 종파인 재세례파(Anabaptist)다. 그 종파가 유럽에서 기독교 이단으로 간주 되자, 스위스와 독일, 네덜란드에 살던 종파들이 종교의 박해와 억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 후손들의 공동체가 아미쉬다. 지금은 오하이오, 인디애나. 일리노이즈, 미시간 주와 캐나다의 온타리오, 멀리 남미까지 분포됐단다. 미국과 캐나다에 만도 20만 명이 산단다.
아미쉬들 중에 보다 진보적인 메노나이트(Mennonite)들은, 운전도 하고 가스로 냉장고를 작동하고 태양열 발전기로 전기를 생산해 쓴단다. 비상시를 대비 마을 입구에 단 한 대의 공중전화도 있단다. 그들은 청소년기에, 아미쉬냐 메노나이트냐 혹은 일반인으로 사느냐의 선택권을 주는데, 10%정도만 바꾸고 대개가 그대로의 삶을 유지한단다.
일반 학교도 아닌 한 교실학교에서 높낮이가 다른 책상걸상을 비치해 1학년부터 8학년까지 같이 배운단다, 8학년만 마치면 대학도 안 가고, 여자들은 살림이나 요리, 재봉을 배워 전통누비인 킬트(Quilt)도 만들고, 남자애들은 농사를 배운단다. 자연히 결혼적령기도 일러 보통 자녀들이 평균 7명인데 13명까지도 있단다. 허긴 우리 어머니 세대도 전쟁 직후라 그랬는지 적으면 5명 많으면 9명이고 했었다. 나도 6형제니까.
아미쉬들은 투표권행사도 없이 외부와 문화교류를 차단하고, '그들만의 리그'인 전통 깊은 삶의 방식대로 살고 있다. 전기, 전화, 자동차, 냉장고, TV, 세탁기 등 온갖 편리한 문명의 이기들을 외면한 채 말이다. 비행기도 못 타며 심지어 부모 눈을 피해 멀리가지 못 하게끔 자전거조차 금지다. 대신 부모가 만들어준 무동력 스쿠터만 탄다. 라디오, 신문도 없고 휘발유나 상업적인 화학용품일체를 배제하고 오로지 친환경적으로 산다. 형제애가 돈독해 절대 자신이 살고자 남을 해치지 않는 무저항주의에다, ‘땅의 사람들’이라 불릴 만큼 흙 노동을 신성시하는 자연평화주의자들이다.
까마득한 32년 전이다. 세 가족이 랭커스터 근처 캠핑장에서 캠핑한 뒤 아미쉬 마을을 방문했었다. 완전 서양민속촌격인 마을의 거리는 18세기 영화의 세트장이란 착각이 들게 했었다. 대장간에 들어가 옛날식의 쇠 담금질로 농기구와 연장 만드는 걸 구경했고, 그들 전래의 특유비법을 고수하는 치즈제조과정도 엿봤었다.
이번 일정엔 아미쉬 마을 관광은 없고 그들의 전통음식식당에서 식사만 한다. 가는 도중, 혹여 랭커스터의 한적한 길에 약 200개 정도 현존하는 지붕 있는 다리(Covered Bridge)가 눈에 띄나 두리번거렸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자 영화인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그런 빨간 다리 말이다. 역사적인 장소로 국가에 등록(National Register Historic Place)된 지붕 덮인 예쁜 다리도 많다는데 한 개도 못 봐 아쉽다.
머리에 검은 모자 쓴 여자와 검은 모자에 턱수염 있는 남자들이 탄 말 한필이 끄는 이륜이나 사륜마차인 버기(Buggy)를 몇 번이나 봤다. 그들 차림새로 보아 부부나들이다. 여자들은 미사포 같은 하늘하늘한 천의 커버링이란 하얀 모자를 쓰는데, 유부녀는 검은 수건 모자를 쓴다니까. 또 남자들은 결혼하면 턱수염을 기른다니까.
그뿐인가. 여자들옷은 화려한 패턴이나 무늬 없는 단색에 반팔소매는 안되고 치마길이도 무릎아래 7부 정도다. 하얀 앞치마는 미혼여자가 교회나 결혼식 등에 갈 때 착용하고 결혼하면 검정 앞치마로 바뀌고. 보석 외에 단추도 사용불가라 옷을 핀으로 고정시키고 검은단화만 신는단다. 남자들도 단추나 지퍼, 혁대도 없는 멜빵바지만 입고 평상시엔 단색셔츠에 검정바지착용이란다. 교회 갈 땐 반드시 흰색셔츠에다 검은 양말 검정구두고. 단조로운 패턴이라 진력나겠다 싶지만, 쓸데없이 옷치장에 신경 쓸 일 없고 실용적인 면으론 좋겠다.
