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육암·신화자씨 부부48년의 세월을 한 길만 보고 달려왔다. 서울에서 시작해 파라과이를 거쳐 아르헨티나, 그리고 미국 LA에 정착하기까지, 이들 부부의 48년 결혼생활에는 전 세계를 누비며 함께 고생하면서도 단단히 쌓아온 행복이 켜켜이 넘쳐난다.
한국일보 미주본사 창간 48주년인 올해 결혼 48주년을 맞은 유쾌한 부부를 만났다. 주인공은 신육암(77), 신화자(72)씨 부부. 이들은 한국일보 미주본사가 창간되던 1969년 그해 10월9일 결혼 예식을 올렸다. 이들의 여정은 결혼 2년 전인 1967년부터 시작됐다. 전북 출신 남편이 서울에서 보험일을 하고 있을 때 고향이 황해도인 아내의 올케의 소개로 만나 2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을 했다고 한다.
서울의 수도예식장에서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린 뒤 신혼여행을 인천 송도로 갔던 신혼부부는 서울 금호동에 신혼살림을 차린 뒤 신림동과 봉천동에서 초창기를 지냈다.
그사이 남편 신육암씨는 가족들을 위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 공사 현장에서 3년여를 일하며 아내와 떨어져 고생을 했다고 한다. 남편 신씨는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처음에는 막노동을 하다가 힘들어서 운전일을 했다”며 “비누가 치약을 들고 가도 물이 쇳물이라 쓸 수가 없을 정도로 고생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다 당시 먼저 남미의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났던 아내의 작은 오빠가 이민 초청을 해 7~8년의 기다림 끝에 1983년 2월 어느 추운 겨울날 파라과이 행에 오른 것이 이들 부부의 이민 인생의 시작이었다.
연년생으로 딸과 아들 남매를 둔 부부는 큰 딸이 중학교 입학할 무렵에 파라과이로 이주해 5년 반을 살았고 이후 다시 아르헨티나로 가서 또 15년을 살았다. 미국에는 아이들이 먼저 와서 부부를 초청해 2001년 마침내 LA 시민이 됐다.
처음 파라과이에서는 저녁에 도매시장에서 옷을 떼어다 차에 싣고 돌아다니며 파는 의류상을 했다. 당시 파라과이에는 담이 없었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손뼉을 치면 사람들이 나와서 옷을 사곤 했다고 한다.부부는 이후 역시 작은 오빠가 먼저 개척한 아르헨티나로 옮겨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딸 이름을 따서 ‘Jenny’라는 상호를 걸고 의류 판매업소를 정식으로 시작했다. 부부는 “남미는 한국과 음식도 다르고 아이들 키우는 방식이 달랐다. 특히 남미는 한국보다 자유분방한 편이어서 교육에 신경을 더 썼고 자녀교육에 엄격했던 것 같다”며 “정말 바쁘게 살았지만 아이들이 잘 커줘서 정말 고맙고, LA로 와서 지금은 주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마음에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딸은 딸을 하나 낳고 아들은 아들을 하나 낳아 3대가 모두 LA에 살고 있는데, 손자손녀가 벌써 대학생이 됐고 모두 착하게 잘 커서 더할 나위 없다”며 웃었다.
결혼 48년이 된 지금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내 신씨는 “식구들을 잘 챙겨주고 책임감 있는 남편에게 너무 감사한다. 특히 남편이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3년여 간 땡볕에서 일을 하면서 가족들을 위해 희생을 했다”며 “남편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다시 결혼하겠다. 3년 후 남편 팔순이 되면 가족이 다 같이 한국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 신씨는 “결혼 생활 동안 내 주장을 많이 했는데 아내가 내 말을 잘 따라준 게 고맙다”며 “앞으로도 인생의 동반자로서 잘 살아가려고 한다. 사랑한다”고 화답했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바라는 것으로 부부는 “딸이 몸이 약해서 마음이 쓰이는 데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고 아들이 요즘 많이 바쁜 것 같아 계속 건강했으면 좋겠다”며 “손자손녀는 한인의 저력과 끈기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서 훌륭한 사회인이 되고 또 좋은 짝을 만나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평범하면서도 부모이자 할아버지, 할머니로서의 사랑 넘치는 바램을 내비쳤다.
