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름을 걸고 ‘드라셀 화장품’을 출시한 황우석 박사는 “생물학적 나이를 볼 때 생을 정리해야할 시기가 다가오니 남은 기간이라도 연구에 몰두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밝혔다. /박상혁 기자
“불가능하다는 연구에 무한히 도전하는 것이 과학자의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우석 박사만큼 한인들에게 이름이 깊이 각인된 과학자도 많지 않을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와 동물 복제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떨친 황우석 박사는 지난 2005년 사이언스지 줄기세포 복제 관련 논문으로 세계적 파문의 장본인이 되면서 여러모로 유명세를 치렀다. 이후 10여년 간 은둔의 삶을 살았던 황 박사는 지난 2015년 대한민국 대법원으로부터 ‘1번 배아줄기세포 등록’ 가능 판결을 받으며 세간의 이목 앞에 다시 돌아왔고, 여전히 동물 복제 연구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줄기세포 기능성 화장품 ‘드라셀’(DraCell)을 출시했다. LA를 방문해 16일 본보를 찾은 황우석(65) 박사를 직격 인터뷰했다. 다음은 황 박사와의 일문일답.
-10여 년 만이다. 어떻게 지내셨는지
▲수암생명공학연구원에서 동물 복제 연구를 해왔다. LA에 도착하기 전날인 14일 복제견 900호가 태어났다. 어느 나라 국왕의 애견이다. 개의 복제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포유동물 중에 가장 까다로운 복제다. 미국에서도 18년 전부터 시도를 하다가 작년 11월 거대 바이오기업에서 한 케이스가 성공했다. 우리는 900번째 복제견이다. 그 옛날 복제견 1호는 6,000번 시도해 겨우 태어났다. 원가 8억원(약 72만 달러)이 들었다. 지금은 3번 정도 시도해 태어난다. 대한민국이 복제견에서 선도국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있다.
-2005년 파문 이후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을 설립한 건가
▲서울대에서 쫓겨날 때 ‘수암’이라는 호를 가진 박병수 스마젠 회장이 생명공학연구를 재개하라고 연구소를 설립해주었다. 그 당시 함께 연구하던 제자 20명이 서울대를 박차고 나왔다. 황우석이 없는 이 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며 서울대에서 짐을 싸서 나온거다.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는 결의는 다졌지만 자금이 없었다. 그 때 박병수 회장이 연구소를 차려주었고 LA의 강창근 엣지마인 회장(대전고 동기)도 재정적으로 많은 지원과 뒷받침을 했다.
-줄기세포 논문 파문이 이제 12년이 지났다
▲당시 연구에서 하자가 있음은 인정한다. 우리도 몰랐다고 해도 하자를 인식하지 못한 것 자체가 큰 책임이다. 서울대 자체의 하자가 아니고 타 기관의 하자라 할지라도 책임은 제게 있다. 다만 줄기세포 기술 자체를 부정한 것은 좀 더 이성적으로 살펴봐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과학과 학문의 결과물이었다. 감정적으로, 시대 흐름과 사회적 분위기로 판단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학문의 평가와 검증의 단계가 아쉬웠다.
-특수 목적견 복제 연구를 하고 계신 걸로 안다
▲개의 복제가 가장 까다롭다. 포유동물 중 가장 어려운 복제이다. 복제견은 원래 애견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제는 애견복제보다는 특수목적견 복제가 많아졌다. 경찰견으로 범인수색이나 시체 수색, 폭발물 탐지, 마약탐지를 한다. 그리고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특수 목적견 복제 연구가 활발하다. 특히 알츠하이머 등 인간 질병의 동물 모델 연구로 이미 논문을 통해 발표된 알츠하이머 치료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견 복제다. 냄새로 암 탐지를 하는 복제견이 있고 우울증 등의 정신과 질환 치료 목적의 복제견도 있다.
-복제된 특수 목적견들이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가
▲인천공항에 가보면 새까만 큰 아이들(대형견을 지칭)이 돌아다닌다. 승객들의 짐 속에 폭발물 탐지견이다. 한국 경찰의 경찰견 중에서 50% 이상이 복제견이다. 군견도 있고. 보안상의 문제로 밝힐 순 없지만 미국에도 복제견이 있다.
-황우석 1번 배아줄기세포는 결국 특허 등록이 됐는가
▲특허 등록은 2011년 캐나다에서 시작돼 2012년 뉴질랜드, 2013년 유럽연합(EU), 2015년 미국, 2016년 추가적으로 미국 정부 등록이 된 후 2016년 11월에 이르러서 드디어 대한민국의 특허가 등록됐다. 2016년 11월 말 보건복지부에 NT1 등록이 됐다. 원래 특허기술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특허제도가 생긴 것 자국 기술과 이익의 보호에서 나온 제도인데... 전 세계 선진국이 인정한 이후에도 특허 등록이 안되다가 수년 만에 한국 법원의 준엄한 꾸짖음 끝에 특허가 됐다. 이제는 별로 여한이 없다. 남은 생은 원래 하고자 했던 연구의 최종목적을 달성하는 그 숙제만 남았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노화방지 세포재생 화장품을 만드셨는데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화장품을 만들어내겠다는 의도는 없었다. 학문의 길에서 화장품은 외도라고, 학자가 갈 길은 아니지 않냐고 예전에는 생각했다. 대학을 쫓겨나고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2008년도 리비아 카다피 원수가 저한테 특사를 보내 인연을 맺었는데 도움에 인사를 드리려고 카디피 원수의 부인에게 우리 줄기세포 배양액으로 만든 팩을 만들어 보내드렸다. 성능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고유의 특허기술인 배양액으로 화장품을 만든다면 질병 치료와는 전혀 다른 영역이지만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만족을 드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사회적 기여가 되리란 판단을 했다. 두 번째는 우리 연구소에 수십 명의 연구원들이 있다. 한국 정부에서 연구비 지원 하나 없어 별도의 수익 구조가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드라셀(DraCell) 화장품’ 출시에 이름을 내세우셨다
▲화장품 연구는 9년 쯤 됐다. 시제품이 세계 여러 곳에서 공통적 호평을 받는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고 제 이름을 내세웠다. 줄기세포라는 개념을 전 세계에 알린 이름이 ‘황우석’임에 이견은 없다. 줄기세포배양액은 고유하게 만들어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베끼지 않았다. 그리고 특허로 인정을 받았다. 이 배양액을 가지고 만든 화장품에 내세운 제 이름은 부끄럽지 않다는 자신감과 책임감을 동시에 담은 것이다. 미국과 두바이에서 제일 먼저 판매가 되고 유럽연합의 허가가 곧 나오면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판매된다. 중동, 일본, 미국, 유럽, 러시아 등에서 먼저 만나는 거다.
-연구의 최종 목적은
▲원래 줄기세포 공부를 시작했을 때 제 자신과의 약속이 있었다. 30년 전 간암을 앓아서 간의 상당 부분을 절제를 했다. 불과 몇개월 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고 그 이후의 연구 과정은 아픔을 경감해줄 수 있는 공부가 과학도의 가장 숭고한 일이라는 철학을 얻게 됐다. 그 길을 걸어오다가 과학적 자세가 미흡해서 이런 사고가 났다. 저의 책임이다. 아무에게 돌릴 수 없다. 이후에는 제 의지는 있었으나 대한민국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연구를 할 수 없어 10년째 중단했다. 지금부터라도 차분한 마음에서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금이라도 결실을 맺고 싶다. 생물학적 나이가 있으니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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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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