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LA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서울을 보호하려들까’-. 요즘 한국에서 부쩍 자주 던져지는 질문인 모양이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1차에서 2차…, 5차까지 이어졌다. 북한의 핵실험 말이다. 미사일 발사실험도 수 십 차례나 이루어졌다. 거기다가 북한 당국자들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래도 동요가 없었다. ‘설마 동포끼리 그럴 리가…’하는 순진한 생각에서였나. 아니면 중증의 안보불감증이라도 걸린 탓이었을까.
그 북한이 미국본토를 가격할 수 있는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 지난 7월4일과 28일 두 차례 대륙간탄도탄(ICBM) 발사실험이 그것이다. 핵탄두가 장착된 장거리 미사일로 미국 본토의 도시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한 것이다.
북한 핵의 1차 타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서울이다. 대한민국인 것이다. 그런데도 태평세월이었다. 미국도 그 타깃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한국에서 핵 공포지수가 부쩍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아이러니가 없는 것이다.
그 공포지수를 더욱 높인 것은 공화당 중진인 린지 그레이엄 연방 상원의원의 발언이다. 그는 TV 방송과의 대담에서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과 북한 자체를 파괴하기 위한 군사적 옵션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또 이런 말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말이라고 전제하면서 전쟁이 있다면 저쪽(한반도)에서 있고 그 전쟁으로 수 천 명이 사망한다면 저쪽(한반도)에서이지 이쪽(미 본토)에서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간접적으로 전달된 것이긴 하지만 대통령 입에서 처음 ‘전쟁’이란 말이 나왔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한국인이 희생되더라도 미 본토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래서인가. ‘미국은 LA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서울을 보호하려들까’- 이 질문에 한국의 유력 일간지들이 내리고 있는 답은 하나로 기울고 있다. ‘아마도 아닐 것이다’로.
그레이엄 의원의 ‘저쪽(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 발언은 사실 처음이 아니다. ‘4월 위기설’이 파다했을 때도 나온 발언이다. 그러면 그는 왜 같은 발언을 재차 하고 나섰을까. 아마도 닉슨의 미치광이전략 도입의 일환이 아닐까.일부에서의 진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예측불허의, 위험한 인물로 부각시켜 중국으로부터, 혹은 북한으로부터 양보를 이끌어 내려는 작전이 아닐까 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 진위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예방전쟁(preventive war)가능성을 제시한 그레이엄 의원의 주장은 ‘일과성의 발언’으로 치부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위기는 계속 악화되고 있다. 때문에 그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엄청난 인명피해 등 상당한 대가가 따른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옵션을 강구해본 다음에나 가능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그러면 북핵 문제해결에서 군사적 옵션은 배제되고 있는 것일까. “중국에 대해 최대의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 그 옵션이 통하지 않았을 때 군사적 옵션을 꺼내들어도 늦지 않다.” 북한 문제 전문가 고든 챙의 말이다.
올가을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베이징은 보이지 않는 권력투쟁 상황을 맞고 있다. 경제는 허약하다. 경쟁자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시진핑에게 정치적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기회다. 이런 정황에서 최대의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장거리미사일은 명백하고도 실존적인 위협이다. 그러나 그 위협의 제거보다는 관리(manage)쪽에의 선택이 이성적 선택이다. 제거, 다시 말해 공격적 군사조치보다 방어적 군사대응 강화를 통한 억지력(deterrence)강화와 봉쇄(containment)가 남은 주요 옵션이다.”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이고, 또 다수 관측통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방어적 군사대응은 수동적 대응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주 단위로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띄우는 등 미 전략물자를 상시적으로 한반도 주변에 전개한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그리고 미본토의 미사일방어망을 대폭 증강시킨다. 이로 그치는 게 아니다. 사이버공격 강화와 함께 장기적으로 레짐 체인지나 김정은 제거 비밀공작을 펼친다. 그리고 핵에는 핵, 다시 말해 전술핵무기 재배치, 혹은 자체핵무기개발 등을 통해 한국의 핵 억지력도 강화한다.
이 한국 등 미 동맹국의 전략자산 증강전략이 그렇다. 그 자체로 전쟁억지력을 강화시킨다. 동시에 중국에 강력한 압력요소로 작용해 북한문제와 관련해 양보를 끌어낼 수도 있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 중국에 대한 강력한 세컨더리 제재, 북한해안 봉쇄 등을 통해 최대한 압력을 가한다.
이 억지와 봉쇄 전략은 끈기가 필요한 전략이다. 당장의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확고한 신념과 함께 장기적인 비전을 요구하는 전략이다. 케네디 대통령의 말을 빌리면 ‘환난 중에도 견디면서 감당하는 긴 여명의 투쟁(long twilight struggle)’이다.
그러니까 이제부터가 시작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 아닐까. 북한의 ICBM개발과 함께 바로 만연되고 있는 것은 동맹국에 대한 의구심이다. 게다가 북한의 장거리미사일발사와 함께 바로 드러난 것은 한국정부의 무능과 경박함이다. 때문에 하는 말이다.
사드에 극히 부정적이었다. 그 한국정부가 하루아침 입장을 바꾸었다. 추가배치하기로. 그 행태가 그렇다. 한, 두 수도 못 내다보는 안보전략문맹(文盲)수준이라고 할까. 북한 핵 위기는 장기적 전략과 인내가 요구되는 제 2의 냉전, 그 시작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 걱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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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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