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지 이제 6개월이 되었다는 한 고객을 만났다. 아이의 학군과 집을 꼼꼼히 따져가며 상담을 했다. 함께 따라 온 아이는 8학년쯤으로 뵈는 여자아이로, 상담 내내 비쳐지는 아이의 태도가 여간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는게 아니었다. 지루했던지 손톱을 서로 맞대어 비비기도하고 귓속에 이어폰을 끼운 채 남을 의식하지 않고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나중엔 그것도 싫증이 난건지 이어폰을 빼면서 다짜고짜 뱉어낸 말이 정말 예상 밖의 일격이었다 “근데 아줌마는 몇 살이에요?”
순간 새해 들어 내가 몇 살인지를 얼른 결정할 수 없어서 이기도 했고 그 당돌한 물음의 진의를 가늠할 수 없어 아이의 앳된 얼굴을 어색한 웃음으로 빤히 바라다 보았다. 그걸 아이의 엄마는 내가 화가 난 것으로 여겨 황급히 손을 휘저으며 “아휴! 요즘 얘들이 이렇게 개념이 없다구요” 하며 그 난데없는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나는 그 아이의 발언이 행여 내가 한 말에서 어떤 빌미를 주지 않았나, 그리하여 나잇값을 못한다는 뜻인지를 마지막으로 곱씹다 이해할 수 없어 그만 포기했다.
설마 뒷 세대에게 지나간 시절의 예의와 범절 따위의 온전한 전수와 강요를 말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전쟁을 겪고 모두 다 어렵던 시절에 어쩌다 어른 손님이 집에라도 들면 우선은 아랫목을 내놓고 물을 끓여 차를 올리거나 형편에 따라 과일을 바쳐 들고 들어와 나직이 앉아 어른들의 이야기에 끼어듬 없이 과일을 깎아 내던 시절이 ….그게 설마 허구가 아닐진대 사회적 도발과 다름없는 그 무례함은 참으로 생경스럽다 못해 아연하기까지 했다.
요즈음 서울발 유행어에 ‘안물 안궁’이란 말이 있다. 이는 “안 물어 봤고 안 궁금하다”는 신조어라고 구글은 답해주었다 어감으로는, 함께 사는 세상에서 몹시도 새침스럽고 이기적이나 그런대로 사생활 보호라는 역할 수행도 있는 듯하여 견딜만 했다. 그런데 이른바 여차여차해서 그 상황이 궁금하지도 않아서 아니 물었다라고 종래의 언어로 하면 되는데 왜 굳이 되지도 않는 사자성어를 흉내 내어 상황을 축약하고 무릇 사람 입에 오르내리는 재미가 또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우선은 컴퓨터와 카톡 등 문자 텍스팅의 영향이 있어 빨리 상황을 나누고 보내야 하는데 사람의 음성만큼 신속할 수가 없어 이를 극복하고자 축약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축약해 놓고 보니 제법 의미전달이라는 제 기능을 다하면서도 흡사 그림과도 같이 상황을 적절히 시각화하는 효과도 있어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게 되었으리라 라는 정도가 내가 이끌어낼 수 있는 최대치였다.
그래 이해는 가는데 어딘지 냉담과 허무가 배어있다 ‘안물안궁’ 뒤에는 “뭐 어쩌라구”라는 말이 생략된 것 같기도 하고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어느 일방이 궁색하게 늘어놓는 상황을 단칼에 ‘꺼져’ 하며 일시에 정리하는 장면 같기도 하다. 이정도면 역시 요즘말로 ‘반박불가’이다.
물론 사람들의 천박한 호기심을 경계하는 뜻으로 옛말에 묻지 않음으로 예를 지킨다는 불문지례(不問之禮)가 있고 영어에도 ‘none of your business’라는 쏘아대는 문구가 있다. 꼭 부박해서가 아니라 젊은 친구들끼리 같은 공간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문자로 묻고 문자로 답하는 세대라고 하지 않던가. 거기에 사람 특유의 표정과 목소리의 톤 등 기분을 담기위해 적당한 기호와 그림을 섞어 쓰는 재치를 부리기도 한다.
어느 시점에서는 나도 그걸 인간 소외로 이해하기도 하고 그게 불편해서일까 잠시 유행하다 사라질 그 무엇으로 서둘러 결론짓기도 했다. 한국의 예능 등에서 자주 나와 생각나는 어록도 이를 반영한다. ‘나만 아니면 돼!’ ‘참을 인자 세번이면 호구된다’ ‘먹튀! 와 잉여인간’ ‘헐!’등 삶이 바뀌어 표현도 바뀐건지 표현이 바뀌고 보니 삶마저 바뀐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허나 돌이켜 보니 꼭 이해 못할 이유도 없다 모든 것이 얽혀 있는듯하면서도 격자무늬처럼 독립되어 대부분의 젊은 아이들이 아파트에서 성장을 한 세대라는 것을 고려하면 크게 놀랄 일도 아닌듯하다. 마을은 더 이상 동족부락이 아니듯 세상 역시 우리를 키우던 시절이 아니며 사람은 그 만큼 뒤집고 엎어져 물갈이가 된 게 필시 맞다.
다만 뜬금없이 내 나이를 묻는 그 아이에게 내가 조금만 순발력이 있었다면 분명 했었을, 그 세대를 시늉하여 이제 못다 한 말을 하고 싶다.
“얘! 그건 안물안궁이거든!…흥 칫 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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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혜 부동산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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