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희의‘클래식 톡톡(Classic Talk Talk)’
20세기에는 혁신적인 새로운 음악양식이 많이 대두되었으나 반대로 전통적 양식을 받아들이는 경향도 나타났다. 주관적인 표현이 담긴 표제음악적인 낭만주의 음악의 반작용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바흐나 헨델 등 17, 18세기 작품을 연주하는 음악회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작곡가들은 특히 17, 18세기의 연주방식, 형식, 장르 등에 다시 관심을 보였다. 음악의 간결한 형식미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신고전주의’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고전주의가 장조와 단조의 조성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신고전주의 음악은 조성의 개념이 확대되어있고 장단음계가 아닌 무조성을 포함한 여러 선법을 사용한다. 또한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 여러 나라 작곡가들의 다양한 작품 양식이 포함되어 있다.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 힌데미트(Paul Hindemith 1895~1963), 프랑스 6인조(Les Six) 등이 신고전주의의 대표적 작곡가로 불린다. 이들은 전통적 음악양식을 받아들였지만 각각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을 현대적으로 변화, 발전시켰다. 신고전주의는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의 양식을 모방한 프로코피에프(Sergey Prokofiev, 1891~1953)의 제1교향곡에서 시작되었다. 프로코피에프는 18세기 하이든의 교향곡을 공부하며 흥미를 느꼈고 하이든의 작품 정신을 20세기적 어법으로 재탄생 시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고전적인 성격을 가진 그의 제1교향곡은 <고전 교향곡>으로 불리게 되었다.
20세기 신고전주의 작곡가 중 한 사람인 스트라빈스키는 다양한 스타일의 작곡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곡가로 그의 음악은 1기, 2기, 3기로 나뉜다. 그가 신고전주의 풍으로 작곡한 시기는 2기인데, 이때 발레음악 <풀치넬라>가 쓰여졌다. 당시 디아길레프(Sergey Diaghilev, 1872~1929)는 16세기 이탈리아의 가면 희곡에 바탕을 둔 발레 작품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는 스트라빈스키에게 페르골레시(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1736)의 작품에 관현악을 붙여 발레 음악으로 편곡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처음에 스트라빈스키는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피카소가 발레의 제작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스트라빈스키는 <풀치넬라>를 통해 19세기 이전 작곡가들의 여러 작품들을 활용하면서 새로운 악곡의 추가, 리듬과 화성의 변화 등을 통해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풀치넬라>는 스트라빈스키가 본격적으로 신고전주의를 열게 된 중요한 작품이 되었고, 이후 그는 약 30년동안 자신의 작품에 신고전주의 양식을 고수하였다. 발레의 내용은 풀치넬라의 변장, 여러 명의 가짜 풀치넬라의 등장, 마술사 푸르보의 교묘한 술수 등 해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힌데미트도 1930년대부터 신고전주의 음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음악의 수평적인 흐름을 중요시해 대위법적 기법을 많이 사용하였고, 바로크와 고전주의 시대의 형식들을 모델로 토카타, 푸가 등을 다시 사용하였다.
뛰어난 비올라 연주자로도 활동했던 힌데미트는 그의 비올라 소나타 Op.11, No.4에서 12음을 자유롭게 이용하여 화성적인 불협화음을 사용하면서도 조성 체계를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고전주의적 소나타의 균형미와 리듬의 사용도 함께 나타난다. 또한 1934년에 작곡된 그의 교향곡 <화가 마티스>는 신고전주의로 옮긴 힌데미트의 첫 번째 작품으로 당시 대성공을 거두었다. <화가 마티스>는 16세기 독일의 고딕 화가이면서 농민 운동가인 한 인물의 역사적 사실을 오페라로 만든 작품에서 세 악장을 편곡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신고전주의 움직임은 사티(Erik Satie)와 그를 따르는 여섯 명의 음악가들에 의해 나타났다. 뒤레(Louis Durey), 오릭(Georges Auric), 오네게르(Arthur Honegger), 타이유페르(Germaine Tailleferre), 플랑크(Francis Poulenc), 미요(Darius Milhaud)가 그 여섯 명이다.
이들은 오늘날 ‘프랑스 6인조’라는 이름으로 유명한데 사티에게 이론적, 음악적 영향을 받아 단순하고 직설적인 어법을 사용하였다. 뒤레는 많은 곡을 작곡했지만 문필가로 더 알려져 있으며, 오릭은 몇몇의 성격 소품과 한 개의 소나타를 작곡하였고 조성 중심의 음악 어법을 구사하였다. 오네게르는 오라토리오와 관현악곡을 많이 작곡하였다.
타이유페르는 유일한 여자 작곡가로 당시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그녀를 작곡가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6인조 중 피아노 문헌에 영향을 준 작곡가는 미요와 플랑크인데, 그들은 복합조성과 대위법, 민요 등 다양한 작곡법을 사용하였으며 학습용으로 많은 소품들을 남겼다. 이들의 신고전주의 대표 작품으로는 플랑크의 <전원 협주곡>, 오네게르의 오라토리오 <다윗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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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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