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전 뉴욕에 사는 딸의 집을 방문하러 가던 때였다. 인터넷으로 싼 비행기표를 구하니 LA에서 자정쯤 떠나 새벽에 도착하는 항공편이었다. 탑승 게이트 앞에 앉아서 탑승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데 안내방송이 나왔다.
“15석이 오버부킹 되었다. 이번 비행기 좌석을 양보하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는 비행기를 탈 의향이 있는 승객들을 찾고 있다. 호텔 숙박과 1,000달러의 바우처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특별히 정해진 스케줄이 없던 나는 솔깃했다. 비행기 좌석에서 새우잠을 자느니 편안하게 호텔에서 자고 바우처도 받고 … 뉴욕에 몇 시간 늦게 도착하는 대가로는 썩 괜찮았다. 덕분에 그해 나는 두 번 더 딸네 집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15명에게 호텔비와 1,000달러 씩 지불하면 그 돈이 얼마인가. 그렇게 지출을 하고도 남는 게 있을까?”라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항공사의 오버부킹은 어쩌다 생긴 실수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안 것은 훨씬 후였다. 오버부킹을 해도 대개의 경우 별 문제없이 승객들을 ‘재배치’ 할 수 있고, 그래서 항공사들은 당연한 듯 해왔는데, 드디어 대형사고가 터졌다.
지난 9일 시카고 공항의 유나이티드 항공기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이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안다. 셀폰의 공이 컸다. 공항 보안요원들이 짐승 끌어내듯 난폭하게 끌어낸 데이빗 다오(69) 의사가 마침 같은 아시안이어서 미주한인들은 특별히 더 충격을 받았다. “운 나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다” 싶은 두려움이다.
1975년 사이공 함락 당시 보트난민으로 미국에 온 다오 의사는 베트남 탈출 때보다 이번에 기내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채 끌려나올 때가 더 공포스러웠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코뼈가 부러지고 치아 두 개가 빠져 얼굴이 피범벅이 되고, 뇌진탕으로 잠깐 의식을 잃기도 했다.
이민자로서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안정된 생활기반을 마련하고 자녀들을 모두 의사로 키워낸 그는 베트남 커뮤니티에서 성공한 1세로 꼽힐 지도 모르겠다. 필시 존경받는 아버지일 그가 짐짝처럼 끌려나오는 장면을 보며 그 자녀들이 느꼈을 고통과 분노는 상상하기 어렵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기내에서 난동을 부린 것도 아니고, 테러범도 아닌 평범한 할아버지 승객에게 유나이티드는 왜 이렇게 몹쓸 짓을 한 걸까. 승무원들도 보안요원들도 다른 환경에서 그를 만났다면 이런 패악을 부릴 이유가 없다.
기내에서 그는, 우리 모두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숫자’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항공사와 승객은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지 않는다. ‘탑승자 몇 명, 그래서 수익은 얼마’로 계산되는 숫자, 교환가치가 있을 뿐이다.
‘사람’이 아니라 ‘수익’에 초점이 맞춰진 구도에서 등장한 것이 오버부킹이다. 비행기 좌석이 다 찬 줄 알면서도 구매자가 있으면 계속 탑승권을 팔고 본다. 수익 극대화를 위해서는 일단 최대한 승객을 확보하고, 나중에 좌석이 모자라면 그때 승객을 덜어내면 된다는 식이다. 갑자기 쫓겨나는 승객 개개인이 겪을 불편과 피해는 뒷전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항공편마다 거의 예외 없이 탑승 취소가 있으니 그로 인한 손실에 대비한다는 것이다.
일단 비행기 뜨고 나면 빈 좌석은 썩어서 못 파는 빵이나 과일처럼 회복 불가능한 손실, 오버부킹은 항공사의 합리적 대비책으로 인정받는다. 탑승 못하는 승객에게 보상만 제대로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합법적 관행이다.
지난해 미국의 12대 항공사를 통해 비행기 여행을 한 승객은 총 6억5,970만명, 그중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하차 당한 승객이 4만600여명이다. 바우처 등을 받고 자발적으로 좌석을 양보한 승객은 훨씬 많을 것이다. 바우처 비용, 승객들의 반발 등을 모두 고려해도 탑승권을 많이 파는 것이 이익이라는 게 항공업계의 결론이다.
게다가 일단 기내에 들어서면 승객은 ‘을’이 된다. 업무 수행 중인 승무원을 위협, 공격, 방해하는 어떤 행위도 불법이다.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하면 내릴 뿐, 잘못 저항하다가는 연방항공규정 위반으로 강제로 쫓겨나고, 최고 2만5,000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항공사들이 승객들 하차시키는 걸 겁내지 않는 배경이다. 그러다가 너무 나간 것이 이번 유나이티드 사태이다.
유나이티드는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음으로써 기업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주가도 동반 하락하고, 피해자의 소송으로 엄청난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장기적 사업 성공의 필수요소는 소비자들의 신뢰,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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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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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airline망하기를 기원합니다
사람 혹은 이익.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도 혹은 일으키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