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에는 특이한 크리스마스 전통이 있다. 캐나다 산 전나무를 공식 크리스마스트리로 삼는 것이다. 매년 12월 초가 되면 캐나다, 노바 스코시아 주정부가 트리를 선물로 보낸다. 거대한 전나무를 캐나다에서 보스턴까지 운송하는 데 드는 비용은 18만 달러.
삼림 무성한 매서추세츠에 키 크고 잘 생긴 나무들이 없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보스턴 시가 굳이 캐나다산 나무를 쓰는 이유는 그것이 선물이기 때문이다. 노바 스코시아 주정부가 매년 최상의 나무를 선별하고 거액을 들여서 보내는 이유 역시 그것이 선물이기 때문이다.
실용적인 면만 생각하면 선물은 시간과 비용의 낭비, 하지만 ‘실용’에서 얻을 수 없는 특별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특히 매년 이맘때면 선물을 주고받는다.
선물의 시작은 인연이다. 어떤 계기로 관계가 형성되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 마음의 표현으로 물건이 등장한다. 마음은 보이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대체물이 필요하다. 선물이다.
노바 스코시아가 국경의 먼 남쪽, 보스턴과 인연을 맺은 것은 정확히 100년 전이었다.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 12월6일 노바 스코시아의 주도 할리팍스 항 앞에서 두 선박이 충돌했다. 처음 사소해 보였던 사고는 할리팍스의 절반을 날려버리는 대형참사로 이어졌다. 충돌한 선박 중 하나가 폭약을 잔뜩 실은 프랑스 군수품 수송선이었기 때문이다.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600만 파운드의 폭약을 싣고 프랑스로 돌아가던 선박이었다.
오전 9시 즈음 뱃머리가 불길에 휩싸인 선박이 피어로 들어서자 인근 주민들은 모두 해안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엄청난 굉음과 함께 화산 터지듯 선박이 폭발하면서 2,000명이 죽고, 9,000명이 부상하며 2만5,000명이 집을 잃었다. 눈 깜빡 하는 것보다도 짧은 시간, 1/15 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날 사고는 훗날 원폭 투하 이전까지 인류사상 최악의 폭발사고로 기록된다. 파괴력이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5에 달한 것으로 분석된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떠있던 할리팍스는 한순간에 생지옥이 되었다. 그때 가장 먼저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것이 보스턴 시민들이었다. 토론토나 몬트리올에서 출발한 기차보다 보스턴 기차가 먼저 도착했다. 보스턴의 의사 간호사 등 응급대원들은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를 뚫고 15피트나 쌓인 폭설을 헤치며 이재민 구조에 나섰다.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 노바 스코시아는 1년 후인 1918년 12월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물로 보냈다. 그리고는 1971년 다시 트리 보내기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근 50년 연말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다. 감사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 두 도시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는 표현이다.
인연이 생겨서 선물을 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선물을 주고받음으로써 인연을 확인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 세월이 화살처럼 빨라지니 1년에 한두번 얼굴 보면서도 여전히 가깝게 느끼는 지인들이 있다. 젊은 시절, 몇 주만 뜸해도 친구관계가 뜨악해지던 때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가슴으로는 친근하지만 마주할 일은 별로 없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확인하는 것이 이즈음 주고받는 카드와 선물이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사람들을 관계의 망으로 연결시켜 주는 것이 선물이라는 것은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이론이다. 모스는 북아메리카 인디언, 남태평양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선물 문화를 연구했다. 원시부족 사회에서 선물이 어떤 기능을 하는 지를 살펴보았는데, 그가 꼽은 대표적 선물 의식은 ‘포틀래치’와 ‘쿨라’이다.
북미 인디언 사회의 포틀래치는 결혼식이나 성인식, 장례식 등 특별한 행사 때 손님들에게 푸짐하게 먹이고 선물을 한 아름 안기는 의례이다. 잔치 후 손님들에게 음식을 싸 보내는 우리의 전통과 유사하다. 하지만 포틀래치는 훨씬 엄격하다. 선물을 반드시 주어야 하고, 주면 반드시 받아야 하며, 받고나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 선물을 안 받는 것은 절교하겠다는 뜻, 결투나 부족 간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남태평양 원주민의 ‘쿨라’는 선물을 받은 후 상대방에게 답례하지 않고 그 선물을 제3자에서 주는 것이 특징이다. 선물의 연쇄작용이 일어난다.
이들 원시부족이 선물 교환을 구성원의 의무로 삼고, 같은 물건을 돌려가며 선물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물건에는 ‘마나’ 혹은 ‘하우’라는 영이 깃들어 있다고 그들은 믿는다. 선물을 통해 신성한 영이 그들을 이어주고, 그래서 공동체를 결속시킨다는 믿음이다.
선물은 나눔, 채우기만 하던 곳간을 활짝 열고 덜어내는 일이다. 내어줄수록 기쁨은 오히려 커지는 역설의 경험이다. 인연의 넓은 망이 주는 충만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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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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