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볼보자동차에서 보낸 홍보 메일 때문이었다. 텔레비전을 없앤 지라 메일을 받고서야 지난 4월 1일부터 좋아하는 배우 김혜수가 ‘더 뉴 볼보 크로스 컨트리’의 광고 모델로 활동하는 걸 알았다.
광고에서 김혜수는 ‘내가 꿈꿔온 삶, 바로 지금’ 이라는 볼보의 메시지를 전한다. 무엇보다 시내 도로에서 무작정 질주하거나 드리프트로 사람들을 놀래 키는 부류의 광고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영상은 복잡하고 지친 여피의 소소한 일탈(?)을 우아한 배우의 태를 빌어 잔잔하게 내보낸다. 크로스 컨트리는 볼보의 세단이나 왜건을 바탕으로 차고를 높이고 사륜구동을 달아 주파성을 키운 모델 아닌가? 그녀가 카메라를 들고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러 새벽에 떠나는 영상을 보고 훌쩍 야외로 떠나고픈 건 비단 김혜수 때문만은 아닐 거다. 예전 볼보의 슬로건을 떠올려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볼보 포 라이프’ 말이다.
그리고 급작스레 V90 크로스 컨트리에 대한 호기심이 부쩍 일어났다.
차를 받자마자 놀랐다. 네모난 이그니션 키 때문이었다. 은은한 갈색 가죽으로 감싼 리모컨 키가 무척 고급스럽다. 금속을 세공한 키는 봤어도 가죽 트리밍으로 꾸민 키는 처음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최고급 기함이나 디자인을 중시하는 아우디조차 이렇게 근사하지는 않으니까. 모양은 단순해도 금속 버튼을 옆에 배치해서 오작동 염려도 없고 쓱 움켜쥐기에도 좋다. 감동이다. 고급차 유저의 심미적 가치를 잘 읽어낸 듯하다.
문을 열고 실내에 들어가면 들뜬 기분은 한층 증폭된다. 인테리어 질감이 내가 아는 예전 볼보 수준이 아니다. 키를 감싼 가죽이 시트에도 고스란히 쓰였다(시트 재단하고 남은 가죽으로 키를 감쌌겠지만). 고급 가죽과 무광 알루미늄, 스킨 소프트 처리된 플라스틱과 크롬의 조합이 적재적소에 들어갔다. 사진만 보다가 실제 접해보니 촉감이 더 뛰어나다. S90 인스크립션 모델은 한층 더 강렬하다는데 궁금증이 불쑥 생긴다. 니어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식되던 볼보가 인테리어만으로 명실상부 최상급 브랜드로 거듭났다는 생각이다. 벤틀리에서 활약하던 로빈 페이지 같은 디자이너의 합류 이후 볼보는 일취월장으로 거듭났다. 물론 모회사의 아낌 없는 투자에 힘입었겠지만.
익스테리어 디자인은 당당하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사이드 미러의 형상이 크롬 그릴과 같은 모양이다. 우아하고 힘차다. 마치 후륜구동 왜건처럼 앞바퀴를 범퍼 쪽으로 바짝 밀어 비례가 무척 안정적이다. 안전으로 무장한 스타일리시 왜건은 분명 상품가치가 높을 것이다. 왜건이 짐차로 인식되는 국내 분위기와는 달리 크로스 컨트리는 분명 안정된 SUV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사실 왜건과 SUV의 보디 스타일은 같다.
볼보가 7년에 걸쳐 개발한 플랫폼은 앞으로 최소 10년은 우려먹을 최신형 버전이다. 실제 차를 몰아보니 안정감이 뛰어나고 듬직하다. 꽤 커다란 휠을 끼웠음에도 섀시는 버틴다. 전륜구동을 기반으로 만든 차이기에 코너링 성능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뒤쪽 서스펜션이 시종일관 든든하게 뒤를 떠받친다. 누가 몰아도 안정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초보운전자에게나 숙련된 베테랑에게나 환영 받을 수 있다. 스티어링은 딱 알맞고 엔진 출력은 충분하며 힘차고 묵직하게 나아가는 고급차의 든든한 감성이다. 내 차가 된다면 18인치 휠로 사이즈를 줄여 현가하질량을 덜어낸 뒤 한층 가뿐한 승차감을 즐길 것이다.
시승을 해보니 알겠다. 광고가 옳았다. 이 차는 후륜을 흔들거리며 짜릿한 거동을 끌어내는 열혈 마니아를 위한 차가 아니다. 모험과 도전을 일삼는 포론티어에게 어울리는 차도 아니다. 가족을 이끌고 야외 활동을 일삼는 가장이나, 균형감 있으며 세련된 감성을 지닌 여피에게 권하는 안전한 차다. 그래서 주행 감성에 대한 날선 얘기는 한층 본격적인 폴스타를 위해 아껴두겠다.
터치스크린은 훌륭했다. 세세한 부분의 불만을 제외하고는 무척 마음에 든다. 일단 세로형이다. 사실 휴대전화를 끼고 사는 습관 때문에 이미 눈은 세로형 디스플레이에 적응되어 있다. 터치스크린을 터치하면 무척 빠르고 정확하다. 조악했던 과거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잊어도 좋겠다. 한글과 알파벳이 섞인 명칭을 칠 때 도무지 알파벳 자판을 찾아낼 수가 없어서 살짝 짜증을 내긴 했지만 분명 내가 무식해서일 것이다.
헤드업 디스플레이 또한 간결하다. 이를테면 제한시속 표지판 같은 동그란 숫자 옆에 차의 속도가 표시되는 식이다. 눈길을 돌릴 필요 없고 무척 직관적인 방식이다. 백미는 바우&윌킨스 카 오디오였다. 음장 효과가 실로 탁월해서 오페라를 감상하러 연주 현장을 찾은 느낌이다. 락이나 메탈보다는 클래식이나 재즈에 어울리는 ‘고텐버그 콘서트 홀’ 음장 모드가 특히 인상 깊었다. 조만간 전문가를 모시고 볼보의 사운드 시스템을 리뷰할 생각이다. 그만큼 감동이 컸다는 얘기다.
안전하면 입 아프다. 볼보는 안전의 대명사, 아니 동의어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며 부러 스티어링을 놔보기도 했고 도로를 이탈할 때 얼마나 빨리 차선으로 복귀시키는지도 확인했다. 앞차를 따라가며 파일럿 어시스트를 유지하고 주차 보조 파일럿도 일부러 작동시켜 봤다. 아, 이제 무인자동차 시대가 불쑥 다가왔음을 느낀다. 안전에 대한 객관적인 수치와 실험 결과는 온 세상이 알아주니 굳이 첨언할 생각은 없다. 그런 게 바로 브랜드 철학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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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90 크로스 컨트리와 잘 어울리는 배우 김혜수. <볼보자동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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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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