차창으로 보이는 마을들이 참 전원적이고 평화로워 보인다. 집이나 상점에 별표시가 있으면 아미쉬가 사는 곳이란다.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별을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서라나. 그리고 창문에 블라인드나 커튼이 초록색이라면 아미쉬의 집이란 표시라지.
마을을 보니 해리슨 포드주연의 '목격자'란 영화가 오버랩 된다. 1985년에 나온 형사범죄영화였는데, 우연히 살인범을 목격하게 된 아미쉬 아이인 증인을 찾아 주인공이 아미쉬 마을로 피신해 생활하게 된다. 아미쉬 교도들의 근면 검소함과 겸손, 마을의 공동체를 위한 철저한 협동정신과 생활상을 영화에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아미쉬 식당이 아주 크고 넓다. 식당 벽엔 아미쉬 화가들의 그림들이 갤러리인양 쭉 걸려있는데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물레방아, 교회, 목장, 집 등 아미쉬 마을의 자연적이고 유서(由緖) 깊은 풍광이 별, 달, 구름, 눈과 어우러진 완전 동화나라다. 전부 어릴 적 카드에서 보고 동경했던, 바로 그런 옛 풍경의 아름다운 그림들이다.
여러 가지 음식들이 순차적으로 나오는데, 모든 식재(食材)가 직접재배 직송이라 확실히 싱싱해 보인다. 감자, 옥수수, 야채 등의 요리와 빵은 투박해서 명세표 없이도 유기농 티가 확 난다. 나는 멀미 증세인지 메슥거려 맛을 하나도 못 보지만, 그들의 전통파이인 우피 파이(Whoopie Pie)와 브라우니도 시골적인 모양새와 달리 맛이 뛰어나단다. 일행들은 음식들이 다 담백하고 일미라는데, 나는 마지막 코스인 스테이크까지 아깝지만 그냥 밀어냈다.
의외로 곁들여 나온 닭튀김이 조금 땅겼다. 기름 냄새로 비위가 더 역할까 주저하며 조금 맛봤다. 우와! 기름 냄새 닭 냄새가 전연 없다. 보편적으로 미국식당음식이 한국인들에겐 짠 편인데, 짜기커녕 겉은 바삭함에도 살은 연하고 뒷맛까지 개운하다. 오히려 울렁거리던 속을 진정시켜주는 깔끔한 맛에 3개나 먹었다. 단식하는 사람처럼 음식구경만 하던 차라 웬 떡이냐 싶었다. 어이됐건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할아버지는 기필코 시식해보셔야겠다.
그나저나 육질이 왜 옛날에 생닭을 잡아 요리해 먹었던 그 맛처럼 월등할까? 똑같은 튀김이건만 맛은 왜 천지차이일까? 좁은 공간에 갇혀 항생제 섞인 사료로 연명하며 고통으로 점철된 생을 보낸 닭과, 드넓은 자연의 품에 안겨 자유롭고 보람 있는 생을 누린 닭의 차이인가? 우리네 인생도 삶의 질에 따라 행복지수와 신체지수가 천차유별(千差類別)이듯이...
식사 후 주위의 푸른 초장으로 다가갔다. 철조망 너머 멀리 드넓은 목초지에 말들이 있고 농가와 마사(馬舍)로 보이는 창고도 있다. 빨래들이 장대아래서 햇볕나들이 하는 걸로 보아 아미쉬 집이 틀림없겠다. 그들의 유일한 빨래건조방식이니까. 그 목장을 배경으로 해서 사진 찍는 걸로 마을 관광을 대신했다.
아미쉬들 삶의 일상과 사고방식은 우리완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르다.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은 엄청난 문명의 이기로 말할 수 없이 편리해졌으니까. 그렇다고 그들보다 더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걸까? 오히려 첨단 디지털 문명의 눈부심에 도취해 심성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살벌해져가고 있다. 인제는 죄 없이도 억울하게 생명을 저당 잡히는 요인들이 너무 많다. 약물남용과 알코올중독, 안면수심(顔面獸心)의 잔혹범죄, 미국의 일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인 무분별한 총기사태, 성역이어야 할 학교에서의 무차별 총격참사.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묻지마 테러'와 대량살상, 전쟁까지...
인간들은 점점 끔찍해져 마치 괴물처럼 변해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멈추기는커녕 더 가속도가 붙는 악순환으로 도시 현대인들의 삶은 위태위태하다. 우리는 지금, 과연 인간으로서, 옳은 길을 향해 올바르게 가고 있는 걸까?
그런 걸 생각하면, 아미쉬들이 문명을 일체 거부, 이른바 아날로그 식 생존법과 불편한 생활방식을 자초영위 한다고 딱히 여길 게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문명의 노예가 아닌 생의 주인으로, 여유 있게, 참 인간답게, 삶을 누리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계속>
<방인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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