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lta 회담과 조선의 분활, FDR 의 급서와 독일의 분단 공산화
독일의 폐망이 거의 확실해 보이던 1945년 2월에 FDR, Churchill, Stalin 등 세 정상은 쏘련 흑해의 여름휴양지 Yalta 에 모여 독일의 항복조건을 협의했다. 건강이 좋지않아 장거리 여행을 주치의가 금지했다는 명분으로 Stalin 이 고집을 부려 Yalta 가 회담장소로 결정 되었다는데 실은 Stalin 보다 더 건강이 나빴던 FDR 이 5천 마일 이상을 배와 비행기를 갈아 타면서 참석한 이 Yalta 회담장소에 쏘련측은 도청장치를 미리 해두었었다는 후문도 있다고 한다. 당시에 영국은 “대영제국” 쇠퇴기에 들어섰으며 FDR 은 새로운 강대국가로 등장하기 시작한 쏘련의 힘을 빌려 Nazis 를 격파하기 위하여 Stalin 에게 여러가지 양보를 했었다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
이 회담에서 종전후 독일은 네개로 분활되어 연합국들의 통치를 받도록하고 독일은 거대한 전쟁보상비를 지불하도록 결정되었다. Stalin 은 당초에 Poland 를 쏘련의 괴뢰정부가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 하다가 FDR 과 Churchill 의 반대에 부딛치자 Poland 의 국민투표로 결정하겠다고 “양보”를 하였다. 그대신에 쏘련이 WW II 중에 가장 전쟁피해를 많이 받은 나라임으로 독일의 전쟁보상비의 절반은 쏘련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FDR 과 Churchill 의 동의를 얻어 내었다.
Stalin 은 독일이 항복한 후에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겠으며 종전후 U.N. 이 설립되면 쏘련도 동참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때까지 쏘련은 쏘련이 모든사항에 대한 절대적 “거부권”을 가져야 한다고 고집하며 U.N. 설립에 반대해 왔었었다. 그대신 쏘련은 자국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일본의 섬들을 차지하도록 되었으며 중앙아시아에 있는 쏘련 인접국인 외몽고를 점령할수 있도록 합의되었는데 외몽고는 Texas 주의 두배가 넘는 큰 나라이었다. 동시에 Stalin 은 다른 소련인접국들의 내정에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고 엄숙하게 선언하였다.
그 인접국들은 Poland, Czechoslovakia, Hungary, Romania, Bulgaria 등을 의미하였는데 그나라들은 종전후 모두가 쏘련의 공산위성국가들이 된 나라들이다. 이러한 “협상”에 대해서 FDR 과 Churchill 이 너무 선견지명이 없었었다고 비난을 하는 역사가들이 있지만 독일을 폐멸시키기 위해서 Stalin 의 강대한 쏘련군이 필요했던 두 서방 지도자들 에게는 부득이한 “양보”이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결국 서방세계는 향후 20여년동안 Stalin 의 계략에 넘어간 댓가를 톡톡히 치루게 된다.
이 Yalta 회담에서 WW II 종전후의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운명이 연합국들의 전략상의 편의에 따라 우리의 의사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채로 결정된다. 일본의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북위 38도선 이북은 쏘련이, 이남은 미국이 집행하기로 합의가 되었었다. 패전한 일본군들의 발악적인 저항을 우려했던 FDR 은 쏘련이 그 위험을 부담해 주기를 원했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전쟁말기까지 미루어 오던 쏘련은 히로시마에 8월 6일 원자탄이 투하된 후인 8월 8일에야 대일본 선전포고를 하였으나 막상 쏘련군이 이북에 들어오기는 9월 8일에야 이남에 들어온 미군에 앞장서서 8월 25일이었다. Stalin 은 처음부터 이북을 공산화할 흉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72년간 계속되는 세계유일의 비극적인 분단이 시작된 것이다.
무정부상태의 조선의 전후통치에 관해서 정확히 어떤 협약이 미쏘간에 있었는지는 현재 까지도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채 여러가지 이설들이 있다고 한다.
