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허리케인 하비가 텍사스에 남기고 간 상흔은 엄청나다. 지금까지 최소 47명이 사망하고 약 4만3,000명의 사람들이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피소는 아니더라도 집을 떠나 대피한 주민이 100만 명에 달한다는 보도도 나와 있다.
그동안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텍사스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휴스턴의 침수상황을 실시간 보도하기에 바빴다. 인명피해와 재산피해, 구조상황,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 돕기에 나선 ‘착한 사마리아인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보도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에 최악의 몬순 홍수로 인도와 네팔,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 3개국에서 최소한 1,200여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는 상대적으로 덜 보도되었다. 국제구호단체들은 미국을 강타한 하비에 온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이번 남아시아 홍수는 그 이재민이 4,1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재앙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런가 하면 비슷한 시기에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로힝야 족이 ‘인종 청소’를 피해 방글라데시 국경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다급한 소식도 미국 언론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지난 1주 동안에만 무려 7만3,000 여명에 달하는 로힝야 족(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이 정부군의 학살을 피해 방글라데시 국경을 넘어왔다.
모두가 절박하고 안타까운 내용들이지만, 이를 미국 매체들이 자주, 그리고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다고 해서 반드시 비난받아야 할 일은 아니다. 독자들, 그러니까 구매자들의 관심에 맞추어 기사를 취사선택해야 하는 것은 한국과 미국을 막론하고 모든 상업 언론들이 지닌 숙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언론 탄압이 극에 달했던 70년대 후반에 대학시절을 보냈던 나는 오랫동안 언론에 대한 ‘환상’을 떨쳐 버리지 못했었다. 언론은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며, 기자들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투사들처럼 고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시대의 양심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후 한국에서 외형적으로나마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권력 대신 금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시장경제의 첨단을 걷는 미국사회의 시스템에 익숙해지면서 “이익을 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상업 언론들의 본질과 한계를 이해하게 되었다(사실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되뇌는 ‘국민의 알 권리’란 단어를 유명하게 만든 뉴욕 타임스와 미 국방부 간의 법정다툼 도 기자의 용기뿐 아니라, 부수확장을 노리는 경영진의 상업적 동기가 깔려 있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1971년 뉴욕 타임스가 베트남전 개입 및 확전에 관한 국방부 기밀문서를 입수, 보도하면서 촉발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그 전에는 개념도 없던 공영언론이었다. 언론이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그나마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고 사회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마지막 마지노선이 공영언론일 것이라는 생각에서다(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PBS와 NPR 등 공영방송에 대한 2017년도 연방정부 지원예산을 ‘0’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폭 삭감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원 항목 자체를 없애버렸는데, 다행히도 하원에서 예산이 다시 살아났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지금 얼마나 대단한(?) 대통령을 가졌는지 알 수가 있다).
지금, 한국에서도 이 공영방송을 살리기 위해 KBS와 MBC 기자와 아나운서, PD들이 거리로 나섰다. 2012년 이후 5년 만에 벌어지는 동시 총파업이라고 하는데, 이 와중에 김재철 전 MBC 사장은 “(자신이 재임 중이던) 2011년, MBC그룹이 1조8,000억을 벌어들여 창사 이래 최대의 수익을 창출했다”면서 “MBC를 민영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소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창출을 최대가치로 하는 사람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런 사람은 정치나 언론 같은 공공의 영역에는 발을 들여 놓지 말았으면 한다. 공공의 영역은 이윤창출 이상의 가치를 추구한다.
거리에 나선 언론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파업을 가리켜 “촛불이 정의로운 싸움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고 말하고 있다. 부디 이번 파업이 공영방송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권력의 감시자로서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되찾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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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 국제 로타리 커뮤니케이션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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