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지옥이다.’ ‘마치 호랑이 등에 탄 것 같다.’ 대통령 직(presidency)에 대한 비유로 전자는 워런 하딩, 후자는 해리 트루먼이 한 말이다.
이 중 트루먼의 말에 빗대 역사학자 로니 번치는 일찍이 이런 결론을 내렸다. “호랑이 등을 타는데 천부적 재능이 있는 지도자가 많았다는 점에서 미국은 행운을 누려왔다.” 용렬한 대통령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는 유능한 대통령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지도자 운이 좋은 나라’라는 말로 들린다.
1948년 하버드대학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시니어가 처음으로 미국의 역대 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해 랭킹을 정하는 작업을 했다. 이후 주기적으로 계속 이어져 오는 작업이 바로 역대 대통령 평가다.
2000년대 들어서도 C-SPAN에 의해 세 번이나 그 작업이 이루어졌다. 주기적으로 재평가되는 역대 대통령의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미국은 지도자 운이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제 2대 존 애덤스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이루어진 새로운 조명도 바로 그 경우다.
독립전쟁의 영웅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과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미국영토를 두 배 이상 늘린 3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애덤스는 어쩌면 민주주의 공화국 미합중국 형성에 가장 지대한 공헌을 한 대통령일 수 있다는 평가가 새로이 나오고 있다.
고결한 성품에, 위대한 소통자다. 원칙의 지도자이고 용기와 불굴의 인내력을 갖추었다. 권력 앞에서 겸손하다. 애덤스에 따라 다니는 평가다. 역사학자 데이빗 먹컬로우는 그런 덕목도 덕목이지만 리더로서 그가 지닌 아주 탁월한 장점으로 뛰어난 지인지감(知人之鑑)을 꼽는다.
그의 자질을 꿰뚫어보고 워싱턴을 독립군사령관으로 추천했다. 제퍼슨의 문필능력을 높이 사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게 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지닌 지혜를 알아보고 독립선언서를 편집하게 했다. 이 하나 만으로도 애덤스는 위대한 지도자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대통령 평가 작업이 이루어질 때마다 업적 순 대통령 랭킹에는 변동이 생긴다. 한 가지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가장 위대한 대통령(The Greatest President)’이란 타이틀이 붙는 ‘Top 3’다. 워싱턴(1789~97), 링컨(1861~65), (프랭클린) 루스벨트(1933~45)가 그들이다.
워싱턴에서 링컨, 루스벨트로 이어지는 ‘Top 3’의 계보를 쫓다보면 한 가지 패턴이 드러난다. 80년을 주기로 미국은 대(大)위기를 향해 간다. 윌리엄스 스트라우스와 닐 호우이가 ‘제4 전환(The Four Turning)’에서 주장한 것처럼 대 파국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 비상시기에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래서 미국을 구해낸다. 80년을 사이클로 워싱턴이, 링컨이, 그리고 루스벨트가 이룬 업적이다. 독립전쟁을, 남북전쟁을, 대공황과 뒤따른 2차 세계대전을 각각 승리로 이끌어내면서 이들은 가장 ‘위대한 대통령’반열에 오른 것이다.
무엇이 위대한 지도자를 탄생하게 했을까. 관련해 주목되는 점은 ‘가장 위대한 대통령’ 탄생에 앞서 미국 사회는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영적 대각성시기를 맞이했었다는 사실이다. 그 시기를 스트라우스와 호닐은 ‘위대한 각성’(1727~46), ‘초월적 각성’(1822~44), ‘제 3의 각성’(1886~1908)으로 각각 불렀다.
뭐라고 할까. 다가오는 겨울, 위기를 감지하면서 뭔 가에의 염원(念願)이, 기도(祈禱)가 이 땅에 깔린다. 그 가운데 하나의 ‘내러티브’가 형성된다. 위기의 해결을 갈구하는 담론이다.
다른 말로하면 이런 것이 아닐까. 사회가 위기를 향해 나간다. 그 정황에서 발동되는 것이 있다. 미국이란 사회의 ‘집단 지성’이다. 그 집단 지성은 시대정신과 맞물려있다. 그 집단 지성은 결국 위대한 결정을 내린다. 시대정신에 충만한 지도자를 선출함으로써 마침내 찾아오고 만 위기에서 승리를 일구어 내는 것이다. 말 그대로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 땅을 덮고 있는 분노, 절규, 불신, 갈등, 허무는 비관이라는 표현이 너무 한가하다.” “지금은 외교, 경제, 헌정, 남북관계, 평화, 일자리… 모두 심각한 총체적 위기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이 세계 최악 수준의 갈등 국가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구한말의 상황이 거론된다. 6.25 때와 비교된다. 안보상황이 그만큼 위태롭다는 것이다. 사회의 양극화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소득 상위 1%가 전체 국민소득의 12%를 가져간다. 소득 상위 10%는 48%를 차지한다. 그러니까 상위 10%가 파이의 절반을 차지하고 90%의 국민이 나머지를 나눠 갖는다.
심각한 경제적 층화 등 지구촌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의 핵심을 대한민국은 모두 껴안고 있는 것이다. 그 대한민국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헬조선도 모자라 한국의 젊은 세대는 대한민국을 ‘대한망국’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가운데 치러지는 것이 한국의 19대 대통령선거이고 이제 투표일을 하루 앞두고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려가 앞선다. 촛불에서 시작됐다. 촛불이 탄핵을 불러왔다. 촛불은 시민혁명이었다. 그런데 촛불 민심은 무시됐다. 네거티브와 선거공학만이 난무하는 선거판이 되고만 것이다.
그렇지만 기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위기다. 캄캄해 진로가 잘 안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한숨과 눈물, 염원, 그리고 기도는 한 곳으로 모아진다. 하나의 소리 없는 내러티브를 형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촛불 이후의 한국사회는 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집단 지성이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이루어낸 것은 아닐까.
이코노미스트지도 이점을 주시하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대한민국은 탄핵 후 대선을 통해 전 세계 민주주의운동가들에게 뭔가 영감을 줄지도 모른다는 논평과 함께. God bless Korea! 정말이지 기도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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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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