<예진협 기자>
▶ 김병천·김신실씨 부부“서로 눈만 쳐다봐도 배우자가 뭘 원하는지 알아요”
이혼율이 높아지고 결혼률도 점차 떨어지고 있는 요즘 무려 48년째 아름답고 화목한 결혼생활을 이어오는 노부부가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샌퍼난도 밸리 포터랜치에 거주하는 김병천(79)·김신실(72)씨 부부. 김씨 부부는 한국일보가 탄생한 1969년 서울 영락교회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후 현재까지 서로에 대한 믿음과 깊은 신앙의 힘으로 화목한 가정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천생연분’에 정확하게 어울리는 한 쌍이다.
부부의 첫 만남은 요즘 시대에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중매를 통해 이루어졌다.
부인 김신실씨는 “처음 남편을 만날 당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며 “아는 언니가 갑자기 남자 소개해 준다고 해서 따라나섰는데 저쪽에서는 친척들까지 같이 왔다”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남편 김병천씨는 “당시 집안에서 결혼을 서두르는 경향이 있었다”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부인 김신실씨는 “우리는 요즘 커플들과는 달리 연애를 제대로 즐길 시간이 없었다”며 “그래서 같이 살아가는 매 순간 순간을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졸업 후 고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던 남편과 이화여대 조교 생활을 하던 부인은 남편의 학문에 대한 열의 때문에 도미를 결심했다고 한다. 1973년 먼저 남편이 미국에 왔고, 다음해 인 1974년 부인이 미국으로 건너왔다.
교수직 진출을 꿈꿨던 남편은 먹고 사는 문제에 부딪혀 제대로 학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남편 김씨는 “당시 단돈 200달러만 가지고 미국에 왔다”며 “먹고 살기 위해 학업과 일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부인 김씨는 “한국에서는 둘 다 학교에 몸담았기 때문에 미국에 와서 하는 모든 일들이 정말 쉽지가 않았다”며 “살기 위해 일하는지, 일하기 위해 사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앞만 바라보고 생활했다”고 전했다.
이들 부부는 도미 후 첫 10년동안 영주권이 없어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김씨 부부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배우자에 대한 신뢰와 돈독한 신앙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편 김씨는 “서로 밖에 나가서 힘들고 지쳐도 집에 돌아오면 나를 반겨주는 배우자가 있었기에 항상 웃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부인 김씨는 “(남편을 보면) ‘이렇게 살 양반이 아닌데…’ 하는 생각 때문에 불쌍한 마음이 들들었”며 “화낼 일이 있어도 웃으며, 서로 위해주고 격려해 주며 힘든 상황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가 자신들의 힘만으론 해결하기 힘든 역경에 부딪혔을 때 신념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것은 신앙이 큰 역할을 했다. 부인 김씨는 “막막할 때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슬하에 딸 둘을 두고 있다. 부인 김씨는 “두 딸 모두 대견하게 잘 자라서 정말 고맙다”며 “큰 딸은 의사, 둘째 딸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두 딸에게 정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며 “사실 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영주권이 없다는 사실을 숨겼었다”고 털어놓았다. 두 딸 모두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은 물론 영주권도 없었다. 하지만 김씨 부부는 이 같은 사실을 숨겼고, 딸들은 10년간이나 이를 몰랐다고 한다.
이민생활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만들며 48년째 같이 한 길을 걷고 있는 김씨 부부는 인생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들 부부는 “가정의 행복을 최우선시하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부는 이어 “또한 마음을 비울 때 평안과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며 “신앙과 믿음을 가지면 외부의 압박을 버텨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배들에게 “힘든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것을 배웠다”라며 “지금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면 이를 배움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꼭 이겨내라”고 조언했다.<정재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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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협 기자·정재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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