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를 둘러싼 사시나무들은 이미 나목(裸木)이 됐다. 주변을 환히 밝히던 황금빛의 풍요로움을 이제는 찾을 수 없다. 온통 잿빛 일색이다.
달력의 빨간 글씨에 눈이 간다. ‘Thanksgiving Day’-. 또 다시 감사절인가. 며칠 있으면 12월. 올해도 다 지나갔다는 생각이 스친다.
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다. 언제나 머무는 듯하다. 그런데 이내 저 멀리 달려가는 것이 세월이라고 하던가. 그 세월이 올해의 경우 꽤나 긴 듯이 느껴진다.
전쟁의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와서인가. 그런 가운데 또 다시 맞는 감사절. 뭔가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동시에 불현 듯 떠오르는 것은 만당(晩唐)의 시인 이상은의 ‘곡강’(曲江)이란 시의 구절이다.
평온하다. 평온하다. 애써 평강을 외치는 것 같다. 그 태평연월의 한가운데에서 왕조의 몰락을 직감했다. 그래서 색정(索靖)이란 한 문인은 낙양의 왕궁 앞 십자로에 청동으로 만들어져 세워진 낙타(駱駝)를 보고 눈물지었다. 머지않아 너를 폐허 속에 보게 될 것 같다고.
서진(西晉)시대의 이 고사를 인용해 이상은은 덧없는 세월, 역사의 부침에 빗대 ‘구리낙타를 보고 운다’(泣銅駝)는 비가(悲歌)를 읊은 것이다.
지나치게 감상(感傷)으로 흐르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이다. 그렇지만 계속해 이어지는 것이 전쟁의 소리다. 그것도 반년도 넘도록. 그러니….
“폭풍의 눈은 평온한데다 고요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는 환영에 불과하다. 그 뒤로 몰려오는 것은 거대한 허리케인이다. 북한과의 현 상황이 바로 그렇다.” EC 외교위원회의 프랑소아 고드멍의 진단이다. 그러니까 멀리 유럽에서 바라본 한반도 상황이 이렇다는 것이다.
수소폭탄 실험에 잇단 미사일발사. 그리고 트럼프와 김정은의 기싸움. 최악의 상황은 이미 목격했다. 이제 나오는 이야기는 외교적 접촉에, 중국의 중재노력이다. 그러니 위기는 모면한 것인가. 아니. 착각이라는 것이다.
60일이 넘었나. 김정은의 북한이 별다른 도발을 안 해온 지가. 이 소강상태를 ‘정적에 쌓인 태풍의 눈’에 비유했다. 아직 핵무기완성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두 달이 넘는 이 소강기는 바로 그 사실을 대변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바로 이 단계가 특히 위험하다는 것이 고드멍의 분석이다. 북한의 핵무기체계가 완성된다. 그 때 북한에 대한 군사조치에는 엄청난 리스크가 따른다. 그러니 그 때 보다는 지금이 적기라는 것이 미국과 동맹국의 계산이다.
북한도 그 점을 알고 있다. 때문에 무리수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 차례의 장거리미사일 실험, 혹은 핵실험을 통해 북한이 지닌 핵 억지력 수준을 과시하려 들 수 있다는 거다.
반면에 미국은 북한이 미국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능력을 보유하는 상황을 결코 용인 할 수 없다. 북한 핵을 인정할 경우 미국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진다. 특히 이란 같은 또 다른 깡패국가가 딴 마음을 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려지는 결론은 ‘전쟁 불가피론’이다. 특히 북한이 자체 핵 억지력 수준과시를 위해 대기권에서의 수폭이나 EMP(전자기파) 실험을 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바로 군사공격을 할 가능성이 커 그만큼 전쟁의 위험은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찬스는 ‘possible’단계를 넘어 ‘likely’의 영역에 이르렀다. 상황은 극히 절망적으로, 전쟁은 이제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리얼 클리어 디펜스의 대니얼 데이비스의 진단이다.
그는 교착상태에 있는 현 북한 핵 위기는 다음과 같은 셋 중의 하나의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김정은이 트럼프의 으름장에 도전, 핵무기를 보유하는 사태가 그 하나. 두 번째는 트럼프의 강경수사에 김정은이 결국 핵을 포기하는 상황, 세 번째는 김정은이 핵을 계속 고집함에 따라 트럼프가 군사공격을 감행하는 상황이다.
첫 번째, 두 번째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결국 세 번째가 유일한 옵션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그러면 언제가 가장 위험한 시기가 될까. “북한의 핵능력이 완성단계에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치명적 조치’(fatal step)를 취할 때다.” 국제전략연구소(CSIS)의 랠프 코사의 말이다.
그 ‘치명적 조치’는 다름 아닌 또 한 차례의 핵실험, 앞서 지적대로 대기권에서의 수폭이나 EMP 실험 혹은 새로운 형태의 미사일실험이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도발을 해올 경우 트럼프는 북한 미사일발사대 등에 대한 군사공격을 명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타이밍은 언제가 될까. 북한이 두 달여 도발을 중단해온 상황에 비추어볼 때 시간문제라는 것이 한국 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평온하다. 평강이 넘친다. 골칫거리였던 사드문제도 해결됐다. 이른바 ‘3불’선언- 사드 추가배치 거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 배제, 한미일 군사동맹 불추진-과 함께. 중국관광객이 몰려온다. 위안화가 쏟아진다. 정부도, 기업도 신이 났다. 돌아온 중국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태평연월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기생충 투성이의 북한병사가 남쪽으로 귀순해오는 과정에서 총격으로 중상을 입었다. 뒤이어 지진이 엄습했다. 진도 5.5도의 지진에 대한민국이 마비된 것이다.
그 지진이 그렇다. 북한의 수소폭탄실험의 현장 평계리의 인공지진을 연상시킨다. 못 먹어 왜소한데다가 기생충 투성이의 북한 병사. 그 모습을 통해 투영되는 것은 짓밟히고, 헐벗고, 배고픈 수많은 북한의 난민이다.
이 예상치 못한 돌발사태는 혹시 뭔가에 대한 예후는 아닐까. 그런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터키가 잘 구워졌다. 감사절 식탁이 차려졌다. 세월과 함께 아이들은 다 자라 이제 성인이 됐다. 함께 손을 모은다. 무엇을 감사해야하나. 무엇을…. 뭔가 허탈한 생각이 자꾸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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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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