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선거에 쭈뼛 쭈뼛 출마했다가 촛불에 데고 태극기에도 눌려 꼬리를 내린 반기문 후보가 지난 2012년 유엔 사무총장 시절 조그만 업적을 하나 남겼다. 매년 3월 20일을 ‘국제 행복의 날(International Day Of Happiness)’로 선포한 일이다. 테레사 수녀의 고아원 출신으로 미국인 가정에 입양돼 사업가로 입신한 제이미 아일리엔이 앞장서 추진했다.
행복추구를 인간의 기본 권리이자 인류사회의 궁극 목표로 규정한 아일리엔의 결의안은 당시 한국과 북한을 포함한 전체 193개 유엔 회원국 대표들의 만장일치 지지로 채택됐다. 제1회 행복의 날 행사는 2013년 3월 20일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의 아들 엔다바 만델라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딸 첼시가 참석한 가운데 뉴욕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요즘 행복의 날은 유명무실해졌지만 매년 그 즈음에 발표되는 ‘세계 행복 보고서’는 각국의 신문과 TV가 다투어 보도한다. 유엔 산하 SDSN(지속가능 발전해법 네트워크)이 발표하는 이 연례 보고서는 GDP(국내총생산), 예상 건강수명, 사회적 지원혜택, 생활 선택자유의 폭, 정부의 정직성 및 신뢰성, 국민 관용성 등을 기준으로 세계 행복국가 순위를 매긴다.
올해는 노르웨이가 전 세계 조사대상 155개국 가운데 가장 행복한 국가로 꼽혔다. 10점 만점 지수에서 7.537을 받았다. 지난 2년간 4위였다가 단숨에 3단계를 뛰어올라 3년간 1위를 지켜온 덴마크를 끌어내리고 처음으로 정상을 차지했다. 아이슬란드, 스위스, 핀란드, 네덜란드, 캐나다, 뉴질랜드가 3~8위를 차지했고 호주와 스웨덴이 공동 9위를 기록했다.
특이한 건 이들 10대 행복 국가 중 6개가 북유럽 나라라는 점이다. GDP가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들이지만 그보다는 사회복지, 기대 건강수명, 근로와 생활의 균형, 공동체 의식 및 상호신뢰 등 사회기반이 탄탄하다는 것이 더 두드러진 공통점이다. 노르웨이는 원유가격 하락으로 GDP가 줄었지만 웰빙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오히려 1위로 뛰어올랐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음은 국가도 개인과 매한가지다. 세계 최대부국인 미국은 지난해 호경기로 국민소득이 늘었지만 행복순위는 되레 13위에서 14위로 떨어졌다. 이스라엘, 코스타리카, 오스트리아에도 뒤졌다. 다른 강국들도 별 수 없다. 독일이 16위, 영국이 19위, 프랑스가 31위, 스페인이 34위, 이탈리아가 48위, 러시아가 49위이고 중국은 고작 79위다.
한국은 작년보다 2 단계 오른 56위에 랭크됐지만 GDP와 기대수명만 양호한 편일뿐 사회지원 혜택 등 웰빙 부문이 부실했다. 경제대국 일본도 한국보다 5단계 높은 51위이다. 싱가포르(26)·태국(32)·대만(33)에 훨씬 뒤진다. 아시아에선 홍콩(71)·필리핀(72)·인도네시아(81)·베트남(94)·몽골(100)이 100위 안에 들었고 인도는 122위, 캄보디아는 129위로 쳐졌다.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는 GDP와 사회지원이 빵점인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이다. 행복지수가 2.69로 노르웨이의 3분의1 정도다. 뒤를 이어 부룬디·탄자니아·시리아·르완다·토고·기네아·리베리아·남수단·예멘이 세계 행복국가 명단의 밑바닥 10위권을 메웠다. 대부분 아프리카의 빈국들로 행복지수가 3점 안팎이다. 역시 돈이 행복의 중요 요소임을 실감케 한다.
북한은 여론조사를 할 수 없어 아예 명단에서 빠졌다. 형을 암살하고 고모부를 총살하는 김정은의 포악정치 속에 굶기를 밥먹듯 하는 북한은 중앙아 공화국보다 훨씬 불행할 터이다. 하지만 70년간 김일성 3대에 세뇌된 북한 동포는 지상낙원에 사는줄로 안다. 행복순위가 여론조사만 근거로 한다면 북한이 노르웨이를 제치고 최고 행복국가로 꼽혔을 터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창하는 ‘미국 우선주의’로는 미국의 행복순위가 올라가기 어렵다. 장벽을 허물고 모든 인종을 끌어안아야 한다. 한국도 파벌의식과 배금주의를 타파하지 못하면 행복순위가 계속 떨어질 터이다.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올리려면 우선 촛불과 태극기부터 화합하고, 양심적인 대통령이 선출돼 포퓰리즘이 아닌 실질적 웰빙 정책에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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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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