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대표적 미남배우였던 커크 더글라스가 지난 연말로 100살이 되었다. 그리고 이달 말 결혼 63주년을 맞는다. 기나긴 결혼생활을 돌아볼 겸 부부는 공동 회고록을 펴냈다. ‘커크와 앤: 사랑의 편지들과 웃음과 할리웃에서의 일생’이란 책이다.
부부가 젊은 시절 주고받은 편지들을 수십년 지난 지금까지 부인 앤이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더글라스가 공동의 책 발간을 추진했다고 한다. 그에게는 12번째 책이기도 하다.
나이 63세도 많은 데 결혼 63년이라니 … 그 긴 세월 부부의 삶은 어떠했을까. 책 발간을 계기로 노부부의 삶이 미디어의 조명을 받았다. 젊었던 시절 그들의 모습이 눈부셨다면, 100살과 98살인 지금 부부의 모습은 푸근한 아름다움이다. 부부는 한 몸인 듯 더불어 자연스럽다. 63년 세월이 빚어낸 작품이다.
우리 삶의 축이 되는 제도 혹은 전통 중 결혼처럼 급속한 변화를 겪는 것도 없다. 2000년대 들어서며 새로운 풍조들이 마구 생겨나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은 태어남과 죽음, 그리고 그 중간에 결혼이 있다. 부모 슬하에서 자라 성년이 되면 스스로 가정을 이루고 부모가 되는 억겁의 연결고리로 인류역사는 진행되어 왔다. 그 흐름에 무조건 순종하지는 않겠다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과거 성인은 결혼한 자와 못한 자로 나뉘었다. 기혼과 미혼이다. 그리고 이따금 이혼이 있었다.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된 지금은 기혼과 비혼(非婚)으로 나뉜다. 비혼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 - 못 했거나 안한 경우들을 모두 아우른다.
미혼, 이혼이나 사별 등 비혼의 1인가구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2015년 기준 한국에서 1인가구는 27.2%, 20~30대 젊은 층에서는 절반 이상(52.8%)이 혼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도 비슷해서 2014년 통계를 보면 전체 가구의 27.7%가 1인가구이다.
비혼 풍조를 뚫고 결혼을 한다 해도 절반의 성공일 뿐이다. 결혼 두 건 중 한건은 이혼으로 끝난다. 결혼생활 수십 년이라고 안심할 수도 없다.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 이혼보다는 낫다며 졸혼(卒婚)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부부관계도 등장했다. 법적으로는 혼인관계를 유지하면서 부부가 합의 하에 각자의 삶을 산다는 개념이다.
졸혼이 2000년대 일본에서 나온 풍조라면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결혼 안식년이란 말이 등장했다. 결혼생활을 잠시 접고 자신만의 삶을 누림으로써 재충전의 기회를 갖는다는 발상이다. 그런 ‘안식’의 과정을 통해 배우자와 가정의 가치를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비혼, 졸혼, 안식년 … 이 모두가 하는 말은 무엇인가. 남녀가 만나 평생을 같이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 ‘백년해로’는 조만간 멸종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는 말이다.
더글러스 부부는 어떻게 그 어려운 백년해로를 했을까. 부인 앤은 정직과 신뢰를 필수조건으로 꼽았다. 서로에게 숨김이 없어서 서로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글러스는 완벽한 남편이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그는 소문난 바람둥이였다.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의 엄마인 첫 부인과 헤어진 이유도 ‘바람기’ 때문이었다. 1954년 결혼하면서 앤은 한 가지를 분명히 했다. “바람을 피우게 되면 솔직하게 말하라. 그 얘기가 가십으로 내 귀에 들어오게 하지 말라.”였다.
여기서 더글러스의 ‘정직성’이 나온다. 그는 항상 일찌감치 이실직고했고, 그런 남편을 부인은 쿨~하게 눈 감아 주었다. “결혼했다고 완벽한 정절을 기대한다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앤은 말한다. 바람둥이 남편과 이혼하지 않은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내 남편, 내 삶, 내 가족을 사랑했다. 자존심 살리자고 그 모두를 포기해야 하는가?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가치관이 같으니 함께 하는 것이다.”
결혼생활 63년이면 부부는 산전수전을 다 겪는다. 중요한 것은 그 모두를 같이 겪는다는 것이다. 부부사이를 탄탄하게 만드는 것은 살면서 함께 넘어온 장애물들. 더글러스 부부라고 아픔이 없지 않았다. 앤의 유방암 투병, 더글러스의 뇌졸중과 자살충동을 느낄 만큼 심각했던 우울증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의 죽음이다. 정신질환과 마약중독으로 고통 받던 아들 에릭은 약물과다 복용으로 10여 년 전 목숨을 잃었다.
그 외 63년 결혼의 비결은? 부부는 ‘골든아워’를 꼽았다. 부부는 젊은 시절부터 매일 저녁 6시30분이면 마주 앉아 그날 하루 지낸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수십년 쌓인 대화가 지금의 노부부를 만들었을 것이다.
결혼은 부부가 함께 세월을 섞어 빚어내는 일생의 작품 같은 것. ‘함께’도 싫고 ‘세월’도 부담스럽다는 것이 ‘비혼’ 정서이다. 5월21일은 둘이 하나 되는 부부의 날, 부부라는 인연의 무게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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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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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3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결혼제도가 끝나간다기 보다 바뀐 세상과 환경때문에 결혼의 내용이 진화가 필요할때가 된것 같아요.
어떤 것이든 좋고 나쁜 것이 공존합니다. 결혼엔 좋은 것이 더 많습니다.
결혼 이라는 제도는 이제 그 용도가 끝나가고 있다. 둘이사는것보다 혼자 사는게 더 익숙한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