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멋진 일이 연이어 생기니 올 한해는 아무래도 예감이 좋다.
며칠 전 버클리 다운타운의 중식당으로 어떤 분의 근사한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그것도 샌프란시스코 문인협회의 수필가이자 화가가 운전하는 최고급 우윳빛 포쉐 SUV에 동승하는 호사를 누리며 북가주에서 북경오리 요리를 제일 잘한다는 그곳으로 향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귀히 여겨주는 분을 만나면 참 감사하다. 살면서 그런 멋진 자리에 초대를 받는 일은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아울러 내가 먼저 좋은 분을 초대해 그런 자리를 주선한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 삶을 관조할 여유와 좋은 만남에 가치를 두는 인생철학이 있어야 소중한 분을 찾게 되고, 또 그를 초대해 멋진 대접을 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닌가. 내가 다른 이들에게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16년 전 이곳 실리콘 밸리로 취업이민을 와서 한인은행의 지점장으로 근무를 시작했을 때, 근방에 아주 유명한 여류 소설가가 계시다는 소문을 바람결에 들었다.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눈매가 아주 예리한 나이 지긋한 여성 고객 한분이 은행 일을 보고 나갈 때 마다 내 자리까지 들러서 반갑게 인사를 해 주시곤 했는데, 바로 그분이 그 소설가 선생님이란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35년 전 ‘에뜨랑제여 그대의 고향은” 이라는 멋진 제목의 자전적 소설을 발표한 신예선 선생님이라고 직원들이 귀띔해 주었다. 소설이 발표되던 당시 나는 초등학생으로 너무 어려서 내용을 알 수 없었으나, 소설의 제목과 작가의 성함만은 당시 언론에서 얼마나 많이 소개가 되었는지 어린 나의 뇌리에도 어렴풋이 각인되어 있었다.
낯선 미국에서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차분히 소설을 읽을 여유가 없던 중에도 지점 바로 옆에 있던 산호세 유일의 한국서점에 가서 그분의 책을 사려고 찾아보았지만 책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그분이 북가주 한국일보에 소설을 연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문 연재소설을 빠트리지 않고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점의 영업실적을 신장시키느라 여념이 없던 시절이어서 신문을 활짝 펴고 정독할 여유도 없었거니와 몇 회를 빼먹다 보면 제목만 기억날 뿐 전체적인 맥락이 연결이 안 되어 소설의 진한 감동을 느낄 수가 없었다.
선생은 조국이 어려웠던 60년대 초반, 보스턴으로 유학 온 인텔리 여성으로서 이민생활 중의 애환을 소설로 발표해 한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한국의 대문호 고 이병주 선생을 비롯한 저명한 문인들, 그리고 동서양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들과도 폭넓게 교류하며 문인으로서의 삶을 치열히 살고 이제는 팔순으로 접어드시나 보다.
선생은 지금도 열정적으로 샌프란시스코 문인협회를 이끌며 해마다 여름이면 문학캠프를 여는 등 후배 문인들을 지극 정성으로 지도하고 계신다. 이민 문학의 불씨를 꾸준히 지핌으로써 이곳 한인사회에 문학과 예술의 향기로운 등불을 비춰주고 계신 매우 귀한 분이다.
이렇듯 존경스러운 분이 나의 주말에세이를 눈여겨보시다, 북가주 한국일보 임원들과 신년하례를 겸한 디너에 나를 초대해주셨으니 얼마나 내 가슴이 훈훈했겠는가.
돌이켜 보니 나는 성과 없는 일에 매달려 애면글면 속 태우며 시간을 보내느라 그렇게 품위 있는 레스토랑에서 문학과 예술을 주제로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누며 맛난 와인과 정찬을 즐기며 좋은 시간을 가져본지도 정말 오래되었다.
새해 들어 나의 호사가 이것뿐이었을까? 아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또 다시 뜻하지 않은 초대를 받았다. UC 버클리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근무한다는 소문을 바람결(?) 에 들을 수밖에 없었던 큰 아들 성현이 멋진 스테이크 레스토랑으로 역시 디너 초대를 했다.
우리 부자가 다시 만난 것은 5년 만이었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대화를 했고 서로 화해를 하는 진실의 순간을 가졌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상서로운 정초인가.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도 멋진 만남과 화해의 시간이 올 한해 꼭 찾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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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 실리콘밸리 부동산 중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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