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조제프 크리스천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다. 제레미(Jeremy)는 유대민족의 대 선지자 예레미야(Jeremiah)의 영어식 이름이다. 그의 책이 성경에 두 권이나 들어있다. 조제프(Joseph)는 아버지(야곱)의 대가족 70여명을 이집트로 데려와 이스라엘 국가의 초석을 세운 이민자 총리 요셉이다. 크리스천(Christian)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이름만 봐서는 그가 천사 같아야지만 실제로는 극악무도한 악마이다. 지난주 포틀랜드 경전철 안에서 칼을 휘둘러 진짜 천사다운 시민 두 명을 살해하고 한명에 중상을 입힌 골수 ‘스킨헤드’(백인우월주의자)이자 전과자이며 부모 집에 얹혀사는 실업자다. 그는 사흘 전 법정에서도 “당신네들은 테러라고 말하지만 내 행위는 애국심의 발로였다”며 떠들었다.
크리스천(35)은 지난 주 전철 안에서 싸구려 소다 포도주를 마시며 두 흑인 여학생에게 인종적, 종교적 혐오욕설을 퍼부었다. 저소득층 이민자 자녀들이 많은 데이빗 더글라스 고교 재학생인 이들 여학생 중 한명은 무슬림 히잡을 쓰고 있었다. “미국의 적들은 모두 죽어야한다”는 등 크리스천이 악담을 계속 쏟아냈지만 대부분의 승객들은 잠자코 있었다.
이윽고 백인승객 3명이 일어나 크리스천을 제지했다. 무슬림국가인 이라크와 아프간 참전용사출신 릭 베스트(53), 리드대학 졸업생 탈리신 남카이-메쉬(23), 포틀랜드주립대 학생 미카 플렛처(21)였다. 이들은 크리스천의 칼에 찔려 베스트는 현장에서, 남카이-메쉬는 병원에서 숨졌고, 칼날이 급소를 아슬아슬 빗겨간 플렛처는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다.
목재와 낙농이 주산업인 오리건은 일견 평화롭다. 민주당 아성이며 한인 1세 이민자인 임용근씨가 주 상하원 의원직을 역임하고 주지사선거에도 출마했을 정도로 진보적이다. 하지만 오리건은 원래 스킨헤드의 텃밭이다. 대부분 남부 주에서 옮겨온 초기 정착자들이 흑인을 천대했다. 지금도 포틀랜드는 전체인구의 70% 이상이 백인이고 흑인은 고작 6%다.
오리건주엔 19세기까지 흑인거주 금지법이 있었다. 1920년대엔 KKK(백인우월주의단체) 단원들이 주의회에 진출해 주지사 선거까지 좌지우지했다. 1930년대엔 나치계열의 독일계 미국인동맹(GAB)이 포틀랜드에 지부를 설치하고 반 유대인 캠페인을 벌였다. 이들은 ‘하일 히틀러’를 본 딴 ‘자유 미국(Free America)’ 구호를 외치며 팔을 올려 서로 경례했다.
불과 30년전인1988년 11월 포틀랜드에서 끔찍한 인종증오 살인사건이 터졌다. 에티오피아 이민자 물루제타 세라우가 스킨헤드 3명에게 이유 없이 야구방망이로 폭행당해 숨졌다. KKK는 그의 가족에 소송당해 수백만달러 보상판결을 받고 파산했다. 지난주 크리스천의 칼에 피살된 두 의인의 추도소엔 “물루제타 세라우를 기억하자”는 팻말도 등장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크리스천 사건이 터진 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급기야 원로 언론인 댄 래더(전 CBS 앵커)가 공개서한을 내고 “세 영웅 시민의 이름이 들어간 애도성명을 내라”고 촉구했다. 트럼프는 사건 사흘 후인 메모리얼 데이에 백악관 트위터를 통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짤막한 성명을 냈지만 세 영웅은 거명하지 않았다.
무슬림을 극도로 증오하는 크리스천은 트럼프와 닮은꼴이다. 하지만 그는 대선기간 중 버니 샌더스 후보를 지지했다. 트럼프 후원집회에 참가해 나치 식으로 팔을 올리고 “무슬림을 죽여라”고 고함질러 쫓겨나기도 했다.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엔 인종증오 욕설과 함께 만화책 장사얘기와 포경수술(할례) 반대 주장이 넘친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또라이’다.
크리스천은 험담을 표현의 자유로 둘러댔다. 트럼프도 말실수를 하면 표현의 자유를 내세웠다. 지난달 몬태나주 연방의원 선거에선 공화당 후보가 기자를 멱살 잡아 메쳤다. 트럼프도 언론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세운다. 이런 또라이들이 더 나올 것 같아 겁나지만 크리스천에 희생된 세 민초들처럼 불의에 분연히 맞서는 영웅들이 있는 한 미국은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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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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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신 분의 논리와 표현이 트럼프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