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다큐멘터리를 보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생명은 없다.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벌레나 풀도 카메라 앵글로 집중해보면 저마다 치열한 삶이 있고 그 모습이 신비롭다. 사람은 말해 무엇 할까. 하지만 눈앞에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 존재를 알 수 없다. 눈에 들어와야 마음에 들어오고, 마음에 들어와야 비로소 보듬게 된다.
지난 30일, 찰스턴의 페퍼힐 초등학교에서는 일대 경사가 있었다. 전교생 650명이 흥분해서 펄쩍 펄쩍 뛰고 환호했다. 1학년 담임인 케이티 블롬키스트(34) 교사가 “오늘은 너희 모두 새 자전거를 갖는 날!”이라는 꿈같은 소식을 전한 때문이었다.
저소득층 밀집지역인 이곳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자전거가 없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니 ‘없음’은 당연시 되었다. 하지만 교사의 눈에는 자전거 없이 자라는 아이들의 결핍이 보였다. 자전거가 없는 것은 단순히 어떤 물건이 없는 게 아니었다. 경험과 추억의 결핍이었다.
1년 쯤 전이었다. 평소 사비로 반 학생들에게 상품도 주고 선물도 사주던 여교사는 생일을 맞은 한 아이를 데리고 월마트에 갔다. 갖고 싶은 걸 고르라고 하니 아이는 자전거를 원했다. “그 만한 돈은 없다”고 아이를 달랬지만 이후 자전거는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자전거는 아이들이 태어나 처음 가져보는 재산 같은 것.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며 만끽했던 자유, 해방감, 즐거움 … 기분 좋을 때나 화날 때나 늘 자전거와 함께 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는 전교생에게 자전거를 마련해주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9월6일 ‘후원부탁해요(GoFundMe)‘ 웹페이지를 만들고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인근 자전거 점포는 할인가에 자전거를 구해주기로 했고, 성금은 입소문을 타면서 찰스턴 시 전역을 넘어 미 전국에서 답지했다. 동심에 기쁨을 주고 싶은 마음이 낯모르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으며 공동체를 형성했다. 그 결과가 650대의 조립된 자전거와 헬멧과 자물쇠 - 어린이들에게 찾아온 ’3월의 크리스마스‘ 였다.
이번 캠페인을 전개하며 그는 “세상에는 여전히 선의가 넘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이제 그는 아이들의 서머캠프, 수영교습 등 특별활동 기금모금에 나섰다. 학생들에게 그는 세상 누구보다 위대한 영웅이다.
영웅은 어떤 의미에서 눈이 밝은 사람이다. 다른 이의 아픔과 필요가 잘 보이는 사람,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지 길이 보이는 사람, 불편하고 성가셔도 피하지 않고 기어이 보는 사람, 그래서 우리 속의 선함에 눈뜨게 하는 사람.
언제부터인가 한국에 가면 눈에 띄는 노인들이 있다. 골목골목 다니며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다. 90년대 중반 재활용 산업과 함께 폐지가 돈이 되면서 빈곤층 노인들이 폐지수집에 나섰다. 하루 종일 걷고 걸으며 모아서 고물상에 파는데, kg당 100원이 채 안된다고 한다. 하루 벌이가 기껏해야 5,000원 정도.
최소한의 생활보장 안전망이 없는 한국에서 노인 빈곤율은 50%에 가깝다. 노년기는 길어지는데, 모아둔 재산 없고 자녀가 생활비를 보태줄 여건이 안 되면 노인들은 방법이 없다. 길에 나가서 폐지라도 주워야 산다. 그렇게 길거리로 내몰린 노인들이 175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사회는 그 노인들을 눈여겨보지 않고 있다.
인천의 대안학교 교사인 기우진(34)씨가 그 노인들의 힘겨운 삶을 보게 되었다. 2013년 어느 날 폐지를 잔뜩 싣고 언덕을 오르는 노인의 수레를 끌어준 후 폐지 줍는 노인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노인들을 도울 방법으로 그는 폐지 기부운동을 시작했다. 학교, 교회, 학원 등지에서 폐지를 기부 받아 판 수익금으로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용품들을 전달했다.
하지만 노인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서 보면서 그는 단순지원의 한계를 깨달았다. 보다 지속가능한 지원을 위해서는 폐지 수집을 노동으로 보고, 노동에 합당한 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했다. 그래서 1년 전 시작한 것이 러블리페이퍼(LoveRePaper)라는 사회적 기업이다.
노인들의 폐지를 시중가격의 10배에 산 후 폐지로 캔버스를 만들고, 캔버스에 재능기부 작가들이 그림을 그려 작품을 파는 사업이다. 수익금은 다시 노인들의 폐지구매에 투자되는 선순환 구도이다.
계획을 추진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재능기부 작가 섭외였다. 그런데 페이스 북에 취지를 설명하자 4시간 만에 150명이 모였다고 한다.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은 본능처럼 우리 속에 있다는 말이 된다. 그 선한 마음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마도 우리 주변의 영웅들일 것이다.
기 대표의 명함 뒷면에는 “당신의 이웃은 누구입니까?“라는 글이 있다고 한다. 지금 그의 이웃은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다. 우리의 이웃은 누구인가. 우리에게 이웃은 있는가.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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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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