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이 취임하고 남과 북이 갈려 전운이 감돌던 1861년 봄, 가장 큰 고민에 빠졌던 사람은 아마도 로버트 리 대령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조지 워싱턴의 총애를 받던 독립전쟁의 영웅, 헨리 리 3세로 버지니아의 대표적 귀족가문 출신이었던 그는 미합중국 군인으로 30년을 헌신해왔었다.
그런 그가 기로에 섰다. 노예제 폐지를 놓고 남과 북이 대립하고, 남부 주들이 미합중국 탈퇴를 선언하면서 그는 선택을 해야 했다. 조국 미합중국이냐, 고향 버지니아냐.
그는 개인적으로 남부 주들의 연방 탈퇴를 반대하고, 노예제도도 반대했다. 하지만 연방군을 지휘해달라는 링컨의 요청을 거절했다. 자신의 뿌리인 고향을 적으로 돌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연방을 절대적으로 지지하지만 내 친척, 내 자식, 내 가정에 대항하는 편에 서지는 못하겠다”고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밝혔다.
남북전쟁이 터지자 그는 총사령관이 되어 남부 연합군을 이끌었다. 1865년 북군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면서 노예제는 폐지되고, 미합중국은 하나의 나라로 존속되었다. 그는 고향에 대한 충성심에 남부 편에 섰지만, 결과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남북전쟁 끝나고 152년, 그가 사망한지도 147년이 된 지금. 그의 동상 때문에 그가 사랑하던 버지니아의 후손들이 살상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는 어떤 심정일까.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그는 미국역사에서 노예제 지지의 선봉장, 그래서 인종차별의 상징적 인물이 되어 있다.
지난 12일 버지니아, 샬러츠빌에서 리 장군 동상 철거를 둘러싸고 백인우월주의 시위대와 민권단체 시위대가 충돌해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나치 추종자인 백인청년이 차를 몰고 인파 가운데로 돌진해 인종차별 반대시위에 나섰던 여성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했다.
백인우월주의자, KKK, 신나치주의자 등 극단적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전국 곳곳에서 이 도시로 몰려든 것은 지난 4월 샬러츠빌 시의회의 결정 때문이다. 시의회는 남부 연합의 상징인 리 장군 동상을 제거하고, 그의 이름을 딴 공원 이름을 노예해방 공원으로 바꾸기로 했다.
유혈시위 전날 밤 버지니아 대학에서 벌어진 이들의 시위는 섬뜩했다. KKK의 상징과도 같은 횃불을 높이 들고, 흰 바탕에 검은색 X 마크가 크게 그려진 방패를 들고 행진했다. 방패는 유럽인 후손들의 생존, 안녕, 독립을 추구한다는 남부 리그의 상징이다. 시위대는 “다문화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미국은 백인만을 위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12일 시위에 이들은 방망이와 총기를 보란 듯이 챙겨들고 나왔다.
미국에서 ‘인종’은 민감한 이슈이다. 19세기 말 노예해방 전쟁, 20세기 민권운동의 아픈 역사를 거친 어두운 과거, 원죄의 고통이 있다. 60년대 법과 제도로 인종차별이 금지된 후 지금까지의 역사는 ‘피부색과 무관하게 만인은 평등하다’는 대원칙을 향한 전진이었다.
최근의 백인우월주의 시위는 미국 역사의 흐름을 정반대로 돌리는 사건이다. 숨죽이고 있던 이들이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거침없이 쏟아내게 된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멍석을 깔아주고 있다. ‘트럼프 효과’이다.
트럼프가 이민자들에 대한 백인들의 적개심에 불을 붙이며, 멕시코 이민자를 ‘강간범 ·범죄자’로, 무슬림 이민자를 테러 후보들로 거침없이 몰아세우고, 합법·불법의 이민규제를 내세우자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우리 편’을 얻었다고 환호했다. 샬러츠빌 유혈사태 후에도 트럼프는 극우 백인단체들을 대놓고 비난하지 않았다. 그가 어느 편에 서있는지는 확실해 보인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구관이 명관’임을 입증했다. 샬러츠빌 사건 직후 그가 올린 트윗이 트위터 역사상 최고 인기기록을 세웠다. “피부 색깔이나 배경 혹은 종교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도록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 미움, 증오는 후천적으로 배운 것이라는 말이다. 인권운동의 대 스승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먼 여정’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만델라는 말한다. “모든 인간의 가슴 깊은 곳에는 자비와 관대함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항상 알고 있었습니다. … 미움은 배워서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움을 배울 수 있다며 사랑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랑이 그 반대보다 사람의 마음에 더 자연스럽게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수십년 감옥에서 살면서도 언젠가는 인종차별이 사라지는 위대한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은 위대한 영웅들 때문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용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인종갈등이 새삼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샬러츠빌 사태 이후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시위,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것은 결국 평범한 그러나 수적으로 거대한 보통사람들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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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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