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고객들에 엄선제품 125종 담은 카탈로그 발송
▶ 전국 664개 매장서 전방위적인 노력 경주
메이시스가 왜 자기 혁신을 해야 하고, 어떤 변화를 원하고, 그 변화가 힘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최근 고객들에게 발송된 전단 책자 두 종의 비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첫 책자는 다가오는 연말 성수기를 겨냥한 새 마케팅 전략의 핵심인 작은 카탈로그다. ‘우리가 사랑한 선물들(Gifts We Love)’이라는 제목의 이 깔끔한 전단에는 메이시스가 판매하는 수만 종의 상품 중 전략적으로 선택된 125종이 담겨있다. 어그 사의 포근한 실내용 가운, 180달러짜리 스타워즈 드론 등 각 제품이 고급스러운 고품질 사진과 우아한 서체로 소개됐다. ‘40% 추가할인’이나 ‘전 제품 30~75% 세일’ 같은 말 풍선 할인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노드스트롬이나 색스 같은 고급 백화점의 전단 느낌을 풍긴다.
이 전단은 불과 며칠 전 메이시스가 발송했던 것과 놀라울 정도로 달랐다. 앞선 전단이 홍보한 파격세일(예: 토미힐피거 캐주얼 재킷 65% 할인)은 서머타임 종료일까지 진행됐는데, 세일 행사를 위해 적당히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슈퍼마켓의 쿠폰 북처럼 산만한, 절박하다는 인상마저 주는 전단이었다.
‘우리가 사랑한 선물’은 미국 최대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가 꿈꾸는 미래를 상징한다. 메이시스는 중상급 브랜드 시장을 선도하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미국 내 664개 매장에서 전방위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반면 서머타임 세일 전단은 메이시스가 극복해야 할 현실을 나타낸다. 제품 차별화 대신 출혈 경쟁에 몰두한 결과, 대형 유통업체들은 현재 공멸의 위기에 몰려있다.
두 전단이 상징하는 정체성 위기는 오래된 문제이다. 회사로선 해결이 시급하다. 메이시스-38개 매장을 거느린 블루밍데일 체인도 소유하고 있다-는 지난 11월 동일점포매출이 11분기 연속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동일 점포매출은 신규 개장 혹은 폐점한 점포를 제외하고 매출을 집계하는 방식이다. 메이시스 주가는 2015년 최고치를 기록한 후 70% 이상 급락했다. 이 추세를 역전시키는 것이 지난 3월 취임한 제프 제넷 CEO의 임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연말 쇼핑 시즌이 메이시스에서 34년간 잔뼈가 굵은 그의 역량이 검증될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연말 연시 휴가 시즌 선물을 사려고 몰려드는 손님들 덕분에, 이 기간에 전체 매출의 30%가 발생한다. 오직 이 기간에만 메이시스를 방문하는 고객들도 많다).
제넷(56)은 메이시스의 별 모양 로고와 연동해 이번 시즌 계획의 이름을 ‘북극성’이라 붙였다. 분위기는 ‘우리가 사랑한 선물’ 전단에 훨씬 가깝다. 메이시스가 단순한 상점이 아닌 유통업계의 ‘권위 있는 존재’라는 점에 중점을 뒀다. 위엄 있는 인상의 제넷은 권위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고객들은 다른 유통 브랜드보다 메이시스의 패션 큐레이팅과 조언에 더 많이 의존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목표는 패션, 미용, 가정용품, 심지어 IT 분야에서도 고객에 미치는 이런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할인 비중은 줄이고, 매장 분위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인기 브랜드만 골라 모아 방문 고객 수를 늘리고, 이익률을 높이겠다는 것이 그의 전략이다.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할인을 너무 줄였다간 연 매출 250억달러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세일 선호 고객들을 잃을 위험이 있다. 그래서 제넷은 ‘판촉형 매장(promotional store)’의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매력을 더욱 살리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는 건 장난감으로 가득한 자루를 들고 굴뚝으로 내려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메이시스가 금방 고객의 마음을 되찾을 것이라고 보는 이는 드물 것이다. 메이시스의 시장점유율은 줄곧 감소해왔다. 유통업계의 절대강자인 아마존 등 기존 업체와 스티치 픽스, 리볼브 같은 신흥 온라인업체 양쪽 모두로부터 공격 받은 탓이다.
많은 젊은 소비자들은 (메이시스에) 다가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코치, 마이클 코어스, 랄프 로렌 등 대형 브랜드들은 백화점의 할인 문화가 브랜드 가치에 타격을 입혔다며 백화점 판매량을 줄여왔다. 불길한 흐름이다. 특정 업체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나이키도 ‘평범한 수준’의 유통업체는 이제 충분하다며 자체 매장과 온라인 쇼핑의 비중을 높일 것이라 밝힌 바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변화도 있다. 수 년간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메이시스는 울타 뷰티, 세포라 등 성장세가 빠르고 기민한 경쟁업체의 아이디어를 빌리는 전략으로 화장품 매출을 증가시켰다. 20개 매장에 메이시스가 2015년 인수한 고급형 화장품 유통업체 블루머큐리 매대를 설치했다. 정가에 판매되는 인기 브랜드와 공간을 공유하거나,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떨이 상품을 ‘마지막 기회’(Last Act)라고 이름 붙인 별도 공간에 배치하는 점포도 늘어나고 있다.
‘백화점은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세간의 인식이다. J.C. 페니, 시어스, 딜러드, 고급 체인 니먼 마커스 같은 여러 업체들의 고전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메이시스는 백화점 업계에서 현재의 슬럼프를 극복할 만한 조건을 가장 잘 갖춘 업체라 볼 수 있다. 고급과 중저가 제품을 모두 취급하고 있고, 산하의 마케팅 및 공급망 조직도 막강하다.
연 매출 43억달러를 올리는 미국 6위 전자상거래 업체이기도 하다. 비록 다음 목표를 찾기 위해 고민 중이지만, 이런 장점들 덕분에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이 기다려 줄 시간은 확보한 상황이다.
“군함의 방향을 돌리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그 위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유통 전문 컨설팅업체 마빈 트로브 어소시에이츠 CEO 모티머 싱어의 말이다. 지금 제넷은 소비자 취향 변화로 ‘메이시스 호’가 침몰하기 전에 배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한편 미국 유통 역사에서 메이시스만큼 성공을 거둔 기업도 흔치 않다. 롤런드 H. 메이시가 창업한 메이시스는 1858년 뉴욕 시의 포목점으로 출발해 20세기 초엔 미국 상당수 대도시에 초석을 쌓았다.
1947년 개봉한 크리스마스 고전 영화 ‘34번가의 기적’(Miracle on 34th Street)을 계기로 메이시스는 대중문화 속 위치를 완전히 굳혔다. 100만스퀘어피트의 메이시스 플래그십 매장은 뉴욕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 5위 안에 올라 있다. 매년 수백만 명이 메이시스의 독립기념일 불꽃축제와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를 TV로 시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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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포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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