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죽음으로부터 날아드는 무수한 화살을 헤쳐 나가는 것이라던 말이 생각난다. 한국에서 10수년 전 인터넷에 올랐던 글이다. 40대 초반의 남성이 생각지도 못한 종양 진단을 받고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절감하며 쓴 글이다.
우리 모두는 삶 쪽에 단단하게 발을 딛고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죽음 쪽에서 “무수한 화살이 날아오고 그 화살을 오늘 맞을지 내일 맞을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이었다.
지난 1일 라스베가스 총기난사 사건을 보며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야외 공연장에서 컨트리 뮤직에 취해 멋진 가을밤을 보내던 많은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순간 ‘죽음의 화살’을 맞았다. 앞의 ‘인생’ 비유와 다른 점이라면, 이 경우 ‘죽음의 화살’은 이론적으로 예방 가능한 것,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참극이라는 사실이다.
500여 명 대량살상의 범인 스티븐 패덕(64)은 왜 그런 참혹한 죄를 저질렀는지 아직 단서가 잡히지 않고 있다. 외견상 평범했던 초로의 남성 내면에 어떻게 그런 끔찍한 악마가 도사리고 있었을까. 사건 발생 한주가 되도록 수사당국은 범행 동기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몇몇 피상적 사실이 드러났을 뿐이다. 그의 아버지가 사이코패스 기질의 은행강도였다는 사실, 대인기피증이라고 할 만큼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렸다는 사실, 총과 도박에 집착했다는 사실 등이다. 1990년대 남가주에서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번 그는 10여년 전부터 거액의 도박을 일 삼아하는 전문 도박사였다. 이때도 사람과 마주하지 않고 기계 앞에서 비디오 도박을 했다. 어머니와 막내 동생, 동거녀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람들과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버지 없이 자랐다. 그가 7살이던 1960년, 남편이 악명 높은 범법자로 체포되자 그의 어머니는 애리조나에서 남가주로 이사해 아들 넷을 홀로 키웠다. 아버지는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어린 소년이 아버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대 살육에 앞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것 같다. 사람들이 운집하는 대규모 야외 음악축제 스케줄들을 조사하고, 수만 달러어치의 총과 탄약, 폭발물을 사들이고, 군중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호텔방을 잡으며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살육하려고 작정을 했던 것 같다. 57년 전 그의 아버지가 경찰과 대치 끝에 체포된 데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 그는 냉혹한 악마로 변신해 광란의 총질을 했다.
그 정신상태가 온전했을 수는 없다. 그렇게 된 원인을 알 수 없을 뿐이다. 총을 휘두르며 은행을 터는 아버지를 어느 순간 그 자신 안에서 느꼈던 건 아닐까.
사람은 어떤 경로로 악마가 되는 걸까. 대량살상 총기 난사범들을 보면 대개 세 가지 유형이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오히려 이를 즐기는 사이코패스, 정신분열증 등으로 망상이나 환청에 사로잡혀 범행을 저지르는 정신질환자, 어려서 심하게 학대당한 트라우마로 인해 세상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걷잡을 수 없는 학대 피해자 등이다.
제각기 일그러진 렌즈로 세상을 본다는 것 그리고 외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나름대로 자기 합리화의 과정을 거친다. 세상이 나를 부당하게 박해했으니 응징해 마땅하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것이다. 세상이 깜짝 놀라게 복수를 해야겠는데, 현실적이고 합법적인 힘이 없으니 이들은 악마의 춤을 춘다. 총을 든다.
그렇게 샌디훅 초등학교의 어린아이들 20명이 죽었고,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죽었고, 영화관에서, 교회에서, 나이트클럽에서, 정부기관 행사장에서 사람들이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 가” 분노하기도 민망할 만큼 사건은 되풀이 되었다. 답은 나와 있는데, 그 답을 택할 의지가 미국에는 없다.
총기참극이 터지면 총기제조사 주가가 오르고, 총기판매가 늘어나는 나라가 미국이다. 총기규제 대신 총기규제 완화법이 제정되는 이상한 나라가 미국이다. 2012년 연말 샌디훅 초등학교 사건이 터진 후 지난 5년 동안 20여개 주에서 새로운 총기법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총기 구매나 소지를 더 쉽게 하는 규제완화법이었다.
총기협회만 탓할 일이 아니다. 총은 자유와 자위권을 보장하는, 양보할 수 없는 권리라는 인식이 미 국민들 사이에서 여전히 강하다. 도를 넘는 ‘총 사랑’은 총을 가져서는 안될 사람들에게까지 총을 안겨준다. 악마의 춤을 추라고 등을 떠미는 격이다.
총기난사는 위험인물과 총이 만나서 일어나는 일이다. 사회 구석구석의 위험인물들을 일일이 가려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총이 이들 손에 너무 쉽게 들어가지 않도록, 전쟁용 자동화기들이 거리에 나돌지 않도록 규제하는 일은 가능하다. 미국은 다시 물어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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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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