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까지 영영 이별하게 되었다. 3년 전엔 아버지께서, 작년 늦가을엔 어머니께서 우리 곁을 떠나시더니 이젠 마지막 작별의 불씨가 처가로 옮겨 붙고 말았다. 지난달 셋째 주 토요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한국 처남으로부터의 전화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오는 전화는 심상치 않는 거라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아내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의 목소리는 불과 몇 초 사이에 비명으로 둔갑했다. 장모님이 급작스럽게 떠나셨다는 소식이었다.
아내와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타며 여러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한국여행은 항상 설레는 마음과 함께였다. 살아있는 가족들을 만난다는 기쁨은 열두 시간 넘는 박스 같은 비행기 안에서의 피곤함과 무료함을 충분히 이기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번엔 우리 곁을 떠나버린 가족, 그것도 ‘가족 중의 가족’이며 ‘가족 사랑의 원천’인 어머니와의 이별 뒤처리를 위해 가는 것이기에 비행기 속에서의 긴 어둠의 시간들은 잔혹하리만치 견디기 힘들었다. 아내의 울음은 그치질 않았다. 멍하다가 울고, 또 다시 멍하다가 또 울고, 아내는 계속 울었다. 인천공항 도착 후 집으로 내려가는 버스에서도 울고, 고향 땅 톨게이트 사인판 보더니 또 다시 울컥하고, 그리곤 친정아버지와 동생들을 만나자 그땐 아예 오열하고.
한국 도착했을 때 장모님은 이미 한 줌의 재로 변해 있었다. 한국은 대개 삼일장을 치른다. 미국에서는 메모리얼 서비스가 장례식의 정점이다. 한국은 영정을 모신 ‘빈소’라는 게 있어 상주는 그 빈소에서 방문하는 조객들을 맞이한다. 피곤한 그 과정을 다 치른 후 3일째 시신을 화장하고 묻으면 모든 장례절차는 다 끝난다. 그러니 하루를 더 늦게 사는 이민자인 우리로서는 떠나는 이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게 우리를 더 슬프게 했다.
이민자가 갖는 서러움의 종목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종목들 중 ‘물리적 불효’가 차지하는 순위는 항상 앞서있다. 효도도 지리적으로 부모와 가까이 있을 때 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민자들은 이 면에서 이미 불리하다. 아내는 맏딸인데다 외딸이다. 밑으로는 남동생 둘이니 장인장모님 입장에서는 아내를 무척 예뻐했다. 그런 딸을 미국으로 납치(?)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사위로서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다. 그 때문에 이번에 가서 제일 많이 한 인사말이(상당히 진심이 담긴) 바로 “이민자의 죄 용서해주십시오.”였다.
그래도 우리는 낫다는 생각을 하며 감사했다. 돌아가신 후에라도 가볼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서다. 이민목회를 하면서 고국에서 부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달려가지 못하는 분들을 많이 봤다. 여러 말 못할 사연들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걸로는 비즈니스 운영 때문에, 또 남에게 말하기 힘든 신분상의 문제 때문에, 그리고 현실적인 재정 형편 때문이다. 이런 그들을 지켜볼 때마다 목회자로서의 내 마음은 미어진다.
이제 양가 양친들 중 한 분만 남았다. 장인어른이다. 자식들의 걱정은 혼자되신 몸으로 이제 어떻게 살아가실까 하는 데에 있다. 이런저런 방법들을 연구 중이다. 그나마 이게 최선의 길이라며 그 중 하나를 선택해 추진 중이다. 하지만 그건 외형상 최선일 뿐, 그게 뻥 뚫려버린 그분 인생의 절반을 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결코 아니다. 이에 느끼는 건, 인생이라는 것은 꼭 ‘그것’ 아니면 채울 수 없는 신비하고도 오묘한 집합체라는 사실이다.
그 ‘그것’은 넓게 말하면 가족이요, 좁혀 말하면 부부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 특히 거의 한평생을 같이 살아온 아내나 남편을 잃었을 뗀 그 어떤 것으로도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다른 대체인물로도, 더 나은 사회조직으로도, 또 그 어떤 취미생활로도 불가능하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죽음은 물리적으로 대체불가능한 가족의 중요성을 처절하게 경험케 하는 매우 교훈적인 사건인 것 같다. 하지만 그 일이 벌어져버렸을 때는 이미 늦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오월은 부모와 자식의 소중함,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인 교회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는 중요한 시즌이다. 나와 아내의 경우는 그 소중함을 가장 아픈 방식으로 경험한 것이다. 그 소중함을 느끼면서 언급하고픈 때늦은 후회의 변이 하나 있다. “있을 때, 살아계실 때 잘해!” 책 선반에 놓인 영정사진 속의 어머니가 활짝 웃으시며 날 지켜보고 계신다. 그리운 웃음이다. 살아계실 때 더 잘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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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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