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지난여름을 한국에서 보내고 왔다, 엄마 곁에 있다오니 정서적 허기가 채워졌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여름 3개월을 오로지 엄마 곁에서만 지내고 왔다. 엄마의 보살핌 속에 정서적 호강을 한 것이 아니라 엄마를 보살피느라 정서적으로 깊은 체험을 한 것이었다.
한국의 엄마 집에 가면 그는 항상 체중관리를 해야 했다. 혼자 살면서 대충 끼니를 때우는 딸을 위해 엄마는 매번 잔칫상 차리듯 푸짐하게 음식을 만들곤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식사 때가 되어도 엄마는 음식을 만들지 않았다. 상을 차려서 앞에다 놓으면 수저를 들뿐 끼니를 챙기지 않았다. ‘먹는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린 건지, 평생 남들을 대접했으니 이제는 대접을 받아야겠다는 심리인지 … 알 수가 없었다. 엄마는 치매 초기였다.
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조금 전에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며, ‘보살’이라고 불릴 정도로 너그럽던 분이 이웃 친구의 사소한 행동에 격노하며 평생 안 하던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 엄마를 보살피며 그는 엄마의 지난 삶을 돌아보고, 너무도 이기적이었던 자신을 돌아보았다고 한다. 바싹 마른 채 하루 종일 우두커니 앉아있던 엄마는 딸이 만들어준 음식을 먹으며 혈색이 돌고, 딸과 이야기를 나누며 생기를 찾았다.
“(엄마의) 남은 생애 내가 엄마를 돌봐야 겠다”는 생각에 그는 한국으로 역이민 가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치매가 우리를 점점 옥죄는 느낌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아버지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신문사 동료가 여럿이고 친구, 친지들을 만나면 집안의 치매환자로 인해 가슴 아프고 가슴 철렁했던 이야기들을 수시로 듣는다. 스토브에 불을 켜둔 채 밖에 나가 화재가 날 뻔하거나, 간병인/며느리가 돈을 훔쳐갔다고 소동을 벌이거나, 하루 전 통화한 자녀를 두고 한달 째 행방불명이라며 주변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일들은 흔하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일들도 있다.
어느 부인은 결혼기념일을 맞아 와인을 준비했다. 치매 걸리기 전 와인을 좋아하던 남편과 모처럼 우아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것은 부인의 오산이었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멋쟁이였던 남편은 와인에 밥을 말아 먹었다.
치매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는 인종, 성별, 학력을 가리지 않는다. 두뇌를 많이 쓰면 발병위험이 낮아진다고 하지만 평생 두뇌만 쓰고 살아온 사람들도 병에 걸리니 안심할 수가 없다.
지난 2014년 주목 받았던 알츠하이머 영화 ‘여전히 앨리스(Still Alice)‘는 아이비리그 여교수가 주인공이다. 원작자인 리사 지노바 박사가 하버드에서 신경과학을 전공한 만큼 병의 진행과 환자의 혼란스런 심리가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머니를 보며 그 내면을 탐구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주인공 앨리스는 콜럼비아의 언어학 교수로 교과서를 쓰고 세계 각지로 강연을 다니는 저명한 학자이다. 지성과 재기 넘치던 그가 매일 다니던 대학 캠퍼스에서 길을 잃으면서 병마는 착착 잔인성을 드러낸다. 삶이란, 존재란 결국 기억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것인데 평생 쌓아온 기억들이 사라진다면 그래도 나일까, 여전히 앨리스일까 주인공은 고뇌한다. 그마저 잊어버린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치매는 누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웬만하면 90을 사는 요즈음, 85세 이상이면 둘 중 하나는 알츠하이머에 걸린다. 예방도 치료도 안 되니 환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부모의 일이거나 배우자의 일 혹은 자신의 일이 될 수 있다.
절벽같이 강고한 이 병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조기진단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뇌가 아직 건강할 때 병을 진단해내면 진행을 상당히 늦출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미 망가진 뇌를 고치기는 어려워도 아직 건강한 뇌를 보호하기는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가족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변화’이다. 평소 정확하게 약속을 지키던 사람이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늘 다니던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물론 이웃들에게 다정하던 사람이 갑자기 적대적이 되는 등 감정과 태도가 달라지면 의사의 진단을 받도록 하는 게 좋다.
치매는 환자 자신보다 가족들에게 고통스런 병이다. 언제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니 보호자는 24시간 눈을 뗄 수가 없다. 한편 현재의 미국 의료시스템에서 치매환자 돌보기는 오로지 가족의 몫이다. 육체적으로 건강한 치매환자를 받아주는 요양시설은 아주 드물다.
LA의 정수헌 내과전문의는 커뮤니티 차원의 치매환자 요양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태인, 일본계는 물론 아르메니안 커뮤니티도 자체 치매환자 시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인 커뮤니티도 이런 시설을 갖춰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품위 있게 살 수 없다면 오래 사는 것은 형벌이다. 치매에 걸려도 보호받을 곳이 있도록 커뮤니티가 함께 대처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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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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