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TV방송 심야토크쇼 진행자들이 이번 주 신이 났다. 좋은 풍자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단골로 도마 위에 오르던 트럼프가 교황을 만났으니 직업 말꾼들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트럼프 가족들과 교황의 기념사진이 특히 한몫을 했다.
사진에서 부인 멜라니아와 딸 이방카 부부는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고, 트럼프 혼자 활짝 웃고 있는데 그 옆 교황의 표정은 좋게 말해서 근엄하다. 교황이 트럼프를 못 마땅해 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 자애로운 미소가 트레이드마크인 교황의 굳은 표정은 토크쇼 진행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교황이 (트럼프 옆에 서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닐까: 내가 틀렸어 - 신은 없는 거야.” “트럼프가 ‘예수의 팔로어가 12명뿐이라구? 안됐어. 트윗 실력이 형편없었나보군’ 하고 말하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고 해.” “면담은 좋았는데, 교황이 고해성사를 하겠냐고 물으니 트럼프가 대뜸 ‘러시아에 대해서 난 아무 것도 몰라요’라고 했다더군.” … 톡톡 튀는 위트의 잔치가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4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것이 큰 화제가 되었다. 개인적 성향이나 철학, 가치관으로 보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두 지도자의 만남은 여러 면에서 주목을 받았다. 뼛속까지 세속적인 지도자가 영적인 지도자를 만남으로써 어떤 선한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일부 있었다. 최강국 지도자와 종교적 최고 지도자의 만남은 역사를 바꾸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91년 소련의 붕괴는 1980년대 후반 동유럽 혁명에서 시작되었다. 동유럽 국가들과 소비에트연방 국가들에서 공산주의 반대 시민운동이 쓰나미처럼 번지면서 정권은 무너지고 공산주의는 몰락했다. 그 거대한 붕괴의 근원을 따라가 보면 교황과 대통령의 만남이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1982년 여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요한 바오로 2세의 만남이다.
두 지도자는 공통점이 많았다. 세계를 보는 시각, 신앙관, 기독교인으로서의 책임의식에 대한 생각들이 비슷했다. 특히 암살범의 총탄에 죽다 살아난 공통의 경험은 두 사람에게 어떤 동지의식을 갖게 했다. 죽음에서 기적처럼 살아난 것은 ‘악의 제국’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영적 사명이 있기 때문이라는 공감대가 두 지도자 사이에 형성되었다.
냉전 종식을 목표로 레이건과 요한 바오로 2세가 손을 잡고 미국과 가톨릭교회가 힘을 합친 결과, 80년대 초만 해도 상상도 못하던 공산주의 몰락, 소연방 붕괴라는 대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트럼프의 만남에서 이런 영적 교감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30분 면담은 우호적이었지만 교(交)-감(感)을 하기에 두 사람은 너무 다르다.
한사람이 평생 물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추구했다면 다른 사람은 자랑스럽게 황금만능주의를 추구했고, 한사람이 겸손의 상징이라면 다른 사람은 빌딩이든 비행기든 자기 이름을 새겨야 직성이 풀리는 자기애의 주인공, 한 사람이 금욕주의자라면 다른 사람은 세 번의 결혼과 무수한 여성편력을 자랑삼는 바람둥이 … 서로 극과 극인 점들을 꼽자면 한이 없다.
그렇다고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아웃사이더이자 포퓰리스트로 대단한 친화력의 소유자들이다. 유럽중심의 바티칸에서 교황은 멀리 아르헨티나에서 날아온 아웃사이더, 트럼프는 정치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정치권 아웃사이더이다. 기존질서에 과감하게 도전함으로써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포퓰리스트이다.
하지만 포퓰리스트로서 추구하는 바는 같지 않다. 낙태, 이혼, 동성애 등에 대해 교황이 관용적 태도를 보인 것은 사랑 때문. 사람 사랑에 최우선 가치를 두다보니 그는 전통, 이념, 종교까지도 넘어선다. 반면 트럼프의 대중적 인기는 분노를 자극한 덕분이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경제적 좌절감 깊은 근로계층 백인 기독교도들의 응어리진 가슴을 거친 말로 대변해줌으로써 골수 지지층을 만들어 냈다.
두 지도자를 가장 상징적으로 가르는 것은 ‘장벽’이다. 교황은 사람과 사람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사람, 트럼프는 장벽을 높게 세우는 사람이다. 장벽의 기능은 안을 보호하고 밖을 경계하는 것, 안은 ‘우리’ 밖은 ‘적’으로 구분하는 것. 배척과 경계의 장치이다. 하지만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벽은 궁극적으로 ‘밖’의 적개심을 키워 역효과를 내곤 한다.
교황은 면담을 끝내면서 트럼프에게 “올리브 나뭇가지처럼 평화의 도구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교황의 부탁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멕시코 장벽만 포기해도 얼마나 많은 빈곤층이 계속 지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트럼프 예산안은 저소득층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트럼프가 교황과의 만남을 계기로 ‘장벽’의 이면을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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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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