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플라스틱 악기를 부-부-부 불고 있다/ 아주머니 보따리 속에 들어 있는 파가 보따리 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다 // … // 아주머니 밤 보따리, 비닐/ 보따리에서 밤꽃이 또 막무가내로 핀다” <정현종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중에서>
답답한 일상에 시원한 바람 한줄기 불어든 듯 경쾌한 시이다. 아이도 파도 밤꽃도 저마다 터질 듯한 생명력으로 부-부 불고 쑥쑥 자라고 마구 마구 피어나는 신나는 광경, 생동감이 넘친다. 우리에게 사랑할 시간이 많은 게 아닌데, 왜 그렇게 살지 못하나.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열린 지 불과 며칠, 세상은 바뀌었다. 대통령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린다. 구중궁궐 깊은 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던 대통령에 익숙한 한국 국민들은 대통령이 보이고 들리는 데 기분 좋은 충격을 받는다.
여야 가리지 않고 찾아가 만나고, 주요 인선배경을 직접 설명하고 …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이 점심식사 후 커피 한잔씩 들고 산보하며 담소하는 광경은 여느 회사 주변 점심시간 풍경과 다르지 않다. 제왕적 권위의 흔적은 없다.
득표율 41%, 집권당 의석 불과 120석의 정권으로서 개방, 포용, 협치, 연대는 불가피하다. 그런 제스처라 하더라도 대통령이 소탈하게 웃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은 보기에 좋다. 부~부 불고 쑥쑥 자라는, 뭔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변화이다.
한국의 19대 대선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고 끝났다. 이번 대선의 최대 승자는 물론 문 대통령이다. 하지만 ‘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 - ‘어대문’ 선거였다. 예상을 뒤엎는 이변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가 하면 이번 대선 주요후보들 중 당선 가능성 ‘제로’였던 후보도 있었다. 안철수, 유승민, 홍준표 후보들은 저마다 이런 저런 구도를 그리며 ‘혹시나’ 하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반면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는 ‘선거 완주, 득표율 5%’가 처음 목표였다. ‘어대문’을 패러디하자면 ‘어안심’이다. ‘어차피 안 될 심상정’이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어떤 의미에서 이번 대선의 최대 승자는 심상정이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걸 얻었다.
심상정은 ‘보이지 않는’ 정치인이었다. 25년 노동운동으로 잔뼈가 굵고, 진보정치 10여년으로 리더십 탄탄한 정치인이지만, 그것은 진보진영 내에서의 일일뿐. 보수진영을 비롯한 일반대중들에게 그는 ‘진보’라는 높은 장벽 너머의 인물, 굳이 알고 싶지는 않은 인물이었다. 눈에 보일 리가 없었다.
‘진보’ 하면 일단 무섭고 싫은 알레르기 반응, 진보정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고정관념의 벽을 자연스럽게 허물어준 것이 이번 선거였다. 일등공신은 대선후보 TV토론. 많은 시청자들/유권자들은 처음으로 심상정 후보를 있는 그대로 관찰해볼 기회를 가졌다. 그는 소신 뚜렷하고, 아는 것 많고, 여유롭고, 카리스마 넘쳤다. 좌우 표심 계산하느라 종종 어정쩡한 다른 후보들 사이에서 그는 초지일관 분명했고, 분명하니 당당했다.
그는 “구름 위에 떠있는 논쟁을 삶의 현실로 가져오고 싶었다”고 했다. 주제가 무엇이든 막힘없고 시원시원한 그의 토론은 표심을 뒤흔들었다. 선거운동 초기 2%였던 지지율은 파처럼 쑥쑥 자라 최고 11.2%(5월 1~2일 조사)까지 치솟았다. 진보정당으로서는 감히 바라지 못하던 득표율 두 자리 숫자의 이변을 기대하게 되었다. “국도를 달리며 신호등에 걸리고 대형차 오면 비켜주고 하다가 다른 후보들이 달리던 고속도로에 진입한 기분”이라고 그는 표현했다.
선거는 득표율 6.2%로 막을 내렸다. 진보진영 유권자들이 마지막 순간 ‘소신’ 대신 ‘전략’ 투표를 택한 결과였다. 강경보수 후보가 막판에 부쩍 떠오르는 듯하자 진보성향 유권자들이 위기감을 느꼈다. 심상정에게 가려던 표들이 문재인에게로 돌아섰다. 그는 전략투표의 희생자라고 할 수도 있다.
이번 한국대선은 여성 정치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온갖 구설수에 오르내리며 탄핵되고 구속된 후 심상정은 전혀 다른 여성 대통령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언제 어디서든 원고 없이 즉흥연설이 가능하고, 공장 근로자나 성소수자 혹은 재래시장 상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없이 자연스럽고, 남편이 타준 도라지 생강차 손에 들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유세장을 뛰어다니는 서민적 여성 지도자의 모습이다. 이번 선거에서 심상정은 확실한 존재감을 얻었다. 정의당에 대한 대중적 인식도 덩달아 호전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통의 정치, 개방의 정치를 뿌리 내리기 바란다. 그래서 한국의 정치문화가 개선된다면, 여성 지도자들에게도 다시 기회가 열릴 것이다. 이번에는 국민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는 여성 대통령의 등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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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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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5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심상정이 문재인을 깔 때마다 정권교체가 물 건너가나하고 속이 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굳세어라 유승민 할 땐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선 박근혜를 감쌀 사람이로구나 했고 여성 대통령은 앞으로 100 년간 절대 없습니다.심상정은 입진보입니다.
소탐대실했습니다. 아직은 더부살이 수준의 당세인데 판자 몇 쪽을 갖고 롯데 빌딩을 짓고자 했으니... 그 게 똑똑한 겁니까? 정치는 명분이 있어야 한 즉, 정권교체의 명분앞에 잿밥을 탐했습니다. 심상정은 이제 없어지고 여성 지도자는 밴댕이 소갈딱지란 인식을 얻었습니다.
여성 대통령, 좋지요. 자라보고 놀랜놈 솟뚜겅 보고도 놀랜다는데, 50년후에나?. 심삼정 정의당? 좀더 커야지요. j.
혼밥하며 티비와 시술에만 매달리던 대통령 보다가 이걸보니 우리가 얼마나 바보였는지 알게되었다.
기억이 새록새록 하지만 노태우에 손가방 들기 부터 시작해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새대통령이 청아대에 들어갈때마다 서민 대통령, 권위의식 내려놓고,언로(먹통하고)등 오두방정을 글쓰는 친구들이 기사거리를 만들다보니 "아 이제는" 최소한 서민 대통령 하고 기대했는데, 고것이 지내고 보면 '작심 삼일 이여' 그러니 너무 까발리지 말고 기다려 보드라고 잉.j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