이 중요한 역사의 분깃점에서 미국은 또 하나의 중대한 “실수”를 범했다. 미영등 연합군은 이제 독일을 최종적으로 분쇄할 준비를 하고 1945년 3월 7일에 미 제1군은 Rhein 강 다리를 건넜고 타지역에서도 연합군들의 도강이 끝나서 4월 첫주일에는 모든 연합군들이 강을 건너와 있었다. 동쪽에서는 쏘련군의, 서쪽에서는 미영등 연합군의 협공을 받은 독일은 허망하게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까지 연합군을 잘 지휘해왔던 Eisenhower 장군은 유럽의 장래가 결정될 싯점에서 판단을 잘못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이미 상당한 선견지명이 있는 정치가인 Churchill 수상으로부터 “연합국측은 갈수있는데 까지 최대한으로 동쪽으로 가서 쏘련과 승전의 악수를 하여야만 합니다” 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동쪽으로 급히 진격해 나가는 것을 주저하여 Berlin 에서 서쪽으로 50 마일이 떨어진 Elba 강에서 연합국의 전진을 중단시켰다. 그는 연합군의 사상을 줄이고 후방의 독일군잔당을 완전 소탕하기로 하였는데 FDR 도 Eisenhower 의 전략에 간섭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쏘련군이 Berlin 과 체코의 Prague 를 점령하도록 내버려 두었던 연합국측의 전략상의 실수로 쏘련은 종전후 독일과 동유럽을 더 쉽게 공산화 시킬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사생결단으로 nazis 의 폭정에서 구출해놓은 유럽의 절반을 이제는 공산폭정에 넘겨 주어서는 않된다” 라고 강렬하게 주장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FDR 을 설득해 보려고 Churchill 이 노력을 하고 있던중에 FDR 이 뇌출혈로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유럽의 불행한 종전후의 역사가 확정되어 버렸다.
미국을 대공황에서 구출하고 있던중에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원하지 않았던 미국민들을 독려하고 단결시켜서 승전으로 이끄는동안 건강이 극도로 쇠약해졌던 FDR 은 그의 소아마비로 불구가된 다리들의 치료를 위해 여러번 방문했던 Georgia 주의 Warm Springs 로 다시 내려 갔었는데 1945년 4월 12일에 갑자기 두통이 난다고 했었다가 수분후에 두뇌속의 혈관들이 터져서 갑자기 사망 했었다고 한다.
미국을 밤낮으로 이끌어 오던 거대한 별이 너무나 허망하게도 빛을 거두자 미국민들은 모두가 당황하고 불안해 했었다고 한다. Lincoln 대통령 사망이후 가장많은 미국민들이 집에서, 사무실에서, 길거리에서 눈물을 흘렸었다고 한다. 백악관으로 문상을 간 Truman 이 “Mrs. Roosevelt, what can I do for you?” 라고 질문하자 Eleanor 는 “No, Mr. President, what can we do for you?” 라고 반문했었다고 한다. FDR 은 국장으로 치루어진 장례식으로 열차에 실려 Washington 까지 운구가 된후 Union 역에서 Truman 대통령과 조문객들의 영접을 받고 그로부터 80년전에 Lincoln 의 유해가 모셔졌던 백악관의 East Room 에 안치되어 장례식을 마친후 다시 고향이자 자택이 있는 뉴욕주의 Hyde Park 에 안장되었다. FDR 은 그를 그토록 괴롭혀왔던 야만국가 독일의 항복을 받아보지 못한채로 숨을 거두었다. FDR 의 향년은 63세이었었다.
연합군과 쏘련군은 4월 25일에 Elba 강에서 상봉악수를 하였다. 쏘련군들은 Berlin 의 가가호호를 수색하며 독일군 잔당들을 사살하였다. Hitler 는 최종순간에 결혼을 하여 그의 부인이된 오랫동안의 젊은정부 Eva Braun 과 함께 자신의 벙커에서 1945년 4월 30일에 자살을 하였는데 쏘련군인들이 정원에서 그들을 화장해버렸다는 분명히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가 있다. 그의 연녕은 56세이었었다.
한편 Mussolini 는 이태리에서 반대자들에게 체포되어 1945년 4월 28일에 사형을 당하였다. 아름다운 조국 이태리를 전쟁의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Mussolini 를 중오하는 상징으로 반대자들은 Mussolini 시체의 발목을 끈으로 묶어서 거꾸로 교수형에 처했었다고 한다. 그의 연령은 62세이었다.
독일은 1945년 5월 7일에 불란서에 있던 Eisenhower 장군앞에서 무조건 항복문서에 서명하였고 승전한 연합국들은 V.E. (Victory in Europe) Day 라고 축제를 올렸었다.
<
조태환/LI 거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