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내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중국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핵 초강국 미국을 감히 공격할 것인가. 못 할 것이다. 맥아더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중공군의 기습으로 허를 찔린 미군은 후퇴를 거듭했다. 전선은 38선 부근으로 다시 고착화되고 정전과 함께 남북을 가르는 경계선으로 굳어졌다.
맥아더의 오산은 이뿐이 아니다. 6.25, 다시 말해 한국전쟁을 대하는 트루먼 행정부의 정치적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이기기 위해 전쟁을 수행했지만 한국전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수행됐다.” 맥아더 회고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중공군 보급로를 끊기 위해 맥아더는 만주 폭격을 주장했다. 그러나 트루먼 행정부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3차 대전으로 갈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반도에서 공산세력 축출이 목표가 아니었다. 현상유지였다. ‘제한전쟁’(limited war)이 목표였던 것이다.
한국전은 ‘제한전쟁’이란 개념은 51년 5월 마셜 원수의 상원청문회 증언에서 명료하게 정리된다. 전면전쟁은 핵전쟁으로 이어져 상호파멸을 불러올 수 있다. 그 무제한전쟁을 억지하기 위한 대비 개념으로서 제한전쟁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그 6.25가 끝난 지 60년이 넘었다. 그런데 또다시 전쟁의 소리가 높다. 한반도는 ‘4세대 전쟁’ 중에 있다, 아니 그보다도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에 돌입했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전쟁사가들은 현대전의 양상을 3단계로 구분해 설명해왔다. 제 1세대 전쟁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대표된다. 대규모 소모전인 1차 세계대전이 2세대 전쟁이라면 3세대 전쟁은 기동력과 기습이 특징인 2차 세계대전으로 대별된다.
2001년 9월11일 전 세계는 수퍼 파워 미국에 퍼부어진 가공할 테러공격을 목격했다. 공격행위자의 실체도 불분명했다. 선전포고도 없었다.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불확실했다. 이 9.11테러를 전쟁사가들은 4세대 전쟁의 본격개막을 알리는 신호로 해석했다.
전쟁의 양상이 그동안의 정규전과는 거리가 멀다. 따로 전선이 없다. 군사시설과 비(非)군사시설의 구분도 없다. 인도주의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상대방에게 최대의 인적, 물적 피해와 심리적 충격, 그리고 사회적 혼란을 가져다주기 위해 온갖 수단이 강구된다. 이런 의미에서 ‘비대칭전쟁(asymmetric war)’이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갔다. 재래식 전투 외에 사이버공격, 가짜뉴스 유포 등을 통한 정보전, 심리전, 혼란 공작에 대리전 양상도 가미된다. 심지어 갱 등 조직범죄 집단도 가동한다. ‘하이브리드 전쟁’을 말하는 거다.
냉전시대가 ‘제한전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 전쟁의 트렌드는 ‘하이브리드 전쟁’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 하이브리드 전쟁의 개념은 2000년대 중반에 제기된 미래전쟁양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남중국해 도발 등은 하이브리드 전쟁의 전형이다.
이 하이브리드 전쟁이 그렇다. 군사와 비(非)군사의 경계가 모호하다. 주적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전선이 명확하지 않다. 그러면서 공격목표가 무차별적이다. 상대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 약점을 교묘히 파고들어 전략적 이익을 취하기도 한다.
한국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북한의 하이브리드 전쟁의 주 타깃이다. 해킹에, 가짜뉴스 살포에, 선전전 등을 통해 시도 때도 없이 하이브리드 전쟁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은 동시에 중국이 전개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주 대상이기도 하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사드배치를 놓고 중국이 가한 경제보복도 다름 아닌 하이브리드 전쟁의 일환이라는 거다. 한국에 배치되는 사드는 중국에 별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 중국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집요하게 반대해왔다. 경제보복도 서슴지 않으면서. 왜. 정치적 이유에서다.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가 사드배치를 통해 더 굳어진다. 그 동맹관계를 이간시키려는 고도의 심리전이 사드배치 반대라는 것이다. 한국을 타깃으로 한 베이징의 하이브리드 전쟁은 그리고 이제 서곡에 불과하다는 것이 뒤이은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지적이다.
‘중국은 한국정부에 사드기지 사찰을 요구하고 나섰다’- 북한의 무인기가 성주의 사드 포대를 공중 촬영했다는 보도와 함께 전해진 뉴스다. 어이가 없어 참담한 심경이다. 얼마나 만만히 보았으면….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 아닐까. 정치권은 사드를 둘러싸고 계속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일부 성주 주민들, 그러니까 민간인들이 나서 군사시설에 들어가는 물품을 검열한다. 새로 들어선 청와대 안보팀은 유행이 한참 지난 레코드판을 틀어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 한국이 균형자적, 중간자적 역할을 하겠다는 거다.
그 와중에 나온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잇단 대북발언이다. ‘핵 폐기’가 아니다. ‘핵과 미사일 도발중지’를 조건으로 세기의 패륜아 김정은과 만나겠다는 거다.
그 발언은 대 중국 환심 사기 발언으로 이어졌다. 시진핑의 ‘일로일대’정책에 화답해 ‘남과 북이 철도로 연결될 때 새로운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의 완성이 이뤄진다’고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을 굳이 왜곡해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선린외교라는 호의에서 나온 발언일 수 있다. 대화만이 북한 핵문제 해결책으로 굳게 믿고 있을 수 있다. 그 발상이 그런데 월스트리트 저널의 지적대로 지나치게 순진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답답하다. 걱정이 든다.
나 홀로 순진함은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하이브리드 전쟁’이 무차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외교무대의 뒤안길에서는 화를 자초하기 십상이다. 사드배치 연기로, 또 식물인간이 돼 돌아온 윔비어사건으로 미국 내 기류가 심상치 않은 정황에서는 더 더군다나.
해마다 찾아오는 6.25의 달 6월. 그 6월이 올해에는 더 무겁게 느껴진다.
<
옥세철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