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4년 6월 휴스턴 로켓츠와 뉴욕 닉스 간의 NBA 결승시리즈 경기를 중계하던 TV 화면이 갑자기 중단되고, LA경찰 차량들이 프리웨이이서 흰색 포드 브롱코를 추격하는 장면이 공중촬영으로 생중계 됐다. 브롱코 운전자는 불세출의 프로 풋볼선수였고, 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인기배우이자 TV 풋볼 중계방송의 명 해설자인 O. J. 심슨이었다.
심슨은 전 부인과 그녀의 남자친구 피살사건에 ‘관심인물’로 찍힌 후 소환에 불응하다가 그날 경찰추격으로 체포돼 살인혐의로 기소됐다. 흑인 부랑자를 집단 구타한 백인경찰관들이 무죄평결을 받아 LA 한인사회를 폐허로 만든 LA폭동이 일어난 2년 뒤, 두 백인을 살해한 용의자였던 흑인 심슨은 1년 가까이 이어진 ‘세기의 재판’ 끝에 무죄평결을 받았다.
흑인들은 이 평결이 정당하다며 환영했지만 백인들과 라티노들은 대부분 터무니없다는 반응이었다. 그의 무죄평결 이후 니콜 브라운 심슨과 남자친구 론 골드만의 피살사건은 영구미제로 남게 됐다. 니콜의 부모들은 그후 3,350만달러 배상 민사소송에서 이겼지만 심슨이 승소자의 재산압류권을 인정하지 않는 플로리다로 이주하는 바람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로부터 12년 후인 2007년 심슨은 다시 법정에 섰다. 이번엔 라스베이거스였다. 권총을 든 패거리를 이끌고 스포츠 기념품 업자들의 호텔방을 급습해 물건을 강탈한 혐의로 체포된 그는 역시 무죄를 주장했지만 범죄음모, 납치, 폭행, 강도, 살상무기 사용 등의 죄목으로 최하 9년, 최고 3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북부 네바다의 러브록 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틀 전 심슨은 또 한 번 미국과 전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됐다. 최하 선고량을 복역한 그를 네바다주 가석방 심사위원회가 빠르면 오는 10월1일 풀어주기로 만장일치 결정했다. 그는 감방 안에서 영상을 통해 라스베이거스의 가석방 심사위원들에게 “그동안 많이 회개했다. 9년 전 내가 올바르게 판단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다”며 머리를 숙였다.
TV화면에 비친 심슨은 예전 모습이 아니었다. 이달에 고희(70세)를 맞은 그는 몸이 펑퍼짐하고 얼굴도 푸석푸석해 보였다. 수인번호 1027820가 찍힌 죄수복을 입은 그는 석방된 후 다시 플로리다에서 가족과 살고 싶다고 말했다. 복역하는 동안 크리스천이 됐고, 4명의 자녀들과 전화가 아니라도 이메일로 소통하기 위해 컴퓨터 강좌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샌프란시스코 빈민가에서 태어난 심슨은 본명이 오렌탈 제임스 심슨이다. 그의 부모는 그가 5살 때 이혼했고 게이였던 그의 아버지는 에이즈로 죽었다. 심슨 자신도 구루병으로 5살 때까지 다리에 부목을 차고 다녔다. 갈릴레오 고교에서 풋볼을 시작한 심슨은 남가주대학(USC)에 러닝백으로 스카웃돼 대학풋볼의 최고영예인 하이스만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심슨은 USC 졸업 전에 프로 풋볼 팀 버팔로 빌스에 드래프트돼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14게임(지금은 16게임)이었던 한 시즌에 2,000야드를 돌파한 유일한 선수가 됐고, 은퇴할 때까지 총 1만1,236 전진 야드를 기록해 당시 역대 2위(현재는 21위)에 올랐다. 프로보울 게임에 6차례 출전했고, 대학풋볼과 프로풋볼(NFL)의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됐다.
심슨은 선수시절 헐리웃에 진출해 ‘뿌리’ ‘벌거벗은 총’(3부작) 등 33편의 영화 및 TV 쇼에 출연했다. 폴 뉴먼, 스티브 매퀸, 윌리엄 홀든 등 당시 톱스타들이 총 출연한 재난영화 ‘타워링 인페르노’(1974년)에서 건물 보안책임자로 데뷔한 심슨이 추락사한 여주인공의 고양이를 구조해 그녀를 사모한 사기꾼 프레드 아스테어에게 넘겨주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이름이 오렌지 주스의 약자(OJ)여서 ‘주스(Juice)’라는 별명이 붙은 심슨은 흑인이지만 생활무대는 백인사회였다. “심슨이 검둥이들과 함께 온다”는 농담까지 있다. 그래서 그의 이번 가석방 결정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미군으로 이라크 전까지 참전한 한인 김정환씨는 상대적으로 사소한 범죄 때문에 체포돼 추방될 위기다. 심슨은 월남전 징집을 외면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